히치하이커 | 2016. 1. 10. 23:40
Moon river
wherever you're goin'
I'm goin' your way
Two drifters, off to see the world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We're after the same rainbow's end
우리는 같은 무지개의 끝을 따라 가고 있지요.
***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 주파수에 말을 거는 일은, 세나 이즈미에게는 호흡마냥 익숙한 일이었다. 그는 일방적인 사랑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진을 찍고, 말을 걸고, 싫어하는 얼굴을 잔뜩 즐기는 것은 반응이 돌아오기에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이 쌍방향적인 사랑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주파수가 언제나, 퍼지기만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별로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그래왔음으로.
그렇기에 그것이 갑자기 ‘쌍방향적 교류’로 바뀌었을 때, 세나 이즈미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교신의 주인이, 여태까지 갈구해오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바다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었다. 세나 이즈미는 자신이 지금 아가미 호흡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과 섞여 부는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한숨을 내 쉬었다. 하얀색 입김은 겨울과 꽤나 잘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제 손에 들린 편지를 바라보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꽤나 아날로그 적인 수법이었다. 그는 그것이 제 맨션의 붉은 우체통 안에 들어있던 경위를 반추했다. 나름대로 골치 아프다면 골치 아픈 일이었다. ‘세나 이즈미님께’로 시작하는 편지는 매우 정중한 어조로 적혀 있었다. 영화를 흉내 낸 것 같은 필체였다. 그는 츠키나가가 자신의 여동생에게 이 편지를 대필시킨 것이 아닐까, 추측하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온 볼이, 간질거렸다. 그 밤이 번져오는 탓이었다.
그 날은 『러브레터』를 본 날이었다. 세나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랑에 응답을 받을 것이라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밤에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세나의 주파수에 자신의 주파수를 마주 댄 남자였고, 그냥 무시하기에는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그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또 돌리면서 고민했다. 의미 없는 화면들이 반복되며 머릿속에서 엉켰다. 그는 한숨을 내 쉬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방 안을 시끄럽게 덥던 ‘문 리버’의 음이 끊겼다.
세나가 전화를 받자마자, 츠키나가는 지금 112번을 틀어 세나. 라고 말했다. 내가 왜? 라고 되묻자, 그는 어서, 하고 재촉 해 왔다. 그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다만 “112번이야” 라고 재차 강조 할 뿐이었다. 세나는 그의 목소리를 어기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투정을 받아주는 쪽이었다. 텔레비전의 체널을 꾸역꾸역 돌리자, 하얀 눈밭이 나왔다. 하얀 눈밭에서 열리는 장례식을 무던히 보며, 세나는 왼쪽 귀에 끼고 있던 전화기를 오른쪽 귀로 옮겼다.
―그래서 뭘 보여주고 싶은 건데 왕님은?
―세나, 대단하지 않아? 『러브 레터』를 해 준다고!
그것도 텔레비전을 돌리다가 발견했어! 방금!, 츠키나가는 이것이 운명적인 일이라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에, 연인과 함께 전화통화를 하면서 로맨스 영화를 보기가 있다면서 말하고 있었다. 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성이 충족된다는 그 달달한 목소리를 세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는 것도 할 수 없었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끊었겠지만, 그 들뜬 목소리를 뒤로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영화는 잔잔했다. 세나는 울지 않았고, 레오는 간간히 감동한 듯,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감동했니, 라고 물어볼 때 마다 레오는 자신이 감동한 이유 세 가지 정도를 다다다, 하고 내뱉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까지 그들의 핑퐁은 계속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세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츠키나가 레오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는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왼쪽 볼이 화끈할 때 쯤, 그는 오른쪽으로 전화기를 옮겼다. 전화기를 옮기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수화기 너머의 왕 님은 웃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 영화에서는, 마지막 편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세나는 하품했고, 레오는 웃었다. 그는 그 간격이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색하고, 손가락이 간질거렸다. 세나가 어색해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오는 있잖아, 편지를 저렇게 주고받아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난다는 건 대단하지 않아? 라고 물었다.
―그거야 대단하긴 하지. 하지만 그게 무슨 로맨틱인데.
―받을지, 안 받을지, 나올지 안 나올지, 그걸 알 수 없다는 점이? 생각 해 보라구 세나!
―왕님의 로맨틱 너무 어려워. 애초에 지금 이 시대에 그런 로맨틱을 추구한다는 점이 낡은 거라구.
세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츠키나가는, 그가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던 날을 물었다. 세나가 입을 굳게 다물고 대답하지 않자, 그는 일방향적 통신의 최고봉은 연애편지라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밤을 울리는 목소리는 제법 듣기 좋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편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강의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들은 꼭 꿈같기도 하고, 우주 같기도 해서, 세나는 별빛 속을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츠키나가 레오는 ‘편지’를 보통 사람들 보다 좀 더 특별히 여기는 것만 같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편지는, 한 사람의 우주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면서 동시에 외면받기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적어내기 때문에 편리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우체통을 잘 확인하지 않으며, 편지에 적힌 우주가 온전히 전달되기 위해서는 ‘읽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번거롭기 때문이라는 부연 설명에 세나는 혀를 내둘렀다.
새벽을 같이 지새우고 있다는 의식이 있는 것인지, 츠키나가는 편지에 대해서 예찬했다. 그의 목소리는 하나의 노래 같아서, 세나는 그래그래, 응, 쓸모없어, 진짜 짜증나, 등의 추임새를 넣으며 들었다. 츠키나가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고, 세나는 그걸 얌전히 들어주었다. 둘 사이에 공백이 찾아올 때 쯤, 츠키나가는 어김없이, 다시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은 카세트 테이프를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 세나는 그가 부끄러움을 탄다고 생각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츠키나가의 말을 들을 때 마다 졸음이 한 스푼 씩 몰려왔다. 우주에 설탕을 뿌리는 기분이었다. 세나는 눈을 감고,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대하고 대담했지만,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았다. 우주 속을 아가미 호흡하며 헤엄치는 기분에, 세나는 힘없이 하품을 했다. 왕님, 지금 무슨 생각 해? 말과 말 사이의 (사이)속에서 세나가 묻자, 츠키나가는 ‘문 리버’를 계속 듣고 있는 기분이라고 대답했다.
왕님도 지치는 구나, 하고 세나가 힘없이 말할 때 쯤, 츠키나가는 문득 물었다. 있지, 라는 말 뒤에 오는 쉼표는 명백하게, 망설임을 담고 있었다. 제멋대로이고 독선적인 남자의 입에서 나올만한 단어는 아니었다. 세나는 문득 눈을 크게 떴다. 영화가 끝난 텔레비전에서는 광고를 하고 있었다. 그는 립클로즈 광고를 눈으로 쫓으며, 제 입술 껍질을 톡톡, 건드렸다. 괜히 긴장 되는 기분에 손가락 끝이 바짝바짝 말랐다.
츠키나가 레오의 ‘있지’ 라는 말 뒤에는 한 동안 공백이 찾아왔다. 그러다가, 바다처럼 물밀듯
―있지,
―응
이라는 영양가 없는 대화가 파도처럼 이어지길 반복했다. 그들의 라디오에서는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세나는 이 아날로그적인 대화가 어색했다. 그는 괜히 제 볼을 긁었다. 어서 말 해, 라는 재촉도 할 수 없었다. 고백을 듣던 날 밤처럼 설레, 세나는 시간을 얼려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조 안에서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멍청한 열대어가 된 기분이었다. 3초 동안 호흡만을 생각하고, 다시 잊어버리고, 3초 동안 호흡을 생각하는 금붕어처럼 세나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온 세상이 츠키나가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서로의 주파수를 마주잡는다는 것은 온 우주가 그로 물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호흡에 호흡을 거듭하는 순간, 두근거림이 묻어왔다. 매우 서정적인 흐름이었다. 세나는 괜히 손을 뻗어, 제 손톱 끝을 바라보았다. 세계의 축이 점점 바뀌어 가는 기분이었다. 노을 같은 기분. 그는 눈을 감았다. 츠키나가 레오의 목소리가 꿈처럼 가깝게 들려왔다. 세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세나. 편지 써도 돼?
고민 끝에, 그는 그렇게 물었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세나는 그러던가, 라고 대답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머리색 같은 노을이 볼 위에 내리 앉은 게 분명했다. 그는 괜히 앉은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나는 괜히 8자를 그리며 걸었다. 츠키나가는 혼자 받는 게 싫으면 우리 교환하자, 라고 말했다. 서툰 목소리였다. 왕님이 풋풋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어, 라고 말하자 레오는 아하하, 나도, 하고 말했다. 우리, 라는 호칭이 새삼스럽게 가까웠다.
세나는 별자리가 바뀌는 하늘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왕님이랑 이런 느낌이 될 줄은 몰랐어, 라고 말하니 츠키나가는 나도 마찬가지라고, 하고 대답했다. 그는 우주가 너무 휙휙 바뀌는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광속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느낌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세나는 그의 말을 기다리느라,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이걸 노래로 쓰고 싶어’라는 말이 올 타이밍에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세나는 어때? 라는 말이 물처럼 번져왔다. 그는 그 말에 새삼, 세나 이즈미와 츠키나가 레오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함을 느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던 주파수가, 서로에게 전달되는 건 이런 기분일까. 세나는 8자를 그리며 불안하게 걷고 있던 것을 멈추었다. 대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푹 누웠다. 뭐 해? 라는 말에 그는 침대에 다이빙 했다고 대답하다가, 문득 노을을 히치하이킹 하는 기분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와, 멋있는 말이야. 라는 말로 시작되는 찬사를 듣기는 싫어, 이즈미는 전화를 끊었다. 회전축은 점점 기울고 있었다. 홀로 내보내는 사랑에 익숙해진 두 볼이 붉게 물들었다. 울 것 같은 기분이고, 치받치는 기분이었다. ‘팀원’이나‘ 동료’에서 한 칸, 옆으로 움직였을 뿐인데도 세상이 진동했다. 둘의 주파수는 명백하게 이어져 있었다. 이상한 느낌에 볼이 간지러웠다.
***
편지가 온 것은, 그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세나는 가만히 편지를 매만졌다. 편지봉투에는 우체국 소인이 없었다. 주소를 알고 있으면서도 우체통을 거치지 않은 것은,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는 뜻일까. 세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봉투의 안쪽에는 몇 월 며칠, 몇 시에 나와 주세요, 라는 요구가 적혀 있었고, 그 안쪽에는 편지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볼펜으로 또박또박 눌러 썼는지, 편지지 뒷면이 울퉁불퉁했다.
한 장은 익숙한 가사였다. 세나는 괜히 문 리버를 흥얼거렸다. 그가 적어준 부분 외에는 가물가물 해, 허밍이 입김과 함께 흘러나와 노을을 덮었다. 그는 해가 지는 모습을 보다가, 뒷장을 넘겼다. 갈겨 쓴 것 같은 음표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셋잇단음표와 스타카토가 가득한 그 빠른 음률은, 『심장박동』이라는 제목이었던 것 같았다. 세나는 ‘심장박동’이라는 글자 위의 취소선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 쉬었다.
취소선의 옆에는 『일주일 전, 밤, 112번 채널』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또박 또박,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적은 것 같았다. 곡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우체국에 가지 못한 걸까. 그는 여러 생각을 하다가 기지개를 폈다. 노을이 점점 하늘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하얀 눈이 쌓인 계절을 덮어가는 빛무리를 보면서, 세나는 이것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손가락 끝이 딱딱했다.
편지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츠키나가의 얼굴을 본다면 편지에 대한 답장은 근시일내로 주겠다는 말을 하리라 결심했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서정적인 왈츠를 듣는 기분에, 그는 잔뜩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친구’나 ‘동료’가 아닌, ‘연인’의 얼굴을 한 츠키나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세나!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세나는 자신이라는 이름의 우주, 그 세상의 주파수가 그에게로 수신되고 있음을 느꼈다.
‘러브레터’에 덕지덕지 묻어있을 츠키나가의 지문이 닿은 자리마다, 심장소리가 피었다. 그는 츠키나가 레오라는 이름의 우주에서 아가미호흡을 하는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쌍방향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는 왕님, 이라고 부르는 대신 레오, 라고 첫 운을 땠다. 놀란 것 같은 얼굴이 보기 좋아, 세나는 괜히 쌜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담았을 아날로그적인 두근거림이, 서정시처럼 다가왔다. 츠키나가는 세나의 볼이 붉어졌음을 지적했다.
노을이 묻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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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랭지농업종사자의 앙스타 덕질용 티스토리 입니다.
느리고 또 느리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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