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 | 2016. 1. 13. 04:28
*리츠와 세나이즈가 많이 비틀린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쪽의 카오카나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삼기인이 인외종족이라는 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진단메이커의 오늘(1월 13일) 리츠이즈의 문장을 빌려왔습니다. '난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The Glass Menagerie
제가 폐렴에 걸렸을 때였죠.
결석하다가 다시 학교에 나갔더니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플루로시스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는 내가 ‘블루로즈’라고 말한 걸로 잘못 알고
날 푸른 장미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 뒤부턴 줄곧 날 그렇게 불렀어요.
날 만날 때 마다 “안녕 푸른 장미?” 하고 소리치곤 했어요.
― 유리동물원 中 로라.
***
“아무래도 옆집에 범죄자가 사는 것 같아.”
사쿠마는 작게 하품했다. 저녁 즈음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가시지 않은 잠이 머물러 있는 탓이었다. 그는 눈가를 비비다가, 양 손 가득 들고 있던 비닐봉투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옆집에서 벽을 타고 윙윙거리는 전기 소리가 들려왔다. 간간히 물장구를 치는 소리가 옮아오는 건 여전히 수상했다. 보통 물고기는 저렇게 큰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저런 소음이 날 리도 없다.
오늘 옆집 남자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올라왔다. 이사 올 때 한 번 인사했던 게 다였다. 반질반질한 웃음과 달리 뭔가 수상했다. 벽을 타고 들려오는 물장구치는 소리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 사쿠마는 옆집의 범죄자가 하루 빨리 검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밤은 저의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오늘 따라 자꾸 졸리기만 했다.
그는 거실에 들어가며 안녕, 하고 짧게 인사했다. 세나는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교정에서 마주칠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익숙한 일이었다. 언제부터 익숙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사쿠마는 거실 소파에 기대듯 누웠다. 베란다에 쳐놓은 커튼 아래로 가로등 빛이 스며들어오는지,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세나의 하얀 손목에 난 상처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있지 셋쨩, 오늘 옆집 남자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어.”
저번해 말해줬던 이상한 사람 말야. 혼자 산다고 말하면서 식기는 항상 세트로 두 개를 사 가는 게 수상했는데, 오늘은 커다란 농어 한 마리를 다 요리할 거라고 하는 거 있지? 먹성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데 신기한 일이야. 역시 뭔가를 납치해서 기르고 있는 게 아닐까? 사쿠마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가 늘어놓는 이야기에 반응하는지, 쇠로 만든 새장 속의 세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파란 눈이 보기 좋았다. 사쿠마는 푸스스 웃었다. 당장이라도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싶었다. 내보내 줘, 세나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사쿠마는 새벽에 운다는 카나리아를 떠올렸다. 목소리가 그렇게 좋진 않지만, 세나가 만들어 낸 음 만으로도 사랑스러웠다. 쿠마 군, 하고 재촉하는 그의 목소리는 홍차에 밀크를 넣을 때 처럼 잔잔하게 퍼졌다.
“도망 갈 거니?”
사쿠마의 질문에 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기묘한 침묵은 무대의 암막처럼 내렸다. 커튼콜이 끝나고, 장치를 치우기 전까지 죽어있는 무대처럼 광막하기 그지없었다. 리츠는 커다란 새장을 바라보았다. 날개가 꺾인 새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엄마 취급이나, 도시락 취급이 싫다면서. 그래서 셋쨩에게 어울리는 장소를 마련 해 줬잖아? 사쿠마는 세나가 잊고 싶어 하는 일을 꺼냈다. 그의 미간이 좁혀지는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그는 해맑게 웃었다.
1m도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서, 두 사람의 표정이 대조되는 것은 제법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의 은발과 자신의 흑발 사이의 간격 만큼 두근거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쿠마는 그의 은발에 자신의 어둠이 묻길 바랐다. 하지만 세나 이즈미라는 남자는 그 고고한 눈매만큼 자존심이 높아, 쉽게 물들여주지 않았다. 앞으로 몇 백 년을 함께 할지 모르는데, 이런 상황은 역시 달갑지 않았다.
어린 뱀파이어는 자신의 영속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몇 백을 사는 동안 이렇게 다채로운 생물은 처음이었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첫’을 언제나 움켜쥐고 싶어 한다. 인간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오리 장난감이나, 아기 곰이 그려진 낡은 이불을 버리고 싶지 않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리츠는 새장 앞에 앉았다.
세나의 두 발목에 걸려 있는 족쇄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사랑해, 라고 속삭이자 세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나에게 좀 더 고분고분해질 수는 없니? 라고 리츠는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의 새장 속 연인은 쿠마 군에게? 내가? 라며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 놀라 대답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얼이 빠져 있는 느낌이라, 리츠는 제 손가락과 손가락을 엮으며 음, 하고 망설였다.
“쿠마 군,”
“응, 듣고 있어 세나.”
“난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세나는 고장 난 천축처럼 느리게 말했다. 사쿠마는 눈을 마주치면서 웃었다. 몇 번이고 들었던 말이지만 들을 때 마다 새로웠다. 내 집착이 사랑임을 이해해 주겠니? 라고 물을 때 마다 대답처럼 돌아오는 말은, 이제는 아무런 상처도 되지 않았다. 굳은 살 위에 상처가 나기는 쉽지 않은 법이었다. 아, 아름답다. 그는 새장 안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세나를 두 눈에 담았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가느다란 목은 위태로왔다.
그는 숨을 쉬지 않는다. 물어버렸기 때문이다. 좀 더 참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쿠마 리츠의 이런 행동에, 그의 형인 레이는 매우 화를 냈지만 그것은 이미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이 일은 세나 이즈미가 사쿠마 리츠를 ‘쿠마 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견되었던 이야기였다. 서투른 열벙은 유리 동물원을 만든다. 사쿠마는 예전에 봤던 연극을 떠올렸다.
그의 사랑은 유리로 만들어진 미로 속을 헤맨다. 대답을 듣지 못한 외사랑의 파장의 결말이란 대개 그렇다. 로라의 짝사랑은 짐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가 ‘플루시스트’라는 단어를 ‘블루 로즈’로 잘못 들은 다음, 그녀를 ‘블루 로즈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그녀의 유리동물원이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쿠마는 천천히 새장 안으로 다가갔다.
날 동정해? 그가 물었다. 세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어둠 속에서 푸른 눈은 꿈처럼 반짝였다. 샄마는 천천히 새장의 문을 열었다. 육중하게 잠겨 있던 자물쇠가 땅으로 떨어지고, 사슬이 풀려 떨어졌다. 쇠문이 열릴 때는 벽을 긁는 소리가 난다. 그는 천천히 세나에게 걸어갔다. 겁이라도 먹었는지 그는 벌벌 떨고 있었다. 사쿠마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오늘 낫쨩을 만나고 왔어.”
셋쨩, 널 걱정하고 있더라. 갑자기 사라져서 보이지 않고,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안 좋은 표정을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서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어. 그래서 부득이하게 기억을 지울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앞으로는 네 이야기를 밖에 가서 하지 않으려고 해. 홍차를 마시면서 낫쨩이, 요즘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기에 새를 한 마리 기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깃털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그래서 카나리아인지, 문조인지 잘 모르겠는데 깃이 회색인 게 아름답다고 했어. 꽁지에 푸른빛이 들어있다고 말하니, 물까치가 아니냐면서 웃더라. 이상하지? 네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는데 어쩜 그렇게 쉽게 웃을 수가 있을까. 나름 즐거운 농담이었어. 아, 이건 기억을 지운 다음의 일이니까 해당 사항이 없나. 참 임금님이 널 발견하면 당장 연락을 전해달라고 하던데, 글쎄 찾을 수 있을까.
사쿠마의 목소리는 사근사근했다. 그는 오늘 나루카미와 함께 소품집을 가서 예쁜 리본을 끊어 왔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는 제 눈처럼 붉은 리본을 세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지쳐 늘어져 있는 손목을 얌전히 잡아, 끈으로 한데 단단히 묶었다. 포기한 것처럼 늘어져 있는 새는 아름답다. 사쿠마는 그의 모습에 “도망치지 않을 거란 걸 믿을 수 있다면 윙 컷도 하지 않을 텐데,” 라고 말하던 나루카미를 회상했다.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웃어준다면 적어도 새장 문은 열어주고 싶을 텐데. 사쿠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세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영생을 살게 되어도 여전히 푸른 장미 잎처럼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사랑해, 라는 말을 하자 그는 울 것 처럼 바라보았다. 동정이 가득 한 눈빛, 이렇게 강압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쟁취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연민. 이 모든 것이 가득 차 있는 모습에 사쿠마는 짧게 떨었다.
“안녕, 푸른 장미.”
사쿠마는 연극처럼 말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세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상처가 아물지 않은 자국을 깨물면 피가 나온다. 좋은 향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그는 혀로 피를 핥았다. 단 맛이 났다. 눈이 멀 것처럼 달았다. 그는 사랑이 이런 맛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다가, 불가능한 일을 바라는 자신을 스스로 비웃었다.
억지로 움켜쥔 새란 이다지도 연약하다. 이런 엔딩을 바랐던 건 아니었다. 사랑 해 주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다. 졸려하는 짐승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어리광을 받아줬으면 마음까지 주었어야지. 갑자기 주어진 영생에 수긍하고 별처럼 웃어주었다면 좋았을 걸. 사쿠마는 자신들에게 일어나지 않을 환상을 생각했다. 틱틱거리면서도 졸려하는 눈을 쓰다듬어 주던 그 행동에 진심이 깃들어 있을 줄 알았었는데. 사쿠마는 웃었다. 피부에 닿는 숨결에 세나가 움찔댔다.
세나가 저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무대 위에서 실수를 해 버린 배우에 대해 갖는 안타까움과 같다. 동정은 될 수 있지만 그 모습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되돌릴 수 있었다면, 신은 먼저 하늘의 은하수를 거둬들였을 것이다. 사쿠마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천천히 매듭지어 묶은 손목 리본에 키스했다. 제 눈과 같은 색으로 묶인 세나 이즈미는 포기한 듯 아름다웠다. 새장의 문이 끼익, 거리는 소리를 냈다.
옆집에서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조에 담긴 무언가가 물 밖으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역시 옆집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 사쿠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하는 짓도 별반 다르지 않아, 쿠마 군. 세나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호칭을 입에 담았다. 다 쉰 목소리였지만 아름다워서, 사쿠마 리츠는 그의 앞에 기사처럼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를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착각과 착각이 엮여 만들어 낸 상황이었지만 잘못 알아본 사랑은 아니었다. 그의 사랑은 유리로 만들어진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돌았다. 철창에 갇혀 출구 없이 맴도는 애정에 키스하는 것처럼, 사쿠마는 세나의 손끝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영원한 기사 서약이었다. 그는 이 아름다움을 내어 줄 생각 없이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세나는 눈을 감았다. 어둠, 아찔한 어둠이 미련처럼 번져왔다.
집 안은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적막했다. 둘은 서로와 함께 등장하는 연극에서 홀로 모노드라마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일인극은 부조리극처럼 아귀가 맞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랑해, 사쿠마가 말했고 세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너 정말, 짜증나. 그 목소리가 마치 구원이라도 되는 양, 리츠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의 손등에 제 낙인을 찍었다. 잇자국은 붉게 남아 타오르듯 번졌다.
비틀린 무대 위에서 자라는 마음 또한 사랑임에 틀림없었다. 닫히지 않은 새장에서는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어디로 번져야 할지 모르는 사랑은 경멸과 동정, 열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움직였다. 사쿠마는 세나와 눈을 마주쳤다. 푸른 장미 같은 눈동자가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멘, 그는 짧게 중얼거리며 기도하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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