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이즈] Satellite Love

* 목조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 비즈니스 호모.....관계인 리츠이즈 주의해주세요8ㅅ8))

* 몽님이 주신...내용....화려하게...제가 산화..시켰.....읍니다...네.....( mm)








Satellite Love

밤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을 사람들은 종종, 별로 착각하곤 한다.






***


   무대 위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암전 된 어둠 속에서 캐미컬라이트가 별처럼 빛나는 순간은 「신데렐라」의 무도회장. 12시가 지나지 않으면 마법은 끝나지 않는다. 사쿠마 리츠는 이러한 ‘룰’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대 위는 전장, 인기라는 이름의 보상을 얻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장소. 보상을 위해서라면 ‘과도한 선’을 넘지 않는 어떤 것도 암묵적으로 허락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신데렐라의 파티 룸 같아, 리츠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른쪽 구역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세나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왕님의 파트였음으로, 저와 세나가 노래를 하기까지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제격’이었다. 사쿠마 리츠의 발에 묻어있는 리듬은 매우 가볍고, 장난스럽게 울렸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체셔 캣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반짝이는 캐미컬라이트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지금 부르고 있는 노래는 츠키나가가 작곡했던 것 중에 가장 섹시한 노래였다. ‘Satellite Love'. 신데렐라와 기사님이 테마인 이 곡은 열두시가 되기 전, 신데렐라가 자신에게 건 마법이 풀리기 전 까지 당신의 기사로 살겠다는 가사를 담고 있었다. 곡에 가사를 붙인 건 세나였다. 리츠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스오우의 목소리가 무대를 울렸다. 부드러운 리듬이 리츠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었다. 그는 오른쪽 구역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세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셋쨩, 하고 가볍게 부르면 객석을 보고 있던 세나는 고개를 돌린다. 리츠는 그를 일부러 뒤에서 끌어안았다. 무대 위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은, 무대 위에선 무얼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단 뜻이었다.

     ‘마법’의 시작이었다.


    세나는 명석한 아이였다. 그는 무얼 해야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지,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리츠는 푸스스 웃었다. 그들의 ‘마법’은 이렇게 뜬금 없는 곳에서, 시작되곤 했다. 마치 「신데렐라」에서 요정대모가 뜬금 없는 타이밍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신데렐라의 마법이 극적인 건, 그게 시작되는 타이밍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복선도 없고 암시도 없었던 상황. 순수한 조력자의 등장, 이후 펼쳐지는 화려한 스테이지는 언제나 소녀들에게 환상을 가져다준다.

    리츠는 환하게 웃었다. 인기를 목적으로 한 가짜 사랑. 플라스틱, 인스턴트, 새틀라이트 러브. 무대 위에서만 성립 되는 ‘컨셉’을 기반으로 하는 마음 장난. 사랑놀이. 리츠는 여러 단어를 생각해 냈다가 푸스스 웃었다. 그들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단어 중에서 영원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세나에게 유리 구두는 남지 않는다. 리츠는 버려진 유리 구두를 품에 끌어안는 자신을 상상했다. 입이 썼다.

    갑자기 가까이 다가감에, 마이크 선이 툭, 툭, 거리며 끊기는 소리를 냈다. 앰프에서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사라졌다. 노래를 방해받은 왕님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리츠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왕님의 사정이었다. 세나는 그런 리츠를 달래려는 지,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간질거렸다. 세나의 손끝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움직일 때 마다 그는 작게 웃었다. 머리카락에 닿는 손가락 하나하날 다 먹어버리고 싶었다. 그들의 행동에,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듣기 좋은 소리였다.

   나루카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리츠는 그 다음 파트가 자신이란 걸 기억해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파트를 방해한다면 더 이상 ‘비즈니스’라는 이름 뒤에 숨을 수 없다. 리츠는 작게 탄식했다. 이건 모두 다 세나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탓에 본디 목적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그는 객석을 바라보았다. 야광봉이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별 같았다. 리츠는 그 흐름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캐미컬라이트가 빛을 내는 순간은 마법이 지속되는 순간. 시계바늘은 아직 12시를 가리키지 않았다. 뭘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순간. 그는 세나와 마주보았다.


   “쿠마 군?”


    마이크를 대지 않고 세나가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 없었던 일에 적지 않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언제나 해왔던 거야, 라고 차마 말해줄 수는 없어서 리츠는 눈을 감았다. 그는 천천히 세나의 입술과 입을 마주댔다.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혀는 넣지 않았다. 이 이상 선을 넘으면 마법의 순간이라도 혼이 난다. 현실로 추락하긴 싫었다. 그는 오만한 이카로스가 아니었다. 나루카미의 목소리가 끝나가는 소리에, 리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객석을 바라보다,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닿았다. 말캉한 감촉에 기분이 좋았다.

   다시, 팬들의 함성 소리가 높아졌다. 리츠는 팬들이 자신들을 통해서 본 ‘환상’을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나를 바라보며 노래했다. 맹세의 키스를 나누고 싶다는 가사를, 손을 잡으며 부르자, 세나의 양 볼에 붉은 물이 들었다. ‘사랑놀이’에서 조금 더 나아가고 싶었다. 아직 무대는 끝나지 않았고, 마법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것이 ‘룰’이었다. 더 이상 할 수 없는 건 없었다.

   오늘도, 사랑한다는 말은 리츠의 입 안에만 머물렀다.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무대 위에서도 ‘정도’란 게 있었다. 그는 세나의 입술을 혀로 핥았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이었다. 아이스블루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무대 위의 스킨십들은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리츠는 세나의 손을 잡았다. 세나는 무대 밖, 객석을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아, 피했다. 리츠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아무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지켜왔던 선이 있었다. 암묵적인 룰. 그 절대적인 그림자의 무게가 서서히 번져왔다. 캐미컬라이트가 켜져 있음에도 마법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울 것 같았다. 사쿠마 리츠는 어린아이처럼 세나의 손을 꼭 쥐었다. 그는 손가락 마디에 힘을 주었다.


    세나가 붙인 달콤한 가사가, 목소리를 타고 부드럽게 흘렀다. 리츠는 멀리, 야광봉을 흔드는 인파를 바라보았다. 꼭, 우주에 떠 있는 인공위성이 된 기분이었다. 도시의 하늘을 보는 사람들은 종종, 인공위성을 별로 착각하곤 한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우주에 띄운 인공의 별. 리츠는 저와 세나의 관계 또한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멋대로 착각하는 사람이 잘못인지, 아니면 ‘오해’하게 행동한 사람이 잘못인지 리츠는 감히 판단할 수 없었다.

    캐미컬라이트의 불빛이 밤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처럼 보였다. 하늘에 떠 있는 것 중에, 인간이 만든 가장 오만한 빛을 떠올리면서 리츠는 비리게 웃었다. 사랑에 차가운 그림자가 졌다. 마주잡은 두 손, 손가락이 점점 차가워졌다. 시계바늘은 점점 ‘열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슬슬, 마법이 끝날 차례였다. 째, 깍, 째, 깍. 리츠는 시간을 셌다. 노래가 끝날 때 까지,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손을 잡고 있었다. 그것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입 안이 썼다.





***


    마법의 순간이 끝나면 남는 건 허무함이다. 리츠는 침대에 누웠다. 잔여물 같은 마음들이, 가슴 한쪽에 퇴적되어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명백하게, 불쾌했다. 배설할 수 없는 감정에 목이 막혔다. 그는 괜히 침대에서 굴렀다. 발을 움직일 때 마다 침대 스프링이 튀는 소리를 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세나는 샤워를 오래, 공들여서 한다. 리츠는 침대 안쪽에 설치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렌즈와 눈이 마주쳤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 웃었다. 잠이 오는 척 하품을 한다. 카메라가 원하는 ‘사쿠마 리츠’를 연기한다. 익숙해진 일이었다. 리츠는 다음부터는 절대로 숙소 리얼리티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체력소모가 심했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익숙하지 않았다. 따로 살고 있는 다섯을 모아 한 집에 넣자는 발상은 좋았으나, 너무나도 제약이 심했다. 영원히 11시 59분을 가리키는, 고장 난 시계 아래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획을 가장 하고 싶어 했던 건 리츠였다. 오랜 기간, 같은 곳에서 있다면 세나가 눈치 채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당기기만 하고 있는 이 관계에 대해서 결착을 내고 싶기도 했다. 언제나 좋아하는 건 리츠였다. 무대의 마법을 빌어 스킨십을 해오는 것도 리츠였다. 모든 시작은 ‘사쿠마 리츠’의 행동에서부터였다. 하지만 마법이 끝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유리구두를 들고 찾아올 왕자님이 없는 관계였다. 세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다만 영특했음으로 그의 행동에 어울려주는 것뿐이었다.

    콘서트 무대에서 입을 맞추어도 세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뒤에 있었던 토크 시간에서 ‘립크림 향이 좋았다’고 대답했다. ‘완전 짜증나’라는 말도, ‘바보 아니야?’라는 말도 없는 그 토크에 관중은 열광했다. 입술이 마주 닿았는데도 그 정도의 반응 밖에 없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꼭, 홀렸던 것 같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바로 리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서 대답하라는 재촉이 들어있는 눈빛이었다. 리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반추할 때 마다 마음에 못이 박히는 것 같았다.


    답답했다. 계속 당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보여주고, 사랑해주고, 표현하는 것은 무한정일 수 없다. 리츠는 바닥을 등에 대고 누웠다. 2층 침대의 바닥이 보였다. 침대 안은 좁고 갑갑하기만 했다. ‘세나 이즈미’가 의도치 않게 친 어망에 갇힌 느낌이었다. 샤워기가 물을 뿜는 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세나는 머리를 말리고, 피부 관리용 화장품들을 바른 다음에 나와서 곧장 리츠가 있는 1층 침대로 들어올 게 분명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카메라’가 켜져 있음으로. 세나에게는 이런 행동도 비즈니스였다. 한없이 슬픈 일이었다. 무덤덤하고, 나른한 태도로 막아뒀던 감정도 이제 한계였다. 너무 많은 물을 담은 둑은 터지기 마련이었다. 리츠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대 위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소심함, 모든 걸 움켜쥐고 잃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그의 우주를 공전했다.


    언젠가 이 관계에 대해서 질문 한 적이 있었다. 이상하게 용기가 난 날이었다. 세나는 ‘일이잖아’라는 말로 대답했다. 뭐 그런 한심한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느냐는 말엔, ‘바보 아니야?’라는 말로 대꾸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연기를 하게 되는 날이 있다고 오히려 리츠를 위로해왔다. 잔인한, 일이었다. 가짜 사랑이라는 말은 그 날 이후 리츠의 세계를 인공위성처럼 돌았다.

   인공위성은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보이지만 진짜 별은 아니다. 리츠는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았다. 잔잔하게 가라앉혔던 감정에 파문이 일었다. 울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답답하기만 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나였다. 눈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웃었다. ‘연기’하고 있었다. 카메라 앞의 세나는 친절하다. 평소라면 저런 미소를 띄고 걸어오는 일은 없다. 리츠는 벽 쪽으로 붙어 자리를 만들었다. 2층 침대가 만들어 둔 그늘에,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세나에게선 포근포근한 향이 났다. 아침에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샤워를 하니까, 밤에는 마음대로 바디워시를 고르는 탓이었다. 리츠는 카메라를 보다가, 세나를 보면서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킁킁거리며 향을 맡자, 세나는 그게 익숙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가 돌고 있는 탓이었다. 평소에는 피를 달라고 하면 무시하고, 짜증내고, 혼을 낸다.

    ‘마법’을 마음껏 즐기기에는 속이 쓰렸다. 위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리츠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하는 것처럼 셋쨩, 좋은 향기-라고 느릿하게 말하면 세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핸드폰을 두드릴 뿐이었다. ‘마이페이스처럼 애정을 갈구하는 사쿠마 리츠와 싫은 척 하지 않고 받아주는 세나 이즈미’는 이미 성립된 공식이었다. 세나는 고개를 돌려 리츠를 보다가 머리카락을 쓸어 주고,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나는 몇 가지 원칙을 두고 행동했다. 만약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룸메이트가 리츠가 아니라 왕님이었다면 내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거고, 나루였다면 같이 팩을 하면서 걸즈토크를 했을 것이었다. 츠카사와 룸메이트를 하게 된다면 야식을 손수 만들어주면서 살찐다고 잔소리를 하며 투덜거렸을 것이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 마다 보이는 이런 행동에 반하면, 이건 누구의 탓일까. 리츠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세나의 목덜미를 느리게 핥았다.


    가짜 사랑, 가짜 사랑이었다. 플라스틱, 인스턴트, 새틀라이트. 인공위성 같은 사랑.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인위적인 오만함. 리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학적으로 계산된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울리지 않았다. 리츠는 제게 허락 된 마법이, 조금 더 강력된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나가, 자신이 준비한 유리 구두를 신어주길 원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매이고 싶었다. 세나 스스로 매도하는 ‘가짜사랑’이 아닌, 진짜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억울했다. 그는, 사랑하고 싶었다. 리츠는 그의 목덜미를 아프지 않게 물었다.


   “쿠마 군-”

   “왜요 셋쨩?”

   “하지 마.”


    세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는 카메라를 보다가 편집 해 달라는 듯, 검지와 중지를 펴서 가위질 하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짜증이 났다. 리츠는 세나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세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의 행동이 너무 노골적이지 않았냐는 투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연기’라던가 ‘가짜’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화가 났다. 머리가 팽팽 돌 것 같았다. 그동안 참아왔던 마음들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코끝이 찡해왔다. 한 번쯤은 ‘진짜’라고 생각 했던 적도 없던 걸까. 용기 없이 담고 있던 사랑에 이런 반응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여지와 미련을 남겨줄 거라면 한 번쯤은 착각하지 말라고 말해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공중에서 낙하한 기분이었다. 리츠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그의 양쪽 손목을 잡고, 몸을 엎었다. 제 몸 아래에서 놀란 표정을 하고 누워있는 세나가 보였다. 미처 막지 못한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리츠는 제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에 무언가가 치받쳤다.


     “이즈미”


    일부러 무심하게 이름을 부르면, 불안한 눈동자가 마주쳐온다. 리츠는 몸을 숙였다. 왜, 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숨을 들이키는 게 느껴졌다. 잡혀 있는 두 손이 애처롭게 떨렸다. 리츠는 세나의 두 팔을 힘으로 제압했다. 사랑해, 라고 말하는 대신 하는 입맞춤에는 슬픔이 가득 묻어 있었다. 리츠는 제 마음 속에서 굳어버린 감정이, 입술을 타고 넘어가길 바랐다. 혀가 얽혔다. 세나의 숨이 제 인중에 닿을 때 마다 오싹거렸다.

    입술이 떨어졌다. 예쁘게 웃는 리츠와 달리 세나는 불만이 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크게 소리쳤다. 카메라가 있는 걸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쿠마 군,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라고 이어가던 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리츠는 그의 가느다란 목에 손을 댔다. 숨을 쉬지 못하게 세게 눌렀다. 세나는 숨을 쉬기가 불편한지 얼굴을 찌푸렸다. 생리적인 눈물이 눈가에 맺혀 있다 안쓰럽게 흘렀다.


    “이즈미”


     내가 널 좋아해, 이렇게 사랑해. 리츠는 웃으며 말했다. 세나는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바르작거렸다. 그의 말이 단어가 되는 것은 없었다. 리츠는 가느다란 목에 힘을 주었다. 세나의 몸이 벌벌 떨렸다. 그가 괴로워할수록 오히려 제 눈에 눈물이 맺혔다. 리츠는 눈을 깜빡였다. 세계가 한 번 닫히고, 열리는 그 짧은 과정을 수행하는 동안 볼에 투명한 선이 생겼다. 한 번 터진 눈물길을 막을 길이 없었다. 리츠는 아이처럼 울먹였다.

    그는 세나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까의 입맞춤으로 제 속앓이가 전해진 걸까. 리츠는 자신의 지독한 짝사랑을 생각하며 웃으려 했다. 눈물이 흘렀다. 툭, 툭, 괴로워하는 세나의 얼굴에 눈물이 닿았다. 컥컥거리며 숨을 쉬려고 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호흡처럼 사랑해줘, 날 사랑해줘, 인공위성 같은 사랑 말고, 제대로 네 궤도를 돌게 해줘, 날 봐줘.

 

    “이것도, 가짜 사랑이라고 생각해?”


     이즈미, 어떻게 생각해? 리츠는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토기가 올라오는지 세나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는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힘이 빠진 두 손이 리츠를 힘없이 때렸다. 그의 푸른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만큼 나도 괴로웠어, 라고 말하는 리츠의 소리에 화음을 넣듯, 기침이 터지며 방 안을 울렸다. 무서워하는 눈, 그 모습이 낯설었다. 궤도를 이탈한 인공위성이 방향을 잃고 팽팽 돌았다. 목 끝에서 울음이 걸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리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숨이 막혔다. 호흡이 어려웠다. 통제할 수 없는 사랑에 젖었기 때문이었다.

    날, 봐줘. 이즈미. 리츠는 그렇게 말하면서 울었다. 울음 섞인 목소리에 세나는 적지 않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당황에 리츠는 손에 힘을 풀었다. 그는 세나의 위로 쓰러졌다. 한 번 터진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사랑해줘, 날 사랑해줘, 나는 이즈미가 좋아. 세나가 좋아. 카메라 뒤의 날 봐줘, 사랑해줘, 리츠는 두서없이 제 맘을 쏟아냈다. 기침하며 숨을 찾으려고 하는 세나의 얼굴 위에 눈물과 애정이 집착처럼 쏟아졌다.

    용서해줘, 미안해, 사랑해줘, 하지만, 미안해, 사랑해줘. 행간도, 마침표도 없는 원색적인 감정들이 쏟아져 내렸다. 세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만, 호흡을 되찾기 위해 기침을 할 뿐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세나는 제 가슴께에 머리를 대고 엉엉 우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리츠는 끊임없이 세나의 이름을 되뇌었다. 잊고 싶지 않다는 듯, 11시 59분을 영원히 손에 쥐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인공위성 같은 사랑은 하고 싶지 않아. 리츠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보이지만, 진짜는 아니잖아, 라는 말은 점점 억울함을 담아 소리가 커져, 마침표에 다다를 때쯤에는 무목無目의 메아리처럼 울렸다. 이즈미, 이즈미, 이즈미. 그는 갈급하듯, 갈구하듯 소리쳤다. 세나는 제 몸 위로 느껴지는 무게를 생각하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가. 손을 뻗어 리츠의 벌개진 눈가를 닦았다. 닿고 싶으나 닿을 수 없는 밤이었다.


    11시 59분을 거친 욕망이라는 이름의 초침이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몽 같은 사실주의에 리츠는 눈을 감았다. 어둠이 번져왔다. 닿은 체온 사이에서 오가는 말은,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울음뿐이었다. 미처 삼키지 못한 감정이 백야의 오로라처럼 밤을 덮어가고 있었다. 울고 싶어, 세나가 중얼거린 말은 깨져버린 유리 구두 조각과 같았다. 깨져버린 유리 구두는 다시 '마법'이 될 수 없다. 마법이 깨지고 난 후의 모든 것은 허무하기만 했다. 리츠는 그를 끌어 안았다. 마주 안아주는 손길은 다가오지 않았다. 그 사실이 미칠 것만 같았다. 격렬한 사랑 끝의, 허무함이, 눈물처럼 번져와, 파도처럼 리츠의 모든 부분을 잠식해갔다.

   그저, 그런 밤이었다. 입 안에 맴돌았던 사랑해, 가 마치 문단과 문단 사이의 여백처럼 홀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