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이즈] 상처가 난 자리에는 부드러운 초콜릿을,

*앙스타 전력의 '상처'라는 주제를 받아서 썼습니다

*소녀님께서 "세나의 사랑과 나의 사랑 중에 어느 쪽의 확륭이 높을까? 어서 대답해봐! 사랑스러운 나의 기사" 라는 대사를 주셨습니다.. 사랑해요 소녀님...S2 













상처가 난 자리에는 부드러운 초콜릿을, 





***


    노을이 내리는 날이었다. 세나는 나이츠의 스튜디오에서 발을 까딱였다. 맞은편에 있는 츠키나가는 하품을 하며 악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간의 적막이 그들의 사이에 흘렀다가, 이내 펜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츠키나가의 리듬에 의해 깨졌다. 세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가, 불안한 듯 엎드렸다. 손에 쥐고 있는 초콜릿 박스가 뭉개질 것 같았다. 그는 다시 허리를 펴고 일어나 붉은 색으로 포장 된 박스를 올려놓았다.

    츠키나가는 재차 하품했다. 그는 푸른색 박스에 들어있는 초콜릿을 집어 먹었다. 생크림을 넣어 부드럽게 만든 초콜릿이 손에 묻었는지, 그가 쥔 악보에 갈색이 묻어났다. 세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물티슈를 건넸다. 땡큐 세나, 라고 부르는 츠키나가는 마냥 발랄해보였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였다. 그는 미래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왕님, 그렇게 좋아?”

    “그럼, 이번에는 내가 이길 거거든. 승리를 예견하면서도 기쁘지 않은 왕은 없지.”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데, 절대로 아니거든?”

    “우린 또 도서실에서 안녕- 하고 인사하게 될 거야 세나.”


    츠키나가는 그렇게 말하면서 경쾌하게 웃었다. 셋잇단음표가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악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도 세나는 상처 받고, 우리는 같이 초콜릿을 나눠 먹을 수 있겠지- 츠키나가는 제법 발랄하게 웃었다. 남의 떨리는 마음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세나는 턱을 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법 얌전하게 악보를 그리던 츠키나가는 왜? 하고 물었다. 그의 녹색 눈동자를 보면서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세나 이즈미는 스물여덟 번 째 고백을 앞두고 있었다. 반쯤은 습관이 된 고백이었다. 대상은 유우키 마코토였고, 시간은 언제나 오후 6시, 노을이 질 때쯤이다. 장소는 언제나 옥상의 철문이었다. 한두 번으로 끝날 고백이라면 습관이라던가, 일상이 되진 않지만, 2년 간 스물여덟 번이나 마음을 전달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곤 했다. 하지만 불안감이나 떨림은 이번에도 습관으로 편입되지 못했다. 관습처럼 굳어진 건 고백하는 ‘날’의 츠키나가와의 약속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관습이 생긴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츠키나가는 오선을 그리는 펜을 사용해 흰 종이에 단박에 다섯줄을 그렸다. 그는 예전에 만들어 둔 곡을 정리하고 있었다. 둘만 있는 연습실은 황량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이건 다 츠키나가가 나머지 인원을 되돌려 보냈기 때문이었다. 기사 유닛인 나이츠에서 왕의 영향력은 그만큼 컸다. 세나는 그의 배려에 감사하면서도, ‘츠키나가와의 내기’에서 이번에도 이기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하하, 세나! 나한테 그 말을 한 것도 이번으로 스무 번 째인걸?”

   “그런 거 일일이 새지 말아줄래? 짜증나니까!”

   “하지만 세게 되는 걸. 사람은 본디 짐승과 달라서,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기억하게 돼 있다고.”


    그 예로 나도 까먹지 않고 있잖아? 츠키나가는 발랄하게 웃었다. 그의 어조는 놀랄 정도로 환희에 젖어 있어서, 세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기묘한 내기를 떠올렸다. 슬슬 분침이 10을 거쳐 11로 옮겨가고 있었다. 세나는 아아,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초콜릿 케이스로 손을 뻗었다. 이미 상처는 익숙했다. 오늘도 거절당할까? 세나가 물었다. 츠키나가는 악보에 팔분음표를 여러 개 적고, 음표의 꼬리를 잇고, 악보의 끄트머리에 도돌이표를 그려 넣은 다음 입을 열었다.

   당연히, 거절이겠지? 츠키나가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나는 뾰로통한 얼굴을 했다. 그건 그렇고 세나, 오늘은 좀 다른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 츠키나가는 손끝에서 펜을 돌리면서 진지하게 물었다. 오늘도 둘 다 상처를 초콜릿으로 치유할 거야. 세나는 확정적으로 대답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아쉬운걸, 이라고 말하면서 츠키나가는 다시 악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차이고서도- 상처 입고도 아직도 좋아해?”


   세나는 끈질기구나, 그런 사람 인기 없는데. 츠키나가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는 꽤나 졸린 모양이었다. 인스피레이션이 끓어오르는 모드도 아닌 그는 매우 차분했다. 일학년 때의 그를 보는 듯 했다. 세나는 발을 까딱거렸다. 츠키나가는 제 발을 뻗어 서로의 발을 엉키게 했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건지, 풀어주지 않으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세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완전 짜증나, 라고 말하자 그의 왕은 하하하, 하고 대범하게 웃었다.

    ‘끈질긴 사람’을 좋아하는 왕님은 뭔데. 세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츠키나가는 그것도 그렇네, 마치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청혼을 못하는 것과 같아! 라고 대답하면서 웃었다. 시원시원한 미소에 세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세나의 ‘고백 날’ 마다, 츠키나가는 같은 ‘실연’을 겪고 있었다. 기차의 각 차량이 연결된 것 같은 관계였다. 세나는 유우키를 좋아했고, 츠키나가는 세나를 좋아했다. 세나의 고백은 두 사람의 상처를 동시에 헤집는 과정이었다.


   “아무튼 오늘 볼 일은 없을 거야. 오늘이야 말로 성공 할 거거든,”

   “그럼 도서관 500번대 끝 쪽 서가에서 기다릴게.”

   “왕님, 사람 말은 듣고 있는 거야?”

   “웃츄~?”

   “안 듣는 척 하지 마! 완전 짜증나니까!”


    어쩔 수 없지! 세나를 좋아하는 내가 참을게! 그가 나가기 전, 츠키나가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노을 같은 웃음이었다. 세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노을을 쳐다보았다. 그는 나이츠의 연습실을 나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츠키나가는 악보를 계속 정리하다가, 한 시간쯤 후에 도서관으로 향할 것이었다. 500번대 서고, 그 끄트머리에서 이뤄지는 습관의 고리를 이번에야 말로 끊어야 했다. 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문 상처를 다시 손끝으로 헤집는 기분이었다. 무딘 손톱이 상처를 파고들어서, 여리게 아문 곳을 찢는다. 피는 익숙하게 흐를 것이다. 막막한 기분이었다. 다시 떨려왔다. 스물여덟 번을 고백하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세나는 이번 고백의 ‘끝’이 환희의 송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유우 군은 나와 줄까. 그는 대상도 없이 하늘만 봐야 했던 스물여섯 번째와, 스물일곱 번째 고백을 생각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오늘도 왠지, 서고에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유우 군과의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츠키나가와의 서고를 생각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의 발뒤꿈치에 걸려 있는 그림자가 뚜벅, 뚜벅 소리를 냈다. 사람이 거의 빠진 빈 교사는 황량하기만 했다. 가슴이 뛰었다. 그는 봄을 희망하며 걸었다.





***


   상처 헤집기가 습관이 된 건 어느 봄이었다. 세나는 이때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이란 어차피 흐트러지고 헤지기 마련이었다. 그가 츠키나가와 ‘도서관 500번대 서고’ 모임을 가지게 된 처음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만났던 서고가 500번 대였고, 노을이 넓게 퍼지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의 시작은 세나 이즈미의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나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날은 ‘조금’ 슬펐다. 차인 게 아프게 들어왔다. 혀에 상처가 나서 피 맛이 났다. 서러워서 사람이 없는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도서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서위원조차 없는 날이었다. 세나는 500번대 서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가장 벽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훌쩍훌쩍 우는 건 취향이 아니었다. 상처가 난 곳이 이에 걸려서 계속 피가 났다. 더 서러웠다.

    아무것도 아닌 상처였다. 거절당하는 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은 아니었다. 살다보면, 작은 생채기가 유달리 아픈 날이 있는 법이었다. 세나는 그 날이 그런 날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푸른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 때 까지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눈이 텅텅 불어, 눈물이 나올 때 마다 쓰라렸다.

    그 때, 누군가가 서고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발소리였다. 세나는 후배가 아니길 바랐고, 서고에서 얼른 책을 빼 눈에 덮었다. 자는 척, 숨을 죽이자 발소리도 사라졌다. 세나는 속으로 삼십을 셌다. 그 정도라면 얼른 일을 보고 갔겠지,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숨소리에 맞춰서 수를 세센 지, 삼십여 초가 지났을 때, 그는 덮고 있던 책을 내렸다. 그리고 세나의 눈 앞에는 츠키나가가 있었다.


    “울어?”

   

    그는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 입은 걸 알리고 싶은 날이 마침 그 날이었다. 츠키나가는 세나의 옆에 앉았다. 우는 얼굴을 안 보겠다는 배려 같아서 조금 설렜다. 츠키나가는 자신의 기사는 자신을 위해서만 울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능청스럽게 이어지는 그의 말들에 혀 끝에서 나는 피도, 마음에 입은 상처도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다리에 힘은 들어가지 않아, 세나는 괜찮지 않은 척 도서관 500번대 서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츠키나가는 왕이 된 자로써 자신의 기사를 울린 애를 찾아가 때리고 오겠다고 말했고, 세나는 장난인 줄 알면서도 그를 말렸다. 울음에 난도질당한 목소리가 형편없이 울렸고, 츠키나가는 그 목소리를 듣더니 별 말 없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후드짚업을 뒤지고, 교복 재킷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바지 뒷주머니와 앞주머니 또한 홀홀 털었다. 그러다가 그는 작은 초콜릿을 건넸다. 낱개 포장 되어 있는 초콜릿은 값싼 금화 초콜릿이었다.


   “칼로리”

    “세나, 상처 난 자국에 초콜릿을 바르자, 마음이 달아지고 부드러워져서-”


   츠키나가는 노래의 클라이맥스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잠시 쉬었다. 그리고 두 손을 뻗어 세나의 말랑한 볼을 잡았다. 서로의 시선에 서로만이 담겼다. 츠키나가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상처도, 보들보들하게 나을 수 있을 거야-” 하고 발랄하게 말했다. 평소 우주니 뭐니,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떠드는 것과 상당히 다른 태도였다. 세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츠키나가가 편했기 때문인지, 세나는 여러 번 했던 고백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노을이 하늘을 점점 먹어가고 있었다. 세나는 시간을 들여 ‘유우 군’과 ‘자신’의 서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전사를 들으면서 츠키나가는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 사랑스러운 걸 보는 표정을 했다가, 다시 얼굴을 굳히기를 반복했다. 변주곡 같은 느낌이었다. 세나는 그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성격이니 그럴 수 있다고도 납득했다. 하지만 서러운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세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한숨과 함께 내쉬며, 끌어 모은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왜 계속 좋아해?”

    “이유가 있어?”

    “왜 계속 좋아하는 건데?”

    “이유 없어서. 그냥, 좋아서. 왕님 정말 바보 같아!”


    세나는 투덜거렸다. 츠키나가의 얼굴에는 ‘왜 상처 받을 짓을 굳이 사서 하느냐’라고 써 있는 듯 했다. 세나는 그에게 부연 설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츠키나가는 너무나도 우주 같아서, 자신이 중력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어이없거나, 뻘쭘한 짓을 하곤 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면 분명 곡이 되어 나이츠의 무기로 자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나는 입을 열었다. 힘든 일이었다.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라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길게 늘여했어도, 츠키나가의 표정은 여전히 엉뚱했다. 그는 미간을 좁히고 으음, 하고 고민했다. 사자가 갸르릉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입술을 쭉 내밀고,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세나의 어깨를 잡았다. 다시 눈과 눈이 마주쳤다.


    “세나가 상처받잖아!”

   “하아? 그게 문제였어?”

    “그럼 큰 문제지? 그럼 아니야?”

    “발에 가시가 박히는 거랑 비슷한 거지 뭐.”


    그걸 걱정하느라 발을 잘 못 디디게 되고 상처받고 하는데, 그걸 극복 할 만큼 내가 유우 군을 좋아하니까 계속 고백하는 거잖아! 세나는 소리치듯 말했다. 그의 왕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유우 군이 나빴다며, 그런 사람에게는 절대로 세나를 주지 못하겠다는 논리를 펼쳤다. 왕명이라면서 고백 절대 금-지- 라는 룰을 만들려고 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노을 진 도서관에서 두 사람은 한참을 투닥였다.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둘은 각자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츠키나가는 목 끝을 겨우 덮을 정도로만 자란 머리카락 을 소리를 내지르며 휘저은 다음, 세나의 앞으로 다가갔다. 세나는 다리를 펴고 앉아 있었고, 츠키나가는 쪼그려 앉아 있었다. 세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세나는 놀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왕님이 바보야?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왕은 손을 덥썩 잡았다.


   “세나의 그 미련함이 재미있긴 해!”

   “지금 누굴 놀려?”

   “청춘 같아! 세나가 세나가 아니었다면 아하하, 웃츄~! 이것도 다 청춘이지, 힘내라구! 하면서 넘어갔을 거야!”

   “그럼 넘어가!”

    “세나가 세나라서 안 돼!”


    츠키나가는 그렇게 말하면서 답지 않게 부끄러운 표정을 했다. 그의 볼 끝에는 노을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세나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환상곡처럼 빠르게 이어지던 리듬이 순식간에 정적을 맞이했다. 츠키나가는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좋아하고 싶었는데, 라는 뜬금 없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의 두 볼은 정말 빨리 달아올라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왕님? 하고 묻자 츠키나가는 나도 세나를 좋아해! 하고 소리쳤다. 나에게도 기회를 줘! 세나의 왕한테도 기회를 주란 말야! 하고 소리쳐왔다. 막무가내였다. 어이가 없고 맥락도 없어서 이해하지 못한 척 고개를 갸웃거리자, 츠키나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헤집더니 내가, 세나를 좋아해! 하고 크게 소리쳐왔다. 충분히 참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나가 하? 하고 되묻자 좋아한다니까, 라고 말하면서, 날 좋아하게 되면 이야기 해! 하지만 그 전에 차이면 여기에서 기다려! 내가 위로 해 주고 고백하러 갈 테니까, 하고 선언해왔다.

   그 멍청한 선언을 할 때의 츠키나가의 얼굴은 사랑에 빠진 소년이었다. 그 변화가 재미있었던지 아니면 변덕스러운 날에 변덕 하나를 더 더한다고 해서 변할 게 없기 때문이었는지, 세나는 그 막무가내 같은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내기는 한 쪽이 사랑하게 될 때 까지 끝이 없을 거야, 라고 선언했다.


    “세나의 사랑과 나의 사랑 중에 어느 쪽이 확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해?” 

    “몰라.”

    “어서 대답해봐, 사랑스러운 나의 기사!”


    츠키나가는 그렇게 말하면서 와하하, 하고 웃었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왕 같았다. 세나는 얼떨결에 ‘너’ 라고 대답하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세나의 그 버벅임을 확인했는지, 츠키나가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툭툭 두드렸다. 일어날래? 라고 물으며 츠키나가는 손을 뻗었다. 일어난 다음 본 하늘은 츠키나가의 머리카락 색처럼 진한 노을로 덮여 있었다. 조용한 도서실에서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외에는 없었다. 둘 만의 우주와 같았다.

   도서실에서 나가는 도중 세나가 물었다. 날 정말로 좋아하는 거면, 그거 왕님한테도 상처 아니야? 그의 말에 츠키나가는 정확히 캐치했다고 말했다. 그의 어조는 밝고 맑은 느낌이었지만, 그 다음 마디를 할 때에는 놀랍도록 진지했다. 장조에서 단조로 한 번에 끌어내려진 기분이었다. 세나는 츠키나가의 마지막 말만은 똑똑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세나가 말했잖아? 나도 가시 박힌 발로 땅을 디디는 것 뿐이야.”


    그리고 날 사랑해 줄 걸 믿고, 그 전까지 터진 상처에는 초콜릿을 바를 거야. 승리에 한치의 의심도 없는 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발랄하게 복도를 뛰었다. 그 뒤로, 둘은 스무 번 정도 500번 서가에서 만났다. 항상 초콜릿을 나눠 먹었고, 그 내기는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지지부진한 일이었.다. 무한대로 그려진 도돌이표를 연주하는 기분이었다. 주제부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라벨의 「볼레로」도 이 정도로 끈질기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은 ‘피네’일 거라고 생각하며 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머뭇거렸다. 애매한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유우 군에게로 수렴해야할 것 같았던 그의 멜로디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세나는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애매한 기분이었다. 이제 와서 무슨 망설임인지, 그는 멀리 파란 하늘에 퍼져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 조각이 하나 없도록, 노을의 주황은 기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


    츠키나가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세나의 ‘유우 군’은 옥상에 올라오지 않을 것이며, 세나는 이번에야말로 계속 기다려 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의 리듬은 그렇게 설계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한 번 더 기다리면 된다. 승리는 결국 기다리는 왕의 것. 기사는 왕에게 종속되어 있고, 다정한 세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는 그걸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둘이 남았을 때 세나는 ‘유우 군’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고백을 한다고 하면서도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장소, 비슷한 요일만을 골라왔다. 그건 ‘습관’이 된 게 아니라 그냥 ‘매너리즘’이었다. 츠키나가는 그걸 말해주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심술이었다. 스물여덟 번이나 왕의 구애를 거절한 기사에게 주는 벌이었다. 츠키나가는 악보를 정리했다. 많이 참았고, 많이 기다렸다. 상처는 새로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했다.

    눈에 보이는 상처라면 흉이 심하게 졌겠지만, 마음에 담은 상처라 초콜릿으로 살살 녹일 수 있었다. 부드럽고, 부드럽게. 그는 다시 파베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혀에 닿자마자 사랑처럼 녹아 내려갔다. 달콤함이 진하게 남았다. 츠키나가는 발랄하게 오선을 그렸다. 세나가- 돌- 아- 왔- 으- 면-! 이라는 바람을 담아서 악보를 적어 내려갔다. 음표의 대를 그려 넣고, 꼬리를 빼자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츠가 사용하는 스튜디오에 굳이 누가 올 것도 아니었다. 스오우도, 나루카미도, 리츠도 오늘은 다 돌아간 상태였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유닛은 이래서 편하다. 츠키나가는 펜을 돌렸다. 문이 열렸다. 세나가 헐레벌떡 돌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어깨가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게 보였다. 츠키나가는 일부러 여유로운 척, 창 밖에 퍼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열었다.


    “세나의 사랑과 나의 사랑 중에 어느 쪽이 확률이 높을까?”

   “몰라!”

   “어서 대답해줘! 사랑스러운 나의 기사!”


    츠키나가는 발랄하게 웃었다. 세나의 얼굴에도 붉은 물이 들었다. 노을 같았다. 더 이상 상처를 초콜릿을 상처에 바를 일은 없을 것도 같았다. 와하하, 하고 웃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세나는 레오! 하고 크게 소리쳤다. 츠키나가는 웃으면서 눈을 마주쳐주었다. 그래서 대답은? 하고 요구하자, 세나는 입을 열었다.

    그 문장은 매우 달아, 입 안에서 호흡처럼 녹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