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와 바람'에 해당되는 글 4건

[카오카나] LOVE THE WORLD

*컬러버스입니다

*자각없는 짝사랑x그걸 알고 찔러봤음- 같은 느낌입니다...












LOVE THE WORLD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이이체, 거짓말의 목소리

 



 

***

 

신카이 카나타를 조금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예상 할 수 있던 고백이었다.

나는 카오루를 좋아해요, 라는 말을 듣자마자, 하카제는 이번 주 내내 반복 됐던 신카이의 기행을 떠올렸다. 그는 하카제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수면 위에 부유하는 해파리처럼 세상을 유영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관리하던 수조 표면에 이끼가 생겼다. 해양생물부 안에서 색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카나타 뿐이어서, 그 이변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번 일 때문에 하카제를 찾아왔던 세나가 아니었다면, 열대어 다수가 폐사할 뻔 했다.

이러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신을 바로 잡지 않았다. 신카이 카나타의 부유는 계속 되었다. 그는 도시락에 곁들여 먹곤 하던 간장을 초간장으로 잘못 가져오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카오루의 눈동자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무엇인가가 생각났다는 듯 몸을 돌려 바다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기를 반복했다. 그의 일상에서 중력이 점점 걷혀가는 것 같았다. ‘눈치가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칸자키마저도 신카이의 이변을 알아 챌 정도였다.

그래서 이쯤 하겠거니생각했다. 신카이의 두 발에 달라붙어있는 중력이 제거되는 것은, 하카제의 앞에서 뿐이었다. 고백을 앞둔 여자아이들을 수없이 봐 왔기에 알 수 있었다. 남자애라고 해서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막상 받으니 김이 샜다. 하카제는 석양을 머금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색이 없는 수면에 빛이 들어 반짝였다. 하늘의 가장 먼 곳부터 밤이 오고 있는지, 점점 하늘의 명도가 달라지고 있었다. 바다 쪽에서는 파도와 함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카오루는 흘러가려 하는 제 앞머리를 눌렀다. 카나타는 그러한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맹목적인 시선이 어쩐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여전한, 흑백의 세계 속에서 카오루는 눈을 깜빡였다. 언제나 바다의 색을 이야기 하던 입모양은 멈춘 채로 가만히 있었다. 좋아해요, 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시야에 바다가 여전히 새까맣게 보인다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선언이었다. 카오루는 곤란한 듯 볼을 긁적였다. 앞머리가 날렸다. 카오루는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라고 소리를 내자 카나타는 부담스럽게 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바다처럼, 상냥한 목소리였다. 훈풍이 불었다. ‘밝은회색이 그의 발목을 감싸 안았다가 스치고 사라졌다. 눈을 감았다 떠도 여전히 그의 바다에는 색이 들지 않았다. 눈이 피로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는 카나타의 말을 반추했다. 색이 드는 순간은 엄청 화려해서,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노을처럼 번졌다. 짝사랑을 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에 색이 차오르는 걸까, 카오루는 작게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무슨 말 할지는 알고, 있지?”

 

꼭 저가 나쁜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카나타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오루가 바다 색을 말하지 않으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카나타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했다. 그는 카오루의 어깨 너머로 번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하늘색과, 해변가의 모래들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그가 움직이거나, 무언가 결착을 짓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카오루는 그 자리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카오루는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검은 파도가, 오늘따라 유난히 투명하게 보였다. 카나타는 그의 시선을 따라 보다가, 여전히 파랗고, 예쁘네요- 라고 말을 걸었다. 그가 말하는 파랗다가 어떤 느낌인지 카오루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밀려오는 파도가 머금고 있는 빛의 수치가, 카나타의 머리카락 과 닮았을 것이라 유추할 뿐이었다.

다시 침묵이 밀려왔다. 카나타는 말을 고르는 듯 했다. 언제나 그는 물에 떠 있는 것처럼 상냥했기에, 충격도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도, 카나타는 무언갈 가라앉히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의 운동화 앞꿈치가, 아직 물에 젖지 않은 모래를 툭툭 건드렸다. 카오루의 색이에요, 라는 목소리가 속삭이듯 울렸다. 그 소리가 찾아온 다음,다시 그들의 무대에는 작은 암전이 내렸다.

 

카오루, 물어볼 게 있어요.”

뭐든지. 다 대답 해 줄게.”

그럼, 바다는 좋아하나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신카이 카나타의 고백을 거절했다고 해서, 하카제 카오루가 바다를 싫어할 이유는 추호도 없었다. 그는 바다와 신카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했지만, 연결고리를 찾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여름의 열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은 조금은 끈적이고 조금은 상쾌한 기분이었다. 카오루는 그와 눈을 마주치면서 좋아해, 라고 말했다. 그 말이 위안이라도 되는 듯 카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네요, 라는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았다.

고백을 거절했다고 해서 어색해질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간의 불안감이 맑은 날의 먹구름처럼 맴돌았다. 색 없이 명암만을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카나타는 홀로 반짝이고 있었다. 카오루는 눈을 깜빡였다. 그는 잔잔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 아직 친구지? 라는 멍청한 질문에도 카나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는 눈을 접어가며 미소지었다. 그럼요, 친구랍니다- 라는 대답을 듣고서야 카오루는 뒤를 돌 수 있었다.

회색 세계, 개념으로만 알고 있는 노을. 번지지 않은 색. 카오루는 자신이 카나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변하지 않는 시야로 대신했다. 그럼 내일봐- 라고 뒤를 돌지 않고 소리치자, 내일은 어항 청소를 할 거랍니다- 라는 목소리가 울렸다. 청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사이에 수조에 이끼가 심하게 자라고, 수조에 기르고 있던 엠퍼러 엔젤피쉬에게 반점이 생겼다고 하더니, 그걸 처리 할 모양이었다. 카오루는 등 뒤를 돌았다. 얼굴이라도 보고 인사 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카나타를 부를 수 없었다. 그는 하염없이 백사장과, 그곳에 밀려오는 파도자락을 보고 있었다. ‘을 볼 수 있는 그에게 그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카오루는 상상했다. 카나타의 머리색은 분명 바다라고 했었고, 제 머리색은 백사장의 모래알갱이를 담은 듯한 따듯한 색이라고 했었으니, 지금 카나타가 보고 있는 풍경은 저에게 카나타가 물드는 것 같은 느낌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제 머리카락을 닮은 따듯한 주황이 노을에 포함되어 있을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아직은 닿을 수 없는 세계였다. 카오루는 아쉽다는 생각을 하다가 기지개를 폈다.

갑작스러운 오후를 흔들었던 고백에 잡생각이 번진 것 같았다. 바람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잡히지 않는다. 카오루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일부러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바람에도 색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몇 십걸음 정도를 걸었을 때, 그는 뒤를 돌았다. 카나타는 여전히 번져가고 있을 노을이 담긴 바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에 밀려오는 파도, 그리고 그 파도가 야금야금 적셔가고 있는 백사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오루는 콧노래를 불렀다. 퍼퓸의 Love the world였다.

 

 


 

***

 

남자애냐, 여자애냐 묻는다면 당연히 여자아이 쪽이 좋았다. 남자가 갖지 못하는 부드러운 곡선이, 바다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는 제게 훈풍이 불어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는 다음 날 등교를 하고 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라앉지 않은 두근거림은 그를 바닥에서 3cm 정도 띄워 놓은 채, 가라앉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물 안에서 물장구를 치는 느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시야는 여전히 흑백이었고, 변할 것은 없었다. 카오루는 여전히 카나타에게서 바다 이 어떤지, 지금 서핑을 하러 나가도 괜찮을지 물어 볼 것이었다.

색을 볼 수 있는 건 대단한 권리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야지만 알 수 있다. 수많은 여자아이들을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계는 여전히 흑백이었다. 미술시간, 세나는 여전히 색이 안 보인다고 말하는 카오루에게 써야 할 물감을 쥐어주었다. 그는 그것을 바다와 하늘에 칠하라고 조언하면서, 그의 세계에 여전히 색이 없는 건 가벼운 사랑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 사랑한다는 건 뭔데? 카오루가 물었다. 두 사람의 타이밍이 어긋났다. 이즈미는 이건 조금 흰색이 섞인 파랑, 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쥔 파렛트에 물감을 짜냈다. 그는 잠시 음, 하고 말하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사람이 좀 맹목적으로 변하는 거?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우 군때문이야? 카오루가 물었다. 세나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세나의 옆에 앉아 있던 모리사와는 성애적인 사랑이어야지만 색이 보인다고 대답했다. 세나는 그 대답이 조금 부끄러웠는지, 그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카오루는 명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르지 않은 두 파랑을 캔버스에 발랐다. 덧칠하면 할수록 종이가 일어났다. 좀 더 투명하게 칠해, 라는 어드바이스는 달갑지 않았다. 그가 보는 바다와 세나가 보는 바다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많이 보러 가도 말야, 색이 보여야 말이지. 하카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붓을 천천히 움직였다. 언제나 바다의 색을 설명해주던 카나타의 목소리가 번져왔다.

그는 언제나 바다에 대해서 설명했다. 안내원 같기도 했다. 오늘은 검은 색이 섞여 있으니 오늘 수심이 깊어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답니다- 라던가, 오늘은 물 색이 투명하고 파도가 거칠지 않은 게, 서핑을 즐기기 좋은 날씨네요- 따위를 말해주는 목소리는 언제나 상냥했다. 그에게 색을 물어보는 건 하루의 일과 같은 일이었다. 어느 여자애도 해주지 못한 일이었다. 여자냐 남자냐 묻는 다면 당연히 여자가 좋았지만, 그냥 탐포포쨩이냐 신카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좋으냐 싫으냐 묻는다면 좋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색이 생기지 않는 것이 거슬렸다. 그와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바다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퍼퓸의 love the world를 듣는 기분이었다. 온 세상에 일렉트로닉 리듬이 가득하며, 양 발을 가득 별이 들어있는 밤바다에 담그며 왈츠를 추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색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제한이었다. 이 세계의 규칙에 어긋 나 있다는 것이 걸렸다.

카나타 군은 상냥했는데. 카오루는 흘리듯 말했다. 세나는 그의 그림을 흘겨보다가 그럼 걔한테 색 물어 보든가, 하고 대답했다. 세나의 그림은 명도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볼 수 없지만 도 조화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의 팔레트에서 가장 진한 건 검은 색이 아니라 다른 색일 것이었다. 조금, 짜증이 났고, 조금 분했다. 사랑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색을 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카나타 군한테는 물어보기 싫달까-. 카오루는 입술을 뾰쪽하게 하고 말했다. 세나는 그를 흘겨보더니, 다시 제 캔버스에게 눈을 돌렸다.

 

색을 볼 수 있는 건 어떤 느낌이야?”

세상이 열리는 느낌.”

 

중력이 뒤바뀌는 느낌. 붕붕 떠 있는 느낌. 사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느낌. 세나는 세 마디를 연달아 쏟아내더니, 부끄러운지 입을 꼭 다물었다. 여태까지 그런 연애는 해 봤던 것 같은데, 왜 나한텐 색이 없을까. 하카제는 턱을 쓸었다. 세나는 그의 얼굴을 보다가 엇, 하고 멈칫했다. , 뭐 묻었어? 하카제가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묻었다! 모리사와가 신카이의 얼굴을 보더니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하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개념으로만 아는 바다를 칠해갔다. 깊은 곳은 어둡게, 얕은 곳은 투명하게. 이론으로만 아는 걸 명도로만 조절하며 움직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무채색의 바다는 무슨 색을 하고 있을까, 눈을 비비고 감았다 떠도 그의 세계는 여전했다. 그는 어서 미술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어째 수업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바다색을 물어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백을 거절했다고 해서 친구가 아닌 건 아니니까.

종이 울렸고,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옆 반으로 가서 노크를 하면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카오루를 먼저 발견 한 건 카나타였다. 그는 언제나 카오루를 빠르게 찾아왔다. 어떻게 이렇게 올 수 있는 거야? 카오루가 물었다. 카나타는 웃으면서 머리카락 색이요, 라고 대답했다. 그의 세계에서 색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카오루는 제 볼을 긁적였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색을 묻히고 있네요?”

다른 색?”

카오루의 여기에- 이렇게-”

 

묻어, 있잖아요? 신카이는 손을 뻗었다. 그는 하카제의 볼을 쓰다듬었다. 묻은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라고 말하면서 그는 손을 벅벅 움직였다. 볼이 따가울 정도로 쓰렸다. 신카이는 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는 니토가 가지고 다니는 물병에서 물을 따라 손수건에 묻힌 다음, 하카제의 볼을 톡톡 두드려 문지르기 시작했다. 볼에 닿은 다음 슬슬 쓸어내자, 그제야 무언가 묻은 게 지워지는지 신카이는 기쁜 듯 웃었다.

빛번짐이 심했다. 하카제는 눈을 감았다. 신카이는 그의 반응이 볼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손수건을 때고 제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볼을 연신 쓸었다. 물감이 묻었어요. 내 머리카락 색 같은 파랑이고, 바다 같은 파랑이랍니다. 그는 색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하며 재잘거렸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을 뜨기 무서울 정도로 번져오는 감각들에,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잠깐만, 카나타 군, 이라고 말을 걸자 신카이는 네에- 하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는 눈을 떴다.

 

천천히, 흑백이던 세상에 물이 들고 있었다. 하카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는 흰 손수건에 번진 파란 색과, 카나타의 머리카락 색이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은 초록색이라고 들었던 적이 있으니, 저를 바라보는 이 두 눈은 초록이라는 두 글자에 합당한 색일 것이었다. ? 이제 와서? 갑자기? 하카제는 허공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카오루,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신카이가 상냥하게 말을 붙여왔다. 오밀조밀하게 움직이는 입술에는 엷은 색이 들어 있었다. 예쁜 빛깔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세계에서, 시선을 잡아채는 것은 신카이의 색 뿐이었다. 그의 손수건에 묻어있는 색은 세나가 집어 주었던 바다였다. 그의 손 끝에 묻어 있는 바다 색은 신카이의 머리색과 꼭 닮아 있었다. 시야가 번지려고 했다. 그는 눈을 꼭 감았다. 홀릴 것 같은 빛깔이었다. 눈을 감아도 그가 담고 있는 파랑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카오루, 양호실에 갈까요? 신카이는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다. 카오루는 입을 열었다. 한 마디를 하는 게 겨우였다.

 

있지, 카나타 군의 머리색, 바다 색이니?”

그럼요, 모래사장에 밀려오는 파도 색이랍니다.”

 

신카이는 언제나와 같이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울 것 같았다. 눈을 다시 뜨는 게 무서웠다. 하카제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눈에 뭔가 들어갔나요? 그가 물었다. 카오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를 걱정스러운 듯 본 신카이는, 하카제의 손을 잡았다. 손을 엮어 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양호실로 갈까요? 그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그의 허리춤에 손을 둘렀다. 한 걸음 씩, 천천히 가요- 라고 말하는 목소리에서는 바다 향이 났다.

감은 눈 너머로 본 카나타의 머리카락 색, ‘수초같은 색일 눈이 자꾸만 시야에 번져왔다. 두근거림에 중력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아직 이 다음을 알 수 없어, 함부로 내딛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닿은 자리가 화끈거렸다. 신카이의 목소리에 맞추어 그는 한 칸, 한 칸, 계단을 내려왔다. 1층 서관이에요,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했다. 하카제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의 세계는 색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색들 중에서 여전히 제 빛을 가지고 있는 건 카나타 뿐이었다. 그는 바다 같았다.

있지, 라고 운을 떼자 카나타는 네에, 하고 대답했다.

 

우리 바다로 갈까?”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였다.

 

 


 

***

 

언제부터 색이 보였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카나타는 분수 속에서 기지개를 펴고, 엎어져있던 몸을 일으켜 올바르게 앉았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가고 있는 지,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카제는 신카이의 머리색보다 옅은 분수의 물을 보면서, 이게 노을이랑 같은 색이야? 라고 물었다. 신카이는 놀란 얼굴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물은 파랑이고, 노을은 오히려 카오루를 닮았다고 대답했다.

카나타 군 여자 친구 없으니까, 그럼 짝사랑인가? 하카제는 하품을 하며 물었다. 따분함을 달래기 위한 질문이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한 심심풀이였다. 아직도 색의 처음을 생각하고 있던 신카이는 음, 하고 다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쌍방향 사랑인데 안 사귀어? 라는 놀란 목소리에 신카이는 후후, 하고 목 끝으로 웃었다. 그는 파도의 사랑을 모래사장은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면서 후후 웃었다.

 

아마도 카오루가 바다를 좋아하기 시작한 날부터 색이 보였을 거예요.”

확신 해?”

그럼요?”

 

알려주기 싫다면 알려주기 싫다고 대답하라구! 하카제는 그렇게 말하며 분수 속에 들어있는 그 쪽으로 목을 댔다. 카오루의 머리카락은 모래사장을 닮았네요, 라고 말하며 신카이는 젖은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 끝을 간간히 건드렸다. 그런 날이 있었다.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찬 날, 그 때 카오루를 봤었답니다, 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그저 장난으로 치부했던 날이 있었다. 하카제는 머쓱한지 뒷목을 긁었다.

그는 눈을 감고, 신카이와 팔짱을 낀 채로 다가갔다. 노을이 번지고 있답니다, 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늘 밤 되면, 스피츌라 할까? 하카제가 물었고, 신카이는 그래요- 하고 대답했다. 불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막대 불꽃은 별을 따다놓은 것 같아서 좋아한답니다, 라는 부연설명이 따라왔다. 버석거리는 모래사장이 신발 밑창 사이로 느껴질 때야, 카오루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 곳에는, 노을이 번지는 바다가 있었다. 그는 번지기 시작한 노을의 분홍빛과, 하늘의 파란 부분이 섞이는 곳을 바라보았다. 모래가 담고 있는 버석거리는 색이 어느 정도 걸쳐 있었다. 그는 주황빛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다가, 파도가 적시는 백사장을 바라보았다. 제 머리카락 색처럼 은은한 모래알들이 발에 채였다. 신카이는 그의 뒤에서 그저 머물러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았다. 중력을 잃어버린 것 같은 세계에서, 3cm정도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의 바다색 머리카락에 노을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있지, 내가 할 말 알고 있어? 하카제가 물었다. 신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왜 바다로 오자고 했는지도 알고 있어? 신카이는 짐작이 가네요- 라고 대답하면서 웃었다. 그의 눈은 예쁘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색이 있는 세계에 발을 들인 것도 알고 있느냐 물으려다가, 하카제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알고 있는 말인데 말해 줄까? 그는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카오루는 바다를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해줄줄 알았어요.”

 

하지만 한 번쯤은 듣고 싶어요. 의심 하나 없이 기다리는 것도 힘든 일이거든요- 신카이는 눈을 마주치다가, 다시 웃었다. 하늘이 노을의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바다는 끊임없이 모래사장으로 제 몸을 밀어오고 있었다. 사랑이란 이름의 문을 열면, 열수록, 두근거리는 마음이 번져왔다. 퍼퓸의 love the world의 구절이 번져왔다. 반드시 마음에 들어 할 거라는 가사에는 의심이 없다. 세상을 가득 채운 빛깔에 대해 하카제 카오루가 외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파도 소리와 함께 말문이 터졌다. 모래알은 서툴게, 바다를 붙잡았다.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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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카나] 나는 위험한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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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카나] The Plastic Garden

*카오루와 카나타는 비틀린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삼기인이 인외종족이라는 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리츠이즈 주의. 














The Plastic Garden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아무래도 내 옆집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

   카오루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 쉬었다. 뻐끔뻐끔 벌려지는 아가미에서는 작은 기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수조의 수면이 찰랑찰랑, 움직인 듯 물이 넘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수조 안은 어떠한 흐름도 없이 평평했다. 그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웃으면서 뒤를 돌았다. 곧 오븐 안에 있는 농어가 다 익을 것이었다. 그는 자신들의 식사시간이 틀어지지 않길 바랐다.

   범죄자가 있다면 이사를 가는 게 좋을까, 그는 작게 운을 땠다. 수조에서는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만이 들렸다. 잔잔하고 기묘한 평화. 카오루는 실소를 터트렸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 와중에, 물고기를 넣어둔 오븐에서 경쾌한 종소리가 났다. 그는 천천히 오븐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지극히 불안한 일이었다. 카오루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집 사람이랑 오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어.”


    카오루는 작게 웃었다. 농어에서 짠 내가 났다. 알맞게 익은 것 같았다. 그는 접시에 농어를 옮겨 담았다. 소금은 드문드문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작은 망치와 포크를 들고 농어에 둘렀던 소금을 천천히 깼다. 방 안에 정적이 흐를 때 마다 카오루는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곤 했다. 그는 자신의 시야에 담기는 수조의 가장자리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돌 색이 별로 안 예쁜 것 같았다. 그는 다음에는 흰 돌을 사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생각들은 물에서 이는 기포처럼 포르르 떠올랐다 의식의 흐름에 밀려 사라지곤 했다. 조용한 가운데, 벽을 타고 끼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에서 흐르는 소리였다. 봐봐, 저거 진짜 범죄자 같잖아, 카오루는 한숨을 내 쉬었다.

   도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다. 이쯤이면 회사와도, 간간히 라이브를 하는 극장과도 가깝다. 집세가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다. 애초에 공동주택으로 등록 된 건물이었기 때문에 전기세도 다른 곳에 비해서 나쁘지 않다. 카오루는 자신의 아파트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범죄자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제 보금자리를 포기하기엔 리스크가 크다. 그는 수사 협조가 들어왔을 때 수조에 대해서 어떻게 변명할 지를 골똘히 고민했다.


   “벽 긁는 소리랑 신음소리가 들려온다고. 뭐 기르시는 거 있으세요, 하고 물어봤다?”


   유리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오루는 자신이 한참이나 말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침묵은 지양해야 한다. 그는 두 개의 밥공기에 밥을 덜었다. 하얀 쌀밥에서 모락모락 김이 났다. 그는 설탕을 넣은 계란말이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곤, 다시 불 앞에 섰다. 프라이팬이 데워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카오루는 입을 열었다.


  “근데 옆집 사람이 말야, 새를 기른다고 하더라고.”


   카오루는 실소했다. 옆집 사람은 미리 시뮬레이션 해뒀던 것처럼, 그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새를 한 마리 기르고 있어요. 근데 조금 커서, 벽지를 득득 긁더라구요.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붉은색 눈을 가늘게 접어 웃었다. 매력적인 웃음이었다. 카오루는 그게 요샛말로 ‘사이코패스’라고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계란 두 개를 볼에 까 넣었다.

   새라니, 웃기지도 않지. 요즘 새는 신음소리를 내나? 울먹이는 목소리로 쿠마 군, 하고 속삭이던가? 카오루는 허허 웃으면서 젓가락으로 노른자를 으깼다. 남자는 분명 누군가를 감금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범죄자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감각이라니, 그는 짧게 몸을 떨었다.

   그는 계란을 달궈진 프라이팬에 넣었다. 그는 설탕을 넣지 않은 것을 깨닫고 얼른 찬장을 열었다. 조미료 통 뒤의 식기가 눈에 들어왔다. 두 개씩 짝을 맞추어 산 것들이었다. 얇은 벽을 타고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랑해,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싼 아파트는 이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카오루는 계란판으로 벽을 두르던지, 방음 인테리어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수조에 대해서는 변명하기 귀찮은데.”


   경찰이 오면 그 남자와 일면식도 없다고 둘러대는 게 좋겠지? 카오루는 질문했다. 대답이 없자 그는 뒤를 돌았다. 계란은 신경질적으로 열을 받고 있었다. 계란에 설탕이 뿌려진 꼴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카오루는 수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조 속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 풀어진 바다색 머리카락이 아름다웠다. 하늘하늘한 머리카락들이 물을 머금었다. 카오루는 그 광경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아름다웠다. 그의 팔은 물속에서 무게감 없이 흔들렸다. 그는 마치 커다란 고래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풀어진 머리카락들은 열대어의 꼬리 같았다. 베타나 금붕어보다 훨씬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었다. 카나타는 계란, 하고 입을 움직였다. 그가 말할 때 마다 투명한 공기방울들이 수조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카오루는 그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얼른 프라이팬 앞으로 몸을 옮겼다.

   계란의 뒷면은 형편없이 탔다. 그는 미간을 좁히고 계란을 말았다. 딱딱하게 굳은 계란은 잘 말리지 않았다. 카나타는 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쉬운 듯,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수조의 천장을 보고 누웠다가, 몸을 돌렸다. 그의 발목에 걸려 있는 족쇄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물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카오루는 피식피식 웃었다.


   “옆집에서 정말 살인이 나면 어떻게 될까.”


   그럼 이렇게 증언해도 괜찮을까? 옆집에 사는 사쿠마 씨는 저에게 새를 기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것 말고는 몰라요― 라고, 카오루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것 처럼 유쾌하게 말했다. 물이 찰랑찰랑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아직 식사준비가 덜 되었음으로 열쇠를 넣어줄 수는 없었다. 카나타는 유리벽 쪽으로 다가가, 인공 산호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얼마 전에 사 넣었던 꽃과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카나타는 팔짱을 끼고 수조의 전체적인 조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오루는 그 광경이 뿌듯하기만 했다. 그는 엉망이 된 계란말이를 수습해 두 개의 접시에 나누어 담았다. 그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신카이 카나타와 함께하는 저녁을 위하여, 요리를 하는 이 순간이 사랑스러웠다. 그는 장아찌 몇 개와, 얼마 전 만들어 둔 마른 찬 몇 가지를 꺼냈다. 메인 요리는 소금과 함께 오븐에서 구운 농어였음으로 그 반찬들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내놓는 것과 같았다.

   마치 수조 안의 카나타를 위하여 꾸며둔 인공 정원처럼. 카오루는 제 수조를 바라보았다. 옆집 사람에게 말했던 ‘취미가 물질’이라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거대한 수조를 갖고 있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열대어가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합의 된 사항에 강제성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위안에 가까웠다. 카나타가 제게 베푸는 친절과도 같았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 족쇄를 차고 물 안에 들어갔다.

   이상한 관계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옆집 보다는 훨씬 낫다. 자신은 그래도 합의 하에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언제,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연인을 붙잡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하카제 카오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수조에 담겨 식탁 쪽을 보고 있는 제 연인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마주했다. 그는 구색을 맞춘 식사를 정갈하게 차렸다.

   식탁 위의 무드등이 켜졌다. 그는 카나타와 옆집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수조 안의 상황이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카나타의 목소리로 확인받고 싶었다. 그는 접시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서로의 눈 색을 한 접시들은 정갈했다. 중앙에 있는 농어의 눈이 죽어 있는 게 신경이 쓰여, 카오루는 괜히 소금을 들어 농어의 머리를 가렸다.


   그는 천천히 수조로 다가갔다. 그의 인공정원의 중앙, 카나타는 웃고 있었다. 그가 숨을 쉴 때 마다 목에서 공기방울이 퍼졌다. 저만을 위한 우주를 보는 것 같아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종교를 마주하는 것처럼 성스러워 카오루는 손을 들어 성호를 긋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게 터진 실소를 웃음으로 오해했는지 카나타는 눈을 마주치다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손가락 끝이 산호초처럼 붉었다.

   카오루는 수조 가까이 다가갔다. 카나타의 입모양이 천천히 사랑한다는 약속처럼 움직였다. 카나타는 발을 움직여, 수조 벽 쪽으로 다가갔다. 카오루는 수조에 손을 댔다. 두 사람의 손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닿았다. 약간 차이 나게 가려지는 손끝을 마냥 사랑스럽게 보다가 카오루는 천천히 유리벽에 입술을 댔다. 카나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수조 벽에 제 입술을 댔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입에 닿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았다. 수조 안에 넣어둔 소나무 분재의 줄기가 휘어져 있었다. 카오루는 비틀린 사랑에 대하여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숨이 닿지 않는 키스에, 입술이 간질거리기만 했다. 뒤틀려 있다고 해도 둘 사이의 관계였다. 이런 행위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사랑하는 연인의 세계를 간섭할 수 있는 것은 시간으로 족했다.

   카오루는 눈을 떴다. 유리벽에는 제 숨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모양을 가만히 보다가, 수조 안으로 열쇠를 던졌다. 카나타는 익숙하게 그것을 잡아, 제 Q발목에 걸려 있는, 헐렁한 족쇄를 풀었다. 그가 발을 구를 때 마다 물살이 갈라지고, 기포가 움직였다. 수면을 비집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카오루는 두 팔을 벌렸다. 수조에 설치되어 있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던 카나타는, 그의 손에 열쇠를 쥐어 주고 나서야 그를 끌어 안았다.

   바짝 말라 있던 옷이 젖을 때 마다, 카오루는 더 없이 행복했다. 이대로 세상의 끝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카오루는 작게 웃으며, 젖은 머리카락을 걷어 드러난 둥그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유리벽보다 차가운 이마에서는 바다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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