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와 바람 | 2016. 1. 13. 02:07
*카오루와 카나타는 비틀린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삼기인이 인외종족이라는 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리츠이즈 주의.
The Plastic Garden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아무래도 내 옆집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
카오루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 쉬었다. 뻐끔뻐끔 벌려지는 아가미에서는 작은 기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수조의 수면이 찰랑찰랑, 움직인 듯 물이 넘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수조 안은 어떠한 흐름도 없이 평평했다. 그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웃으면서 뒤를 돌았다. 곧 오븐 안에 있는 농어가 다 익을 것이었다. 그는 자신들의 식사시간이 틀어지지 않길 바랐다.
범죄자가 있다면 이사를 가는 게 좋을까, 그는 작게 운을 땠다. 수조에서는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만이 들렸다. 잔잔하고 기묘한 평화. 카오루는 실소를 터트렸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 와중에, 물고기를 넣어둔 오븐에서 경쾌한 종소리가 났다. 그는 천천히 오븐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지극히 불안한 일이었다. 카오루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집 사람이랑 오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어.”
카오루는 작게 웃었다. 농어에서 짠 내가 났다. 알맞게 익은 것 같았다. 그는 접시에 농어를 옮겨 담았다. 소금은 드문드문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작은 망치와 포크를 들고 농어에 둘렀던 소금을 천천히 깼다. 방 안에 정적이 흐를 때 마다 카오루는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곤 했다. 그는 자신의 시야에 담기는 수조의 가장자리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돌 색이 별로 안 예쁜 것 같았다. 그는 다음에는 흰 돌을 사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생각들은 물에서 이는 기포처럼 포르르 떠올랐다 의식의 흐름에 밀려 사라지곤 했다. 조용한 가운데, 벽을 타고 끼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에서 흐르는 소리였다. 봐봐, 저거 진짜 범죄자 같잖아, 카오루는 한숨을 내 쉬었다.
도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다. 이쯤이면 회사와도, 간간히 라이브를 하는 극장과도 가깝다. 집세가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다. 애초에 공동주택으로 등록 된 건물이었기 때문에 전기세도 다른 곳에 비해서 나쁘지 않다. 카오루는 자신의 아파트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범죄자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제 보금자리를 포기하기엔 리스크가 크다. 그는 수사 협조가 들어왔을 때 수조에 대해서 어떻게 변명할 지를 골똘히 고민했다.
“벽 긁는 소리랑 신음소리가 들려온다고. 뭐 기르시는 거 있으세요, 하고 물어봤다?”
유리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오루는 자신이 한참이나 말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침묵은 지양해야 한다. 그는 두 개의 밥공기에 밥을 덜었다. 하얀 쌀밥에서 모락모락 김이 났다. 그는 설탕을 넣은 계란말이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곤, 다시 불 앞에 섰다. 프라이팬이 데워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카오루는 입을 열었다.
“근데 옆집 사람이 말야, 새를 기른다고 하더라고.”
카오루는 실소했다. 옆집 사람은 미리 시뮬레이션 해뒀던 것처럼, 그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새를 한 마리 기르고 있어요. 근데 조금 커서, 벽지를 득득 긁더라구요.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붉은색 눈을 가늘게 접어 웃었다. 매력적인 웃음이었다. 카오루는 그게 요샛말로 ‘사이코패스’라고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계란 두 개를 볼에 까 넣었다.
새라니, 웃기지도 않지. 요즘 새는 신음소리를 내나? 울먹이는 목소리로 쿠마 군, 하고 속삭이던가? 카오루는 허허 웃으면서 젓가락으로 노른자를 으깼다. 남자는 분명 누군가를 감금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범죄자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감각이라니, 그는 짧게 몸을 떨었다.
그는 계란을 달궈진 프라이팬에 넣었다. 그는 설탕을 넣지 않은 것을 깨닫고 얼른 찬장을 열었다. 조미료 통 뒤의 식기가 눈에 들어왔다. 두 개씩 짝을 맞추어 산 것들이었다. 얇은 벽을 타고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랑해,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싼 아파트는 이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카오루는 계란판으로 벽을 두르던지, 방음 인테리어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수조에 대해서는 변명하기 귀찮은데.”
경찰이 오면 그 남자와 일면식도 없다고 둘러대는 게 좋겠지? 카오루는 질문했다. 대답이 없자 그는 뒤를 돌았다. 계란은 신경질적으로 열을 받고 있었다. 계란에 설탕이 뿌려진 꼴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카오루는 수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조 속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 풀어진 바다색 머리카락이 아름다웠다. 하늘하늘한 머리카락들이 물을 머금었다. 카오루는 그 광경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아름다웠다. 그의 팔은 물속에서 무게감 없이 흔들렸다. 그는 마치 커다란 고래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풀어진 머리카락들은 열대어의 꼬리 같았다. 베타나 금붕어보다 훨씬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었다. 카나타는 계란, 하고 입을 움직였다. 그가 말할 때 마다 투명한 공기방울들이 수조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카오루는 그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얼른 프라이팬 앞으로 몸을 옮겼다.
계란의 뒷면은 형편없이 탔다. 그는 미간을 좁히고 계란을 말았다. 딱딱하게 굳은 계란은 잘 말리지 않았다. 카나타는 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쉬운 듯,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수조의 천장을 보고 누웠다가, 몸을 돌렸다. 그의 발목에 걸려 있는 족쇄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물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카오루는 피식피식 웃었다.
“옆집에서 정말 살인이 나면 어떻게 될까.”
그럼 이렇게 증언해도 괜찮을까? 옆집에 사는 사쿠마 씨는 저에게 새를 기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것 말고는 몰라요― 라고, 카오루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것 처럼 유쾌하게 말했다. 물이 찰랑찰랑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아직 식사준비가 덜 되었음으로 열쇠를 넣어줄 수는 없었다. 카나타는 유리벽 쪽으로 다가가, 인공 산호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얼마 전에 사 넣었던 꽃과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카나타는 팔짱을 끼고 수조의 전체적인 조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오루는 그 광경이 뿌듯하기만 했다. 그는 엉망이 된 계란말이를 수습해 두 개의 접시에 나누어 담았다. 그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신카이 카나타와 함께하는 저녁을 위하여, 요리를 하는 이 순간이 사랑스러웠다. 그는 장아찌 몇 개와, 얼마 전 만들어 둔 마른 찬 몇 가지를 꺼냈다. 메인 요리는 소금과 함께 오븐에서 구운 농어였음으로 그 반찬들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내놓는 것과 같았다.
마치 수조 안의 카나타를 위하여 꾸며둔 인공 정원처럼. 카오루는 제 수조를 바라보았다. 옆집 사람에게 말했던 ‘취미가 물질’이라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거대한 수조를 갖고 있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열대어가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합의 된 사항에 강제성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위안에 가까웠다. 카나타가 제게 베푸는 친절과도 같았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 족쇄를 차고 물 안에 들어갔다.
이상한 관계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옆집 보다는 훨씬 낫다. 자신은 그래도 합의 하에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언제,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연인을 붙잡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하카제 카오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수조에 담겨 식탁 쪽을 보고 있는 제 연인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마주했다. 그는 구색을 맞춘 식사를 정갈하게 차렸다.
식탁 위의 무드등이 켜졌다. 그는 카나타와 옆집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수조 안의 상황이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카나타의 목소리로 확인받고 싶었다. 그는 접시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서로의 눈 색을 한 접시들은 정갈했다. 중앙에 있는 농어의 눈이 죽어 있는 게 신경이 쓰여, 카오루는 괜히 소금을 들어 농어의 머리를 가렸다.
그는 천천히 수조로 다가갔다. 그의 인공정원의 중앙, 카나타는 웃고 있었다. 그가 숨을 쉴 때 마다 목에서 공기방울이 퍼졌다. 저만을 위한 우주를 보는 것 같아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종교를 마주하는 것처럼 성스러워 카오루는 손을 들어 성호를 긋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게 터진 실소를 웃음으로 오해했는지 카나타는 눈을 마주치다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손가락 끝이 산호초처럼 붉었다.
카오루는 수조 가까이 다가갔다. 카나타의 입모양이 천천히 사랑한다는 약속처럼 움직였다. 카나타는 발을 움직여, 수조 벽 쪽으로 다가갔다. 카오루는 수조에 손을 댔다. 두 사람의 손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닿았다. 약간 차이 나게 가려지는 손끝을 마냥 사랑스럽게 보다가 카오루는 천천히 유리벽에 입술을 댔다. 카나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수조 벽에 제 입술을 댔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입에 닿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았다. 수조 안에 넣어둔 소나무 분재의 줄기가 휘어져 있었다. 카오루는 비틀린 사랑에 대하여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숨이 닿지 않는 키스에, 입술이 간질거리기만 했다. 뒤틀려 있다고 해도 둘 사이의 관계였다. 이런 행위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사랑하는 연인의 세계를 간섭할 수 있는 것은 시간으로 족했다.
카오루는 눈을 떴다. 유리벽에는 제 숨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모양을 가만히 보다가, 수조 안으로 열쇠를 던졌다. 카나타는 익숙하게 그것을 잡아, 제 Q발목에 걸려 있는, 헐렁한 족쇄를 풀었다. 그가 발을 구를 때 마다 물살이 갈라지고, 기포가 움직였다. 수면을 비집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카오루는 두 팔을 벌렸다. 수조에 설치되어 있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던 카나타는, 그의 손에 열쇠를 쥐어 주고 나서야 그를 끌어 안았다.
바짝 말라 있던 옷이 젖을 때 마다, 카오루는 더 없이 행복했다. 이대로 세상의 끝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카오루는 작게 웃으며, 젖은 머리카락을 걷어 드러난 둥그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유리벽보다 차가운 이마에서는 바다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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