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cetera | 2016. 3. 30. 23:53
*이사님의 화조풍월...이었나.. 가챠 보험.....♡
*기모노집의 비가 오면 쉰다는 설정은 동명의 소설에서 빌려왔습니다.
*쿠로는 30대 중반, 테츠는 고등학생.
喋喋喃喃
1. 작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
2. 남녀(男女)가 정답게 속삭이는 모습
비가 오는 날이었다.
점심시간부터 간간히 내리던 보슬비는 어느새 장대비로 바뀌어 있었다. 회색 먹구름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지 오래였다. 가지고 있던 우산을 타카미네에게 넘겼던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구모는 제 머리카락을 털었다. 운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그가 오늘 했던 선택 중 유일하게 잘 했던 것은, 가방을 학교에 놓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야속한 하늘을 바라보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닦았다.
나구모는 골목길로 들어갔다. 추적추적하게 내리는 빗물에 가쿠란이 모두 젖어, 몸이 축축 늘어졌다. 사실, 타카미네에게 우산을 넘겼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늘에 건 도박이었다. 그는 골목길을 두리번거렸다. 명백하게 목적이 있는 행위였다. 그는 으슬으슬한 몸을 웅크렸다. 저번에 봤던 ‘그 가게’는 골목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붉은 처마가 인상적인 가게였기 때문에, 쉽게 찾으리라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그 때도 헤매다가 들어간 가게였다. 나구모는 이미 젖어서 가라앉은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몸이 차가웠다.
그 가게는 제법 독특했다. 헌 기모노를 매입해 다시 수선해서 팔거나, 대여해주는 가게 자체는 특이하지 않았지만, 그 가게가 있는 위치와 운영 방식은 일반 가게와는 달랐다. 보통 그런 가게는 대로변에 있기 마련이다. 입소문이 나기 어려운 품목이며, ‘중요한 날’을 잊어버린 손님들이 흘러 들어오기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게는 골목 속의 골목 안에 있었다. 포목점과 이불집 사이에 난 샛길로 들어와, 비슷해 보이는 골목 여러 개를 지나가야 했다.
산을 깎아 만든 지형이라 그런지, 골목의 높낮이 또한 심했다. 군데군데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민들레 정도가 볼만 한 곳이었다. 낡은 건물들 사이에 있는 목조건물은 제법 운치는 있었지만, 생활고 때문에, 혹은 여타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기모노를 파는 손님들에게 있어 좋은 위치는 아니었다. 과연 장사가 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심하게, 가게 입지가 좋지 않았다. 심지어 골목의 초입과 끄트머리에는 지번 안내표 또한 붙어 있지 않았다.
그 길을 모두 기억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구모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목조건물로 보이는 건물은 없었다. 그는 다시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감과 운에 모든 걸 걸기로 했다.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목을 쭉 빼고, 발뒤꿈치를 들어봐도 그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홍월’이라고 적힌 한자 간판도, 붉은색으로 칠해진 차양도 보이질 않았다. 또 길을 잘못 든 게 분명했다.
가게를 찾아도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나구모의 기억으로는 분명, 그 가게는 ‘비오는 날’은 휴업 이라는 규칙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장대비를 맞으면서 골목과 골목 사이를 헤매는 것은, 비오는 날 주워진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남자를 떠올렸다. 남자의 붉은 머리카락이 기억에 흐릿하게 번졌다. 그는 그가 입었던 단정한 실내 전통복을 반추했다. 지나치게 단정한 옷이었다. 마치 상복과도 같았다.
그 날도 비가 왔었다. 오늘처럼 타카미네에게 우산을 일부러 준 날은 아니었다. 봄비치고 거세게 내리는 비에 옷과 머리가 모두 젖은 날이기도 했다. 하교 할 때 포목점과 이불집 사이에 있는 골목에 위치한 두부가게에서 두부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받았다가, 길을 일은 날이었다. 초행이라 우산도 없이 헤매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기에 고개를 들었더니, 검은 장우산을 든 남자가 있었다. 사나운 인상은 고양잇과의 맹수를 닮아 있었다. 그 때도 그는 검은색 전통의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나구모에게 무얼 찾고 있느냐 물었다. 두부가게라 대답했더니 그는 혀를 쯧쯧 차며 한참을 지나쳤다고 대답했다. 그는 물에 젖고 있는 가쿠란을 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사나운 인상이 안 그래도 더 구겨지는 모습을 보며, 나구모는 바짝 쫄아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남자는 빗물이 섞여 들어간 채로 쥔 주먹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의 젖은 머리카락에 손을 올려 두어 번 두드렸다. 사납게 생겨서 오해한 모양인데,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미 젖은 나구모 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옷, 말리고 가라.
그는 그렇게 말했고, 나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가 입은 교복이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반 보 정도를 앞서 걸었다. 빗물이 튀어 그가 입은 옷의 헐렁한 바짓단을 적셨고, 장우산 끄트머리에서 떨어지는 빗물들은 그의 턱선을 타고 흘러 목의 끄트머리에 고이길 반복했다. 남자의 키는 컸으며, 운동을 했는지 어깨선이 탄탄했다. 그는 자신이 기모노 수선집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원이 확실하지도 않는데 옷을 말리러 오는 나구모의 헐렁한 태도를 지적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키류 쿠로’라고 소개했다. 키류, 라던가, 쿠로, 라던가, 묘하게 입에 딱 달라붙는 발음이었다. 쥐었던 주먹을 꼼지락거리며 그의 널찍한 등을 보며 길을 걸었다. 유기되었다가 주워진 기분이었다. 이상하고, 야리꾸리한 느낌이었다. 십분 정도 골목을 탔을 때, 그들은 키류의 가게에 도착했다. 홍월, 이라는 이름의 가게는 건물부터 단정했다. 나구모가 그 외관을 볼 때, 키류는 문을 열었다. ‘비오는 날은 휴일’이라고 대충 적힌 A4용지가 펄럭였다.
―쉬는 날 아니심까?
―기모노 사러온 거 아니잖냐.
―그건 그렇지만, 휴일을 방해 한 기분임다!
―옷을 꺼내 줄 테니 말릴 때 까지만 있어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제 체육복을 꺼내 주었다. 두부 심부름은 저가 할 테니, 가게 안에 있으라는 말에 나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하고 몸을 90도로 굽혀 인사하니, 그는 묘하게 부끄러움을 타는 얼굴을 하다가, 제 볼을 긁었다. 수줍음을 타는 표정이었다. 욕실의 위치를 알려준 그는 다시 검은 장우산을 펼치고 문 밖으로 나갔고, 혼자 남은 나구모는 처음 보는 사람의 가게에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이 마법같은 인연이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니 ‘키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나구모는 다다미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가게를 둘러보았다. 기모노 몇 벌이 마네킹에 피팅 되어있었다. 천으로 솜씨 좋게 가려놓은 곳에는 계단이 있었는데, 올라가보진 않았지만 나구모는 그곳으로 올라가면 키류의 집이 나온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겉에서 본 ‘홍월’은 2층 집이었다. 그는 그 젊은 기모노 수선집 사장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었다. 비에 젖었을 때 무거워지는 그림자처럼, 키류가 아주 조금 수줍어하던, 그 표정이 마음에 길게 남았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두부를 가지고 들어왔고, 나구모의 가쿠란을 말리기 시작했다. 세탁까지 하면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나구모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장이라고 불러도 됍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는 저 같은 것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면서 머쓱하게 웃었다. 그 ‘머쓱해하는 지점’이 나구모의 마음을 봄비처럼 사박사박 적셨다. 탈수기가 돌아가는 그 시간 동안, 키류는 차를 끓였다. 솜씨가 그렇게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끓인 차는 따듯했다. 캐모마일을 다구에 끓인다는 것 자체가 언밸런스했지만, 그 순간엔 그거면 되었다.
차를 마시는 동안 그들은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가라테 선수권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직도 학교에 남아계신 고전 선생님과, 수학 선생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렀고, 나구모는 키류가 음악을 했다가 몇 해 전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는 잠시 가게 한쪽에 마련 되어있는 불단에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이 깊게 뿌리내린 나목처럼 남은 이유를 나구모는 알지 못했다.
말린 가쿠란은 비닐 쇼핑백에 넣어 포장했다. 그는 우산 하나를 쥐어주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가져다주러 오겠습니다! 라는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학교 끝나고 오면 가게 문 닫았을 걸. 그는 덤덤하게 말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 날 나구모는 길을 외우려고 노력하며 걸었다. 하지만 키류의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그 사건 자체가 허상이었는지, 그는 하교 중의 골목길에서 그를 절대로 발견할 수 없었다. ‘홍월’ 또한 마찬가지였다. 골목은 더럽게 복잡하게 엉켜 있었고, 나구모는 그와 함께 걸어간 이후로 그 가게를 발견하지 못했다.
맑은 날 발견할 수 없었기에 그가 걸 수 있는 마지막 도박은 비오는 날이었다. 그는 일부러 타카미네에게 우산을 넘겼고, 봄비라기에는 거센 장대비에 몸을 맡기며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슬슬 포기해야 할 타이밍 같았다. 그는 그렇게 찾아도 못 찾던 두부가게의 처마에 몸을 잠시 의탁했다. 김이 모락모락 솟는 큰 두부를 하나 사서 손에 쥐고, 빌린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겨우 닦자, 서러움이 밀려왔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게 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과한 생각인가 싶었다. 나구모는 고개를 숙였다. 다 젖어버린 신발과 양말이 처참했다. 그는 발을 꼼지락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빗물에 젖은 손을 주먹을 꽉 쥐자, 두부가 들어있는 비닐봉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두부가게를 지나가는 젖은 고양이들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두부가게 주인은 신문지라도 주랴? 하고 말을 걸었다. 그 신문지를 받아들까, 하다가 나구모는 고개를 저었다. 울면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 날 이후 빗물처럼 스며 있던 ‘곤란하게 웃는 모습’을 지워내기에 좋은 날이었다. 다시 한 번 좋은 도자기에 끓인 싸구려 캐모마일 차를 마시고 싶기도 했다. 낮은 목소리를 듣고 싶기도 했다. 남자를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나, 그래도 다시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왜 비오는 날 휴업을 하는지, 그럼 일요일에는 쉬지 않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수학은 좋아했는지, 왜 갑자기 도시에서 음악을 하다가 귀향하게 되었는지, 나구모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묻지 못한 질문들은 빗소리가 되어 흘렀다.
“도련님은 비 맞는 게 취미인가?”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의 어개를 누군가의 손가락이 톡톡, 두드렸다. 엉망인 얼굴로 고개를 들자, 그토록 찾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서 키류 씨, 라고 입을 때고 그 이름이 남긴 잔향을 캔디처럼 입 속에서 굴리고 있자, 그는 옷 말리고 갈래, 하고 다시 한 번 말했다. 휴업이지 않슴까, 하고 괜히 묻자, 그는 그래도 말리고 가라, 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에게 나구모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그래도 그 또래인 여동생이 있다고 말했다.
나이, 알고 있슴까, 하고 묻자 키류는 명찰 색. 이라고 대답했다. 저가 차던 것과 같은 색이니까 졸업년도를 계산했다는 말에, 나구모는 그가 자신을 생각해준 것 같아 마냥 좋았다. 그는 길을 기억하기 위해 고개를 똑바로 들고 일어났다. 두부가게를 어떻게 찾아온 지 모르기 때문에, 좌표가 정확하지 않았다. 손에 든 두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키류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날 입고 갔던 체육복은 바지도, 소매도 한참을 남았다. 접어서 올린 자국만큼, 그가 베풀었던 친절과, 남겼던 표정들이 나구모에게 의미를 남기고 있었다.
그는 우산을 들었다. 들어오라는 듯 왼쪽을 남겨주고 있었다. 나구모는 그 속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두부 좋아하나, 하고 키류가 물었다. 나구모는 저번에는 심부름이었고, 오늘은 그냥 먹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비오는 동안 탕이라도 끓일까, 하고 키류가 두부가 든 검은색 비닐봉투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오늘도 전통 의복을 입고 있었고, 그에게서는 미미한 향냄새가 났다. 대장에게라면 줘도 괜찮슴다! 나구모는 기운차게 대답했다. 대장이 아니래도, 라고 말하면서도 키류는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는 ‘홍월’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 싶었다. 간간히 찾아와도 괜찮으냐고 묻고 싶었다. 안 된다고 하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고 싶었다. 봄비처럼 찾아와, 여름 장대비처럼 짙게 남은 마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그는 그 때 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키류는 나구모의 그런 행동을 보다가, 입술 망가진다, 하고 충고 할 뿐이었다. 모르는 게 많은 사이였다. 그는 그를 조금 더 알고 싶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그들은 ‘비오는 날 쉽니다’, 라는 안내문이 붙은 가게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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