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 | 2016. 1. 30. 04:39
*짝사랑 주의. 이즈미는 왕님을, 리츠는 이즈미를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그저 불면증에 걸린 이즈미와... 피아노 치는 리츠가 보고 싶었을 뿐인데...
*추천 BGM은 쇼팽의 Nocturne Op.9 No.2
달의 뒷면, 크레이터 속 녹턴
누군가 두고 간 가을이
홍역처럼 붉다, 라는 문장을 썼다 지운다
저기 핑그르르 수면을 도는 단풍잎
같은 병을 다르게 앓지 못한 우리들은
왜 약속 없이 나누는 열병처럼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해서만 생각했을까
―이은규 『홍역』
***
달은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늘 달의 같은 면만 보게 된다.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달의 뒤편은 탐사선으로만 볼 수 있으며, 최초로 달의 뒷면을 촬영한 우주선은 1959년 소련에서 발사한 루나 3호이다. 달의 후면은 수많은 크레이터들로 뒤덮여 있다.
***
자유낙하 하는 꿈을 꾼다.
날개가 없어 끝없이 밑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어디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세나 이즈미는 꿈속에서 무조건적인 낙하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네’가 나타나면 꿈속임을 알 수 있다던 어떤 시의 구절처럼, 그는 몸이 중력에 의해 강하게 잡아당겨지는 순간 그것이 환상이고, 꿈임을 자각한다. 문제는, 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낙하한다. 낙하의 과정은 매우 빠르다. 평지에 서 있다면 지구의 내핵으로, 건물 위에 서 있었다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추락의 순간에는 생각을 할 수 없어, 날 수 없었다. 꿈의 마지막은 언제나 추락 후였다. 무언가 바닥에 부딪히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눈이 떠지지 않았다. 꿈이 무섭다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세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그 말을 다시 말한다면, 비이상적이고 비이성적인 곳에선 무디다는 뜻이었다. 그는 반복적인 꿈이 계속 됨을 믿지 않았다. 처음에는 ‘추락’이라는 공통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번 ‘죽는 것’을 경험한 결과, 그는 자신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세나는 불쾌했다. 스트레스의 발현을 이렇게 비이성적으로 겪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꿈임을 자각함과 동시에 날아오르려고 했다. 소위 자각몽에서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미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몇 번의 추락을 더 경험할 뿐이었다. 무언가 짓눌린 것 같았다. 세나는 죽음과 동시에 지독한 무력감에 젖어 아침을 맞이했다. 그는 그 곳에서 벗어나는 게 죽음 밖에 없다는 것에 절망했다. 날 수 있는 날도 있었지만, 바로 고꾸라질 뿐이었다.
지독한 무기력 속에서 맞이하는 새벽과, 몇 번의 자유낙하를 경험하면서 맞이하는 아침은 실로 더러웠다. 그는 뫼비우스의 띠 안을 걸어가는 것 같았다. 밤에 잠이 들었을 때, 눈치 채면 그는 꿈속이었고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쾅- 하고 지면에 부딪히는 과정을 자각한지 열흘이 지났을 때, 세나는 더 이상 밤에 잘 수 없었다.
곱던 얼굴에 다크서클이 올라왔다. 뾰루지는 나지 않았지만, 내내 잠이 부족했기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성적이 소소하게 떨어졌고, 낮에 병든 닭처럼 조는 일이 많아졌다. 책상에 두 팔꿈치를 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쪽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쪽잠은 다행이도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만, 목과 어깨에 근육이 뭉쳐서 발레 동작을 하기 힘들어졌을 뿐이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세계는 빠르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유닛 연습은 없었다. 그의 왕은 이미 머나먼 우주로 떠나버렸다. 등교하지 않기 시작했다. 기사의 검은 한 번 꺾였다. 검자루를 들고 일어설 기력이 없었다. 그가 남긴 무기와, 유산을 가지고 노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릎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세나는 모든 것을 꿈 탓으로 돌렸다. 그는 도통 잠들 수 없었다.
후유증은 열병처럼 찾아온다. 그는 더 이상 집에서 잘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등 뒤가 꺼지는 것 같았다. 세나는 중력을 믿지 못했다. 꿈이 아님을 인지하면서도 발을 두어 번 굴러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 지 확인하곤 했다. 물론, ‘꿈’에서는 그 순간 발밑이 없어지면서 추락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날개가 없었고, 끝없이 가라앉았다. 달의 뒤편에 있다는 큰 바다에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온 세상이 망가진 기분이었다. 달의 뒷면에서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초가을에 느닷없이 내리는 비 같기도 했다. 세나는 제 기분이 지구에서는 보지 못할 달의 뒤처럼 망가져 버렸다고 확신했다. 그는 낮에 자는 쪽잠을 통해 연명했다. 밤은 부유의 공간이었다. 그는 차라리 떠다니고 싶었다. 중력을 잊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끊임없이 피곤이라는 이름의 소행성이 세나의 세계에 충돌하기를 반복했다. 크레이터 자국은 깊게, 깊게 패였다. 그는 점점 폐허가 되어갔다.
병원에서는 그의 꿈에 대해 스트레스라고 진단했다. 세나는 그 꿈의 원인이 패배라고 생각했다. 기사는 남았지만 왕은 쓰러졌다. 왕이 쓰러지면 게임은 진다. 다른 말들이 얼마나 살아있냐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나이츠’는 보이지 않았다.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꿈은 계속 될 게 분명했다. 끝이 없는 불안을 혼자서 해결하기란 어려웠다. 강한 무력함은 그의 발뒤꿈치에 매달려 있는 그림자처럼 자리했다.
익숙한 불면이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교실에서 잘 수 없었다. 세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잘 수 없었다. 또한 속죄하듯, 혹은 기도하듯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도저히 눈을 붙일 수 없었다. 눈에 띄는 자세였고, 선생님께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은 한계였다. 모든 게 극에 달해 있었다. 세나는 걸리지 않고 잘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옥상은 잠겨 있었고, 가든 테라스 쪽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방황하고 방황하다, 낡은 교사 앞에 도착했다.
굳게 닫혀 있을 거라고 생각한 문은 한 번 밀자, 어이없게 열렸다. 먼지 냄새 나는 그 곳으로 천천히 들어가자 햇볕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우주처럼 뿌려져 있었다. 얼굴에 닿는 게 기분이 나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걸어갔다. 그는 청소가 덜 되 있는 곳들 사이에서 유난히 깨끗한 곳을 볼 수 있었다. 청소도 별로 하지 않는 교사에서 그 곳은 이질적으로 보였다. 음악실이라는 명패에는 거미가 줄을 치고 있었지만, 교실만은 깨끗했다.
세나는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먼지 하나 쌓이지 않은 그랜드피아노 옆에 준비해 둔 것 마냥 잠자리가 있었다. 홍차에 우유를 탄 것 같은 포근포근한 향이 났다. 그는 햇살이 들어오는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가의 비밀 장소인 듯 했다. 어둠이 무서웠음으로 세나는 암막을 치지 않았다. 앞코가 하얀 실내화를 가지런히 벗어두고 매트리스 안에 들어가자, 푹신한 감촉이 그의 등허리를 감쌌다. 세나는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본디 세나 이즈미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하길 좋아했지만 지속된 불면은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차려진 잠자리를 마다할 정도로 여유 있지 않았다. 세나는 얌전히 이불을 덮었다. 눈을 감자, 볕 때문에 오렌지 빛으로 시야가 물들었다. 그 따듯한 색을 붙잡고 그는 떨어진 성적과 돌아오지 않는 왕, 그리고 자신만이 자리하곤 하는 스튜디오를 떠올렸다. 나이츠의 거점으로 사용하던 그 곳은 이제 혼자만 있는 곳이 되었고, 리더만이 낼 수 있는 연습실 대여 신청서를 더 이상 낼 수 없기 때문에 세나는 이주를 준비해야만 했다.
차라리 둘이었다면 지탱할 수 있었을까. 세나는 2학년 말부터 예견된 것처럼 제 곁을 떠난 두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은 먼지우주처럼 천천히 부유했다. 텁텁한 공기였지만 그의 의식은 천천히 멀어졌다. 매우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진행되는 월식처럼, 세나의 눈꺼풀을 수마가 덮어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상냥한 피아노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간만에 찾아온 세나의 잠에는 꿈의 편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
세나가 눈을 뜬 건 짙은 밤이 찾아온 후였다. 성급하게 몸을 일으키자 시야가 좁아져왔다. 그는 괜히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긴장한 듯 눈을 꼭 감았으나, 낙하도 추락도 없었다. 다만 목소리가 다가왔을 뿐이었다. 셋쨩은 특이하네, 라고 묻는 목소리는 그가 익히 아는 것이었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붉은 눈의 소년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쿠마 군? 하고 부르자 그는 소리가 너무 크다면서 느릿하게 하품을 해왔다.
밤에 그를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언제나 나른해 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리츠는 세나가 제 잠자리를 가지고 있는 터라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느릿하게 투덜거렸다. 세나는 그 말이 핑계라고 생각했다. 이거 쿠마 군 꺼? 라고 묻자 리츠는 경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고민하고 고뇌하고 방황한 것과 달리 여유 있는 모습이라, 세나는 배알이 꼴려 얼굴을 찌푸렸다.
“그 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계속 여기 있었어.”
“쿠마 군이 그 동안 연습도 안 오고 싸돌아다닌 뒤처리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셋쨩한테 부탁한 적 없는데.”
리츠는 느릿하게 대답했다. 세나는 자신의 불면에 대해 꺼내 놓으려다가, 한숨으로 내신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굳이 할 관계는 아니었다. 같은 일을 겪었지만 느끼고 있는 감정의 무게는 다른 듯 했다. 세나는 아무 말 없이 리츠의 잠자리에 누웠다. 내 침댄데, 라고 말하면서도 리츠는 세나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다만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그랜드피아노의 열린 뚜껑 너머로 그의 은발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연극 지문의 (사이) 같은 침묵이 돌았다. 세나의 입에서 혼잣말처럼,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완전 짜증나’ 라는 말과, 간간히 리츠가 목적도, 선율도 없이 리듬만을 가지고 두드리곤 하는 건반, 그리고 그들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애매한 계절이었다. 세나는 매트리스에 누워 이불을 목 끝까지 덮었다. 리츠는 그의 모습을 잔잔히 지켜보고 있었다.
“셋쨩.”
“왜.”
“잠, 못자?”
리츠가 물었다. 세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걸 네가 알아서 뭘 하냐고 대답했다. 리츠는 나름대로 '긍정'을 표하는 세나의 모난 말에 그냥, 하고 대답했다. 그들 사이에는 다시 서리 같은 침묵이 자리했다. 세나는 그게 발라드를 부르기 전에 되곤 하는, 작은 암전 같다고 생각했다. 침묵이 어색한 사이는 아니었다. 일학년부터 셋은 붙어 다녔음으로. 둘의 속에서 말이 부글부글 끓었다. 입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언어, 혹은 어떠한 예견들은 혀 위에서 걸러졌다.
뜬 보름달이 가로등처럼 밝았다. 침묵은 여전히 밤처럼 자리했다. 그것을 깨트린 것은 리츠였다. 그는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으면서 달의 뒷면 같은 마음이야, 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데? 하고 세나가 되물었지만 리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꿈속의 추락이 무서워 잠들지 못하는 세나는 그가 내뱉은 키워드를 붙잡았다. 작은 사색이 예정되지 않은 홍역처럼 번졌다.
지구와 달은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았다. 언제나 달은 한 면만을 보여준다. 인간이 맨눈으로 보지 못하는 뒷면은 소행성이 충돌하여 만들어 낸 크레이터로 가득하다. 세나는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사실들을 떠올리다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쿠마 군도 악몽을 꿔? 그의 말에 리츠는 흡혈귀는 꿈을 꾸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세나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등을 돌려 누웠던 것을 돌아누웠다. 이불이 사박거리며 움직였다.
“대신, 나는 셋쨩 같은 어린애들 보다 오래 기억 할 뿐이야.”
나이가 많으면 이래서 곤란해. 쌓여가는 시간에는 강렬한 사건이 없으니까, 이런 일을 겪으면 오래 슬퍼할 수밖에 없어. 리츠는 검지로 하얀 건반들을 의미 없이 두드렸다. 그는 화가 난 것 같았다. 수면 같던 잔잔한 목소리에는 어떠한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세나는 괜찮아, 하고 대답했다. 의무적이거나, 사무적인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둘은 같은 열병을 앓고 있었다. 이미 떠나버린 별에 대해서 사유하고, 답이 지워진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그 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세나는 몇 가지 말을 하려고 입을 오물거렸다. 하지만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숨을 닮은 바람소리에 리츠는 엷게 웃었다. 고작 고등학교 2학년이 겪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야, 리츠는 그를 어린아이 보듯 얼렀다. 창문에서 가로등 빛과 함께 달빛이 들어왔다. 은은한 빛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아까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
겪었던 불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알고 있었다. 그들은 교집합 속을 걷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세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리츠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조금 더 노력할걸. 리츠는 작게 자책했고, 세나는 이불 안에서 괜찮아, 하고 말했다. 그는 두꺼운 이불 너머로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다시 한 번 괜찮아- 하고 소리쳤다. 차가운 밤에는 사람의 목소리와 온기가 필요한 법이었다. 이 사실을 둘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크레이터 같은 밤이었다. 엉엉 울고 싶은 밤이었으나, 울음이 나오지 않는 밤이기도 했다. 리츠는 그를 천천히 바라보다가, 건반을 천천히 두드렸다. 그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 마다 리듬과 선율이 새겼다. 작은 악보들이 모여 쇼팽의 녹턴이 되었다. 세나는 이불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듣기 좋은 소리였다. 상냥하고, 따듯한 음이기도 했다. 날이 밝을 때,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들었던 음과 같았다. 세나는 눈을 감았다.
사랑하게 될 것 같은 밤이었다.
리츠는 그랜드피아노 너머에서 보이는 이불 뭉치를 바라보았다. 몇 백 년 동안 연주해왔던 음은 건반을 보지 않아도 익숙하게 뽑아낼 수 있었다. 어린 아이는 상처를 입으면서 크는 법이라지만, 이번에 겪은 열병은 유달리 짙었다. 빈자리를 견디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피아노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세나의 불면은 달의 뒷면에 생긴 자잘자잘한 크레이터 같았다. 겉으론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는 게 있는 법이었다.
야상곡이 반복될수록, 세나가 들어있는 이불뭉치는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기분 좋게 잠이 든 게 분명했다. 리츠는 오후에 들었던 세나의 잠꼬대를 기억하고 있었다. 같이 있어줘, 손을 잡아줘- 라며 반복되는 목소리 끝에는 불안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돌봐야 할 어린아이를 방치해 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랜 세월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잊어버리곤 하는 게 있었다. 그는 천천히 피아노에서 손을 땠다. 세나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리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간이 매트리스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실내화를 벗고, 그의 옆에 가만히 누웠다. 천천히 이불로 손을 뻗어, 말린 것을 풀어내자 세나의 잠든 얼굴이 보였다. 평소 짓는 짜증난 표정이나, 화난 표정을 제외한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티없이 맑고 천진하기만 했다. 리츠는 이불 끝을 끌어 당겨 제 몸을 덮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이불 밑에서 둘은 가까이 붙어, 규칙적인 숨소리를 냈다.
그는 손을 뻗어 세나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볍게 얽히는 은실 같은 머리카락은 달이 생각나는 색을 하고 있었다. 리츠는 천천히 그의 앞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불안한 기색 없이 자는 모습에 안심이 되다가도, 도둑처럼 하고 떨어지는 입맞춤에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리츠는 아까까지 연주하던 야상곡이 귓가를 맴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좁은 거리였다.
지켜주고 싶었다. 츠키나가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면 채가고 싶었다. 좋아하니까 두 번째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면을 겪는데도 손을 뻗지 않았다. 불안하게 걷는 걸 잡아주고 싶었음에도 그냥 멀리 있을 뿐이었다. 제 발로 덫에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손을 놓고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세나 자신도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그는 츠키나가를 좋아했다. 리츠는 알 수 있었다. 오래 산 존재는 대부분 눈치가 빠르고 영악한 법이었다.
하지만 위태롭게 걷는 사랑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엉키는 마음이라도 지금은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접어야 할 사랑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곳에서 세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자장가를 쳐주는 것만으로도, 혹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사라질 옅은 불면증. 그의 불안을 이용하여 사랑하고 싶진 않았다. 리츠는 자신의 문드러진 마음을 생각하다가 세나를 바라보았다. 리츠는 자신의 마음 뒤편에 크레이터가 파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 고이는 녹턴은, 사랑은 쌍방향이 아닐 것이었다. 그는 애매하게 시선을 돌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이걸로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같은 병을 다르게 앓진 못했다. 다만, 갈급하는 대상이 다를 뿐이었다. 그들의 짝사랑은 한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뒤를 돌지 않는다면 이뤄지지 않을 관계였다. 그들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는 같았다.
사쿠마 리츠는 ‘지금은’이라는 단어의 울림을 생각하다가 눈을 감았다. 지구에서는 달의 한 면 밖에 볼 수 없다. 사랑하지 않는 한 면, 친구나 동료 같은 한 면. 애달픈 소리였다. 그들의 주기가 엇갈리지 않는다면, 사랑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불안감이 리츠의 손끝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세나는 깨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그는 손을 뻗었다. 세나의 어깨가 잡혔다. 그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끌어안고 이불을 추슬렀다. 수마에 빠지진 않았으나, 숨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야상곡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강한 선율이었다. 자장가라고 하기에도 떨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햇병아리 같은 사랑은 홍역처럼 강했다. 그의 볼은 단풍처럼 붉었다. 그는 익지 않은 채로 뚝, 뚝, 서툴게 떨어지는 제 짝사랑을 갈무리하려고 노력하며 세나를 끌어안았다. 미처 다 안지 못한 몇 센치가 야상곡처럼 느리게 밤을 울렸다.
홍역 같이 앓는 밤이었다. 지구에서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 그저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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