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멜랑콜리 키친 | 2016. 4. 13. 21:09
4.
밀푀유나베가 말했다. “다 카포”라고.
***
전골을 해먹기로 했다. 어느 일요일, 저녁 여섯 시 경의 일이었다.
츠카사는 에코백을 들고 집 근처 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세나가 육수를 우려 놓는 동안, 작은 심부름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오늘은 토마토를 넣은 왜된장국과 만가닥버섯과 유부를 간장과 참기름에 졸여 만든 버섯조림, 우엉 카레 마리네, 고구마 고기말이 데리야끼와 표고버섯 젓갈구이를 먹기로 했었다. 저번 주 수요일에 머리를 맞대고 정한 메뉴들이었다.
전골을 먹기로 한 건 단순한 변덕이었다. 봄 치고는 날이 쌀쌀했고, 오늘은 진한 국물 요리가 당긴다는 츠카사의 말에 집주인이 전적으로 동의했다. 세나는 보기 드물게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서, ‘밀푀유 나베’를 할 거라고 선언했다. 그는 냉장고에서 다시마를 꺼내 1.5리터 정도 되는 물에 넣어 진하게 우리기 시작하더니, 그 물에 황태 대가리와 대파 뿌리부분 반 대, 멸치 한 주먹과 표고버섯 밑동을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그는 국물을 진하게 우릴 거라고 말하면서 기분 좋게 웃더니, 츠카사에게 에코백을 건네주었다. 집 근처 슈퍼에서 나머지 재료를 사 오라는 뜻이었다. 이제 집 근처 지리도 익숙하고, 집 비밀번호도 보지 않고 입력하게 되었으니 심부름 정도는 가도 괜찮지 않느냐는 말에 반박할 거리도 없었다. 츠카사는 입고 있던 잠옷 위에 낙낙한 후드 집업을 걸쳤다. 세나가 던져준 옷이었다. 옷은 한동안 꺼내지 않은 듯, 먼지 냄새가 묻어 있었다.
겉옷을 걸치자마자 쫓기듯 나갔다. 쥐고 있는 핸드폰이 여러 번 진동했다. 누구에게서 왔는지 확인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세나는 냉장고 안을 확인 한 다음, 사올 물건들을 정리해, 메시지로 보내겠다고 했다. 츠카사는 에코백 속을 뒤적거렸다. 카드지갑이 손에 잡혔다. 그는 카드지갑을 목에 걸고, 손에 걸린 영수증들을 가지런히 접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츠카사는 천천히 걸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이 보기 좋았다.
그러고보니 세나의 집은 동네 사람들에게서 ‘노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고 했다. 츠키나가가 말해 준 것이었다. 그는 세나의 집과, 세나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아침에는 잘 일어나지만 저녁에는 쉽게 자울자울 하는 것을 알려준 것도 츠키나가였다. 텔레비전 심야 프로그램이 보고 싶으면 소리를 최소로 하고 보라고 조언할 때, 곁다리로 알려 준 말이었다. 츠카사는 그들이 상당히 친하다고 생각했다. 친한 친구와 가까이 살면서도 굳이 보러 가지 않는 것은 사적인 플레이스를 방해하기 싫은 마음에서일까. 츠카사는 뒷목을 긁적이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는 츠키나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밀푀유 나베를 먹는데 오시겠습니까? 라는 메시지는 건방졌지만, 세나라면 츠키나가를 문전박대 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반가운 손님을 봄처럼 맞이해주지 않을까. 츠카사는 노을을 받으면서 걸었다. 길가에 심어져 있는 산수유의 꽃눈이 텄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었다. 그는 노을을 받은 꽃눈을 보고, 멈춰섰다가- 다시 움직였다가-를 반복했다.
슈퍼마켓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저번에, 츠키나가와 같이 왔던 곳이었다. 마트를 공유할 정도면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츠키나가는 세나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츠카사는 저가 ‘지금의 나이츠’의 멤버들에게 손을 벌리기 싫어하는 것처럼, 츠키나가도 자신의 기사에게 멋있게만 보이고 싶어 하는 걸까 생각했다. 그들은 말해주지 않는 게 많았다. 츠카사는 하품을 하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청경채 한 봉지」
「소고기(샤브샤브용) 500g 더 먹을 거면 더 사와도 괜찮」
「팽이버섯이나 느타리버섯 한 봉지」
「깻잎 두 묶음, 숙주 한 봉지」
「이 정도면 오케이. 면 먹고 싶으면 사리만」
세나의 문자 아래에는 츠키나가의 답장도 도착 해 있었다.
「갈게」
「과일 사가야 하나? 세나 뭐 좋아하지? 냉장고에 뭐 남아 있어?」
「잠깐만, 미안해 스오.」
「아직 세나한테 말 안했지?」
「미안해, 못 가」
「미안, 작업이 많아서 무리야 스오! 날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마감일이 당겨진 걸 까먹었어-!」
「앗, 잠깐, 이거 설마 날 납치하려는 외계인의 소행이 아닐까?」
츠키나가의 거절문자는 현란했다. 마감일도 잊고 살 만큼 정신이 없는 건가 싶었다. 츠카사는 괜찮다고 답장했다. 세나가 부른 거냐는 메시지가 바로 도착했고, 그는 자신이 부른 거라고 대답했다. 츠키나가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괜히 신경을 쓰게 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석연찮았다. 그는 괜히 달음박질 했다. 마트가 머지 않았다. 에코백에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이 담겨 펄럭였다.
츠카사는 마트 안을 두리번거렸다. 심부름이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괜히 카트를 밀고 천천히 움직였다. 바퀴가 부드럽게 굴러 갔다. 그는 과자 코너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서둘러 발걸음을 움직였다. 한 번 왔다고 물건이 놓인 자리가 얼추 눈에 익었다. 그는 야채 코너에서 청경채와 버섯들을 집었다. 그는 소고기 두 팩을 집고, 우동사리를 카트에 넣었다. 그는 카트 안을 살펴보았다. 아까 놓고 온 새송이버섯이 눈에 밟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 새송이버섯을 카트 안에 담았다. 그리고 잊을 뻔 했던 깻잎과 숙주를 넣었다. 포장 봉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츠카사는 아쉬운 듯 마트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곳곳에 놓인 과자 코너의 유혹이 심했다. 과자 한 봉지만 사 가도 괜찮냐고 먼저 물어볼 걸 그랬다고 혀를 끌끌 차면서, 그는 짠 감자칩과 말차맛 포키 두어 개를 카트 안에 담았다. 이 정도는 용서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약속을 정할 때 군것질에 족쇄를 채우는 불합리한 조항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츠카사는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뒤늦게 도착한 메시지가 보였다. 얼갈이배추, 이거 안 사오면 다시 가야 한다? 라는 말이 세나의 목소리로 읽혔다. 그는 서둘러 얼갈이배추를 집어 카트에 담았다. 계산을 하고 나와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발걸음이 가볍기 마련이었다. 묵직한 에코백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들어오니, 세나는 그의 에코백을 받아들면서 수고했다고 말했다. 부엌으로 나가갈수록 맛있게 끓고 있는 육수 향이 났다. 세나는 그새 양념장을 만들어 둔 것 같았다. 퍼지는 참기름 냄새는 과하게 고소했다. 그는 츠키나가를 초대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말을 하며 식탁 앞에 앉았다. 세나는 무언갈 곰곰이 생각하는 듯 말을 멈췄다가, 그러네. 바쁜 시즌이니까 어쩔 수 없네, 하고 말했다.
작곡가는 원래 이 시즌에 바쁜가요? 라고 츠카사가 묻자, 세나는 봄이니까, 라고 대답했다. 일단 하던 것을 마무리하려는 듯, 그는 장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뒤를 돌았다. 그는 상추와 양파를 채썰어 두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았다. 미리 만들어 뒀던 맛간장―간장과 야채육수, 맛술과 설탕, 자두액을 끓여 뒀던 것이었다.―을 열 번, 레몬 즙을 열 번 넣더니, 매실즙 두 큰술, 와사비 두 스푼을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세나는 다 만든 소스를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봄은 언제나 새롭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노래가 더 필요한 법이라고 말하면서 세나는 장바구니를 열었다. 그는 포키와 짠 감자칩을 보고서 얼굴을 찌푸렸으나, 뭔가 더 덧붙이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심부름을 했다는 것 자체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세나는 채소들을 씻었다. 그는 청경채부터 손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큰 이파리들을 때어내고, 작은 이파리들은 봉오리채로 두었다. 깨끗하게 씻은 청경채가 소쿠리에 담겼다.
츠카사는 세나가 깻잎의 꽁다리를 서걱서걱 잘라내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뭔가 도울 것이 없느냐고 물으며 가까이 다가갔지만, 세나는 알배추를 손질하면서 식탁 정리를 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츠카사의 요리 솜씨를 전혀 믿지 못하는 듯 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츠카사는 에코백을 원래 있던 자리에 걸어놓은 다음, 식탁에 놓여 있는 우편물들을 가지런히 모았다. 세나의 작은 방, 그의 침대 위에 가져다 놓았다. 침대에 누워 있던 사자 씨가 얼른 달려, 거실에 있는 소파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갇혀 있던 모양이었다. 츠카사는 그의 방이 여전히 정리되어있지 않음에 놀랐다. 세나 이즈미가 사용하기 때문에 깔끔할 거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는 스노우볼이 놓여있는 협탁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스노우글로브를 흔들자 반짝이 가루들이 눈처럼 흔들렸다.
그는 스노우 글로브 아래에 있던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말-보로-레-드, 츠카사는 입을 열어 곽에 적힌 영어를 읽었다. 세나의 것인지 ‘그의 연인’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담배였다. 그는 담배 옆에 있는 라이터를 들었다. 담뱃갑은 열려 있었고 몇 개비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방에 담배 특유의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처음 왔던 날에는 맡지 못했던 냄새였다. 세나가 피웠을까, 츠카사는 당황한 채,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방문 밖으로 나갔다. 당황스러움에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츠카사는 담뱃갑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발걸음이 쭈뼛거렸다. 어른이 담배를 피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세나 이즈미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는 여전히 가수였다. 연기 활동과 모델 활동을 주로 하긴 했지만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다. 세나는 츠카사가 아는 사람 중 직업윤리가 가장 투철했다. 그런 사람이 담배를 피워서 목을 혹사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같이 살고 있으면서 그런 것조차 캐치하지 못한 자신을 타박하며, 츠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말을 걸지 못한 채로 그는 머뭇거리다, 담뱃갑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세나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알배추 위에 고기, 그 위에 깻잎 두 장과 청경채의 순서대로 탑을 쌓고 있었다. 숙주 말고 콩나물 사올 줄 알았는데- 앞으로 심부름은 카사 군에게 시키면 되겠구나? 세나는 드물게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노래를 하는 것처럼 리듬을 가지고 울렸다. 츠카사는 찝집한 마음으로 언제든 가겠다며 웃었다.
둘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네. 세나는 한 번도 둘이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그가 쌓아올린 밀푀유 나베의 재료들이 큰 칼에 서걱서걱 썰렸다. 냄비에 숙주를 담뿍 쌓고, 냄비 가장자리에 겹겹이 쌓았던 야채와 고기들을 둘러놓았다. 가운데 부분에는 다시 청경채와 표고버섯을 담았다. Marvelous! 비주얼이 훌륭하군요!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세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부엌에 딸린 베란다에서 가스 버너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식사매트 두장을 깔고, 그 위에 식기와 물컵을 가져다 놓았다. 식탁을 정리하며 분주하게 움직일 때 마다, 그 위에 올려둔 담뱃갑이 구석처럼 밟혔다. 츠카사는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그 담뱃갑을 세나의 나눔접시 옆에 내려놓았다. 세나는 육수를 주전자에 옮겨 담았다. 혼자서 느끼는 폭풍전야였다. 츠카사는 으으, 하고 짧게 앓는 소리를 냈다. 비켜, 냄비를 들고 있는 세나가 말했다.
휴대용 가스버너에 밀푀유나베를 내려놓은 다음, 세나는 의아한 것을 발견했다는 듯 하, 하고 헛웃음을 쳤다. 그는 나눔접시 옆의 담배를 살펴보았다. 찬찬히, 섬세하게. 지금 이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싶어하는 눈빛으로. 그는 츠카사와 담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츠카사는 저가 아니라는 듯 두 손바닥을 세나에게 내보이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세나는 그게 ‘쇼’나 ‘퍼포먼스’ 라고
“카사 군, 담배 피우는 걸 이렇게 광고하지 않아도 좋은데.”
세나가 말했다. 그는 프로가 되려면 몸 관리부터 신경 써야 한다며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말을 끊을 타이밍을 알 수 없었다. 노래하는 직업이라면 목도 당연히 관리해야하는 거 몰라? 카사 군, 머리 괜찮아? 폐포보다 뇌세포가 빨리 죽은 거야? 라며 쏘아붙이는 독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저, 이게 제 게 아니라요, 라고 겨우 변명을 하자, 세나는 꽤나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는 저가 츠카사의 학부모라도 된 양 생각하는 듯 했다. 우리애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면 어쩌지, 라는 망상이 그의 굳은 표정에 단단히 담겨 있었다. 카사 군 삥 뜯겨? 500엔 주고 과자 한아름 사온 다음 400엔 남겨오라고 하는 애들 있어? 그런 불합리한 걸 당하고 있는 거야? 담배 셔틀까지 시키는 거니? 세나는 거침없이 물었다. 사람 말을 좀 들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치자, 세나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제 담배가 아닙니다!”
“그럼 너 말고 이 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제게 아니라 세나선배 겁니다!”
“하아?”
“선배야 말로 담배 피우지 마십시오!”
세나는 불퉁한 얼굴을 하더니 담배를 식탁 구석에 던져두었다. 둘은 식탁에 마주 않았다. 부탄가스를 내리고, 버너의 불을 켰다. 세나는 따듯하게 끓인 육수를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었다. 그는 면을 잊었었다는 듯, 츠카사가 사온 우동사리를 풀어 그릇에 담아 올려두었다. 츠카사는 여전히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찾았어? 라는 질문이 오기 까지, 그들의 세계에서는 침묵이 맴돌았다. 뜨거운 육수를 넣은 탓인지, 금방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왔다. 츠카사는 그의 질문에 스노우글로브 아래, 라고 대답했다. 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하며 눈치를 보자, 그는 말하지 못할 건 딱히 없다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츠카사는 수제 피클을 입에 넣었다. 아삭아삭하고, 톡 쏘는 맛이 났다.
“협박용이야.”
“협박이요? 넘지 말아야 할 강도 건넜습니까?”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래.”
“사체? 용달? 떼인 돈 대신 받아 드립니다?”
“무슨 소리야. 세나 이즈미라고? 그런 거 할 리가 없잖아. 애초에 같이 식사하는 것부터 영광으로 알아야 할 정도라구?”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가 났다. 세나는 그의 나눔접시를 받아 국물과 함께 고기와 야채를 덜어 주었다. ‘밀푀유’ 하나가 없어질 때 마다 밑에 깔려 있던 숙주가 포로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가라앉길 반복했다. 제 접시에 숙주와 버섯, 약간의 국물을 덜어 놓은 세나는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는 여전히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긴 피워.”
츠카사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포지티브한 활동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너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다는 듯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운동을 더 하십시오, 라고 주장하는 츠카사를 보던 세나는 제 나눔접시를 바라보다가 얼척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인인데 담배 몇 대 피워도 괜찮은 거잖아? 애초에 평소에는 절대 입에도 안 대고? 세나는 버섯을 양념장에 넣어 푹 적신 다음, 상추와 양파와 함께 들어 올렸다.
그는 입에 들어 있는 것을 꼭꼭 씹었다. 억울함을 끊어 넘기려는 듯 했다. 츠카사는 제 나눔접시에 들어 있는 고기를 기름장에 찍었다. 숨이 죽어 나른해진 배추를 간장 양념에 푹 적셔, 기름장에 찍은 고기와 함께 입에 넣었다.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전골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겹쳐 들렸다. 세나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걔 때매 스트레스 받을 때만 한 두 번 씩 피워.”
“협박용이란 건 그럼”
“걔는 내가 왜 피우는지 언제 피우는지 알고 있거든.”
“그게 협박이 됩니까?”
“알고 있으니까 무서워하는 거지.”
주제에 내가 사랑해주지 않는 건 더럽게 무서워해. 걔는 내가 지쳐버릴 까봐 무서워하는 거야. 지금 이 같잖은 가출 쇼도 결국은 내가 돌아왔을 때 세나가 날 싫어하면 어쩌지? 라는 멍청한 생각에서 비롯 된 거지. 이상한 버릇이야. 세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말은 꼭 ‘걔’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들렸다. 츠카사는 그의 사랑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이 가지고 있는 여러 성격을 집에 비유한다면 신뢰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나의 연인인 ‘그녀’가 불안해하는 것은 세나가 언제나 자신을 사랑하며,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더 이상 못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계속 가출을 하는 행위도 츠카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의 사랑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왜 그런 협박을 하는 데요? 소년의 질문에 세나는 코웃음을 쳤다. 질문 자체에서 풋내가 풀풀 풍겼다.
그러면 나한테 돌아와줄줄 알았지. 근데 화를 내면 낼수록 불안해하는 걸 어떡해.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만큼 기다리기로 했어. 세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헤어진다면서요, 라고 굳이 사족을 붙이는 소년에게 세나는 오늘은 그런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이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형태일까. 츠카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어른스러운 척 다 하던 주제에 결국 카사 군도 어린애네, 세나는 방긋방긋 웃었다.
그럼 담배를 놓아두기만 하는 게 협박의 끝입니까? 츠카사가 물었다.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국자로 냄비 안을 휘휘 젓다가, 불의 세기를 줄였다. 맹렬하게 보글보글대던 냄비가 잠잠해졌다. 그는 조금 졸아든 육수를 확인하고, 주전자에 담겨 있던 육수를 담아 높이를 맞췄다. 냄비 안에 있던 재료들이 찰랑찰랑하게 떠올랐다. 츠카사는 졸아든 마음에 사랑을 채워 다시 끓인다던 노래 가사를 떠올렸다. 작년 겨울 끄트머리에 차트 인 했던 곡이었지만 제목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세나는 음, 하고 말을 다셨다. 그는 예전 기억을 천천히 더듬는 듯 했다.
“가끔 던지기도 해.”
“네?”
“걔가 오면 보이는 데다 전시 해 놓긴 하지만.”
“세나 선배답지 않게 소극적이라 놀랐습니다.”
“사랑하면 원래 물러져.”
걔가 날 좋아해서 불안해하는 거라 어쩔 수 없지 뭐. 세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히려 그럴 때 마다 안심이 간다고 말하는 표정은 잔잔한 수면 같아서, 츠카사는 그의 사랑법이 조금 ‘이상하다’고 지적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사랑은 비틀려 있는 쌍방향 화살표였다. 서로를 향해 있지만 꼬이고 꼬여,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화살표. 츠카사는 세나가 ‘그녀’를 마주보고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그릴 수 없었다. 사랑에 져 주고, 언제나 헌신적인 세나 이즈미를 보고 있으면서도, ‘사랑해’ 라고 말하는 세나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없는 부엌에서 요리하는 세나만 봐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츠카사는 어렵네요, 라고 중얼거렸다. 세나는 사랑은 언제나 어렵다고 대답했다. 마음과 마음이 맞아서 사랑하는데도, 그 모양은 사람마다 천지차이라고 말하던 그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츠카사는 고개를 숙이고 얼른 버섯을 먹었다. 간장 양념의 짠 맛과 버섯의 부드러운 맛이 입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세나는 그 모습을 감흥 없이 보더니, 카사 군은 예쁜 사랑을 할 거야- 라고 확신을 하듯 강하게 말했다. 부연 설명을 요구하기 힘들 정도로 당연하다는 듯 건너온 목소리에 진지하게 대답할 수 없어, 츠카사는 자신이 나중에 결혼을 하면 부케를 받아달라고 농담처럼 말을 걸었다.
“그거 내가 그 때 까지 결혼 못 한다는 소리지?”
“제가 일찍 할 수도 있죠.”
“도련님이라서 정략결혼이라도 하는 건가?”
“그러게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무섭습니다.”
“도련님도 고생이라니까.”
세나는 냄비 속을 휘휘 저었다. 처음의 규칙적이고 균형적이던 모습이 흐트러졌다. 사랑은 냄비 안에서 끓는 나베와 같다고 말한 게 누구 노래였죠? 츠카사는 흐트러지는 고기들을 보다가 물었다. 세나는 숙주와 고기 조금, 알배추를 제 나눔접시에 담으면서 왕님 노래, 하고 대답했다. 작곡가가 츠키나가 레오가 아니었는데요, 라고 말하자, 세나는 장르에 따라 쓰는 이름이 다르다고 말했다. 모르던 사실이었다.
“그걸 다 외우고 있습니까?”
“아니, 노래가 지문이잖아.”
“전혀 몰랐는데요?”
“그런가?”
“세나 선배와 리더는 의외로 많이 친하신 것 같습니다.”
“기분 나빠. 완전 짜증나.”
세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전골을 먹었다. 할 이야깃거리가 떨어져 갈 때 쯤, 세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가지러 갔다. 츠카사는 빈 앞자리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 그는 잠시 식사를 멈추었다. 그는 괜히 냄비 안을 휘휘 저었다. 세나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더니, 핸드폰에 충전기를 연결해, 조리대 위에 있는 콘센트에 꽂았다. 라디오 튼다? 라는 말에 네, 라고 서둘러 대답하자 세나는 귀찮은 일이 생겼다고 투덜거렸다.
“점심, 저녁, 밤으로 나눠서 ‘홍월’ 특집이래. 완전 짜증나.”
“홍월이요?”
“컴백 준비한다나봐. 갑작스럽게 잡혔으니까… 미리 대본은 못 보내주고, 전 타임 방송 조금이라도 듣고 오래.”
세나는 핸드폰의 볼륨을 올렸다. 일요일 저녁, 그리고 하스밍입니다, 홍월의 칸자키 소마 군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잠시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일요일 저녁의 사근사근한 행복을 그대에게. 라는 하스미의 말이 끝나자마자 광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오늘 게스트가 오는 날이 아닌데 두 배로 귀찮아지겠다고 말하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밤에 하는 거 안 힘드십니까? 츠카사의 질문에 세나는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말했다.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에,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츠카사가 메이저 데뷜 하면 바로 게스트로 부를 거라고 말했다. 답지 않게 상냥한 목소리였다. 가끔씩 세나는 이렇게 ‘선배 같을’ 때가 있었다.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작하게 졸아든 냄비에 다시 육수가 가득 채워졌다.
―「일요일 저녁, 그리고 하스밍입니다.」의 2부입니다. 홍월의 칸자기 소마 군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두근두근, 사랑이 넘치는 연애상담 코너입니다. 이런 코너를 칸자키와 함께 하는 것도 어색하기 그지 없군요.
―하스미 공은 연애 해 보신 적 있소이까?
―칸자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안 들리는 군.
―라디오를 하시면서 능청이 느셨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만담처럼 들렸다. 세나는 숨이 폭싹 죽은 배추를 입에 넣었다. 첫 번째 사연은 짝사랑을 하고 있는 스물두 살 청년의 이야기였다. 작은 바를 운영하고 있다는 청년은, 같이 바를 운영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인 그녀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걸 멈출 수 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츠카사는 라디오를 듣는 세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묘하게 나른해 보였다.
졸리십니까? 하고 묻자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냥 웃겨서, 라고 대답했다. 고기는 슬슬 질긴 맛이 나고 있었다. ‘맛있을 때’를 지나고 있는 고기가 아쉬워 얼른 나눔접시로 건져두자, 세나는 더 먹으라면서 국물 위를 유영하고 있는 고기들을 떠 츠카사의 접시에 덜어 주었다. 하스미와 칸자키는 스물두 살 청년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하면서, 일단 그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며 응원을 전했다. 세나는 하,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방송이란 건 참 웃기지.”
“왜 그러십니까?”
“짝사랑 한 번 밖에 못 해본 애한테 연애상담 코너를 맡기고 말야.”
세나는 하품을 했다. 그는 청경채를 양념에 푹 절였다. 몇 조각 남지 않은 양파와 상추 조각들이 청경채에 담겨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아삭아삭’하던 소리를 잃어버린 채 우직하게 씹히는 맛이었다. 세나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연애 초보자들이 조언하는 연애 라디오가 도움이 될 리가 없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름대로 절박해서 사연을 보내는 걸 텐데 말야, 라고 하면서 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세나 선배는 도움이 되시는 편입니까? 츠카사는 흥미롭단 목소리로 물었다. 세나는 으음, 하고 목소리를 다시더니, 그다지, 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연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츠카사와 마주보고 식사를 하고 있진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었다. 그는 모든 DJ들이 주변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상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래도 세나 선배는 여러 가지 추억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가?”
“칵테일바라던가, 지금 동거하시는 분이라던가, 오르골이라던가….”
“너 완전 짜증난다.”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으시는 분이 하는 연애상담이라면 믿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츠카사는 고기를 먹었다. 그는 세나의 추억이 모두 한 사람과의 것인 게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유우 군’에게도 제법 순정파였던 것 같았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츠카사는 세나의 동거인이 ‘유우 군’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가 얼른 생각을 접었다. 그에게도, 세나에게도 실례인 생각 같았다.
츠카사의 양념장에는 양파와 상추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세나는 야채를 잘 먹어야 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남겨둔 야채들을 그의 간장에 적셔 주었다. 하스미의 라디오 방송에서는 여전히 사랑에 대한 이야길 하고 있었다. 여러 번 고민해서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사랑이고, 여러 번 눈길이 가는 게 멈춰지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죠. 중요한 건 타이밍이에요.
마음이 확신 됐으면 일단 타이밍을 잘 보라고 말하는 하스미는, 고백은 도전이 아니라 확인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아직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칸자키는 하스미 공은 언제나 멋있는 말을 잘 한다면서 박수를 쳤다. 마이크를 타고 퍼지는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면 먹을래? 그는 건더기가 거의 남지 않은 냄비를 휘휘 저으며 물었다.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동 사리가 면에 녹아들 듯 흘러 내렸다. 세나는 국물을 휘휘 저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카사 군은 대식가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 나눔 접시에 들어 있는 국물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조금’ 걱정된다는 듯, 억지로 먹지 않아도 괜찮다면서 대답 해 왔다. 츠카사는 저도 제 양을 잘 알고 있으며, 남기는 거에 죄책감이 없다고 장난스럽게 대답해왔다. 나이를 먹더니 능청맞아졌다는 감상과 함께, 세나는 턱을 괴었다. 그는 버너의 불을 올렸다. 국물에 보글보글, 기포들이 올라왔다.
“새삼스럽게 말하는 거지만 세나 선배가 해주는 건 모두 맛있습니다.”
“당연하지. 세나 이즈미라구?”
“정말 맛있습니다. 하루하루 도시락 여는 게 기쁠 정도로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해서, 요리는 익숙하다구.”
세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가 반짝반짝거렸다. 자췰 하면 다들 사먹는다고 하던데, 라는 츠카사의 말에 세나는 체중관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스미와 칸자키는 두 번째 사연을 읽고 있었다. 사랑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그들은 진지하게 고민하며 이야길 나눠갔다. 그들의 상냥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츠카사는 그에게 첫사랑에 대한 이야길 해달라고 말했다.
“카사 군부터 하면.”
“팬 여러분들이 첫사랑입니다.”
“하아? 그런 준비된 대답 말고.”
“정말로 팬 여러분들이 첫사랑입니다.”
츠카사는 자신의 청춘에는 그런 버라이어티하고 반짝이는 경험이 적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세나는 츠카사의 나눔접시를 받아 우동 면과 국물을 덜어주었다. 세나는 무언가를 되짚어보는 듯 했다. 첫사랑, 첫사랑, 그는 입 속에서 그 단어를 굴렸다. 카사 군 제법 불쌍한 삶을 살고 있네 안즈와는 가망이 없잖아?, 세나는 장난스럽게 물으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츠카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찌 됐든 지금에 만족한다는 제스쳐였다.
“1학년 때…였나.”
“1학년이요? 유메노사키?”
“우리 집이 아지트였어. 자취 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지금 애인 분이십니까?”
“그런 건 알 거 없고. 첫사랑이랑 지금 사랑이랑 다를 수도 있다구?”
“우우…….”
로망이 크네, 라고 말하며 세나는 푸스스 웃었다. 그는 1학년 때 자신의 집에 ‘걔’가 자주 놀러왔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친구랑 같이 오더니, 날이 갈수록 혼자 오는 날이 늘어났으며, 올 때 마다 빈손으로 놀러왔다고 말했다. 그는 물을 마셨다. 첫사랑은 참 신기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잖아. 세나는 물을 두어 모금 더 마시고서야 말을 이었다. 그의 첫사랑은 유키 구라모토의 ‘last summer’처럼 잔잔한 음악 같았다.
그는 ‘걔’가 언제나 저녁을 먹고 갔다고 말했다. 나는 안 먹는데 왜 니 저녁을 준비 해 줘야 하느냐고 물을 때 마다, ‘세나는 해 줄 거야!’ 라고 대답하는 게 여간 얄미운 게 아니었다면서, 그는 어설프게 웃었다. 하지만 그 풋내 나는 표정만 봐도 그가 걔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츠카사는 볼을 긁적였다. 괜히 저가 간질거렸다.
고등학교 1학년, 막 자취를 시작했던 세나 이즈미는 요리를 못하던 소년이었다. 그는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 반절, 저녁은 아예 먹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만들어도 먹는 건 그 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세나는 지금 이 시간에 뭔갈 먹는다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하며 우동 면을 먹었다.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아는 사람인가요? 라는 질문에 세나는 글쎄, 하고 얼버무렸다.
재료 손질법은 엉망. 요리 순서도 엉망. 어떤 걸 먼저 넣어야 하는 지도 모르던 어린 세나 이즈미의 결과물은 언제나 맛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그걸 꿋꿋하게 먹고 갔다고 말했다. 세나는 걔가 다음 날 아침에 연락을 받지 않으면 ‘드디어 이상한 걸 먹고 병원에 실려갔구나.’ 라고 생각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이어지던 풍경은 세나 이즈미 소년의 일상이 되었다. 귀찮음이 가득하던 일상에 점점 설렘이 담기는 걸 들으면서 츠카사는 눈을 반짝였다. 세나는 그 표정이 짜증난다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 끓어 오른 냄비를 확인하다, 불을 껐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서부터가 첫사랑이다 싶지.”
“첫사랑이 아닌 줄 아셨습니까?”
“사랑에 빠진 순간은 거기가 아니라서.”
“설레네요. 세나 선배 치고 훌륭합니다.”
“카사 군은 언제나 건-방-진-걸?”
세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을 올리거나, 볼을 꼬집지 않았다. 그는 기운이 없어보였다. 그의 사랑은 담담하며 답답했다. 레이디께서는 다른 학교 분이셨나 보군요. 츠카사는 안즈가 전학 오기 전 학교의 이름을 들었는데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세나는 눈을 깜빡였다. 내가 여자애라고 했어? 라고 묻는 소리에 츠카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나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대화의 맥락을 놓쳤나 싶어 그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여자 애라고 했어? 세나가 다시 물었다. 츠카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말이, 어디가 이상한가요? lady께서 요리가 서투르셔서 세나 선배께서 하셨던 게 아닙니까? 츠카사는 의아함을 가득 담아 질문했다. 어색함이 흘렀다. 카사 군한테 말 안했었나? 세나의 목소리에는 ‘그럴 리가 없을 텐데’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의 표정을 살피다가 츠카사는 물컵을 들어 입에다 가져갔다.
“나 게이야.”
츠카사는 사례가 들린 듯 기침했다. 콜록, 콜록, 거리는 소리가 연신 이어지자 세나는 그의 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츠카사는 천천히 물을 삼켰다. 아무튼 게이라고. 세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참고로 요리는 나보다 걔가 더 잘했을 것 같은데. 양파를 쓸 때 생으로 쓸 거면 물에다 매운 기를 빼고, 볶으면 단맛이 난다고 알려준 건 걔니까. 세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츠카사는 기침을 멈추고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걸 들어버렸습니다.”
“그런가, 아무튼 요리는 걔가 더 나았어.”
“그렇군요.”
“응, 아무튼 그 엉망인 걸 계속 먹어줬지. 불평을 한 건 처음에 딱 한번이었는데, 그 때도 밀푀유 나베를 했었어. 그럴싸한 건 모양뿐이라는 말을 들었었던가.”
갑작스러운 커밍아웃 따윈 상관없다는 듯, 세나는 ‘그 애’가 했던 말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 말을 듣는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츠카사는 제 그릇에 남은 면을 호로록, 먹었다. 세나는 아무튼 ‘걔’는 굉장히 신기한 녀석이었다는 말로 말을 끝냈다. 그 ‘신기함’의 근거는 그렇게 맛없는 것을 먹였는데도 끊임없이 찾아와서 저녁을 해달라고 졸랐다는 사실이었다. 츠카사는 국물을 마시고, 다시 물을 마셨다.
“리더처럼 버릇없는 사람이군요.”
“그렇지.”
“세나 선배 근처에는 그런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네.”
“아무튼, 기다리는 게 지루해졌을 때 ‘좋아할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지만.”
사랑에 빠진 순간은 훨씬 나중이야. 세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재미없는 사랑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라고 못을 박았다. 츠카사는 ‘일상적인 짝사랑’이네요, 라고 코멘트했다. 세나는 그러네, 하고 웃었다. 힘이 빠진 미소였다. 하스미의 라디오의 연애상담 코너는 두 번째 사연에 대해 아직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나와 츠카사는 ‘사랑’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빈 그릇들을 앞에 두고 피식 웃었다.
츠카사는 그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유우키 마코토’이고, 첫사랑은 그와 다른 사람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 때의 유우키라면 세나의 집에 매번 찾아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제 앞에 놓인 그릇들을 정리했다. 세나는 기지개를 펴다. 이 이야기 내가 아는 사람인가요? 츠카사의 질문에 그는 글쎄? 하고 대답했다. 최근 눈치 챈 것이지만 세나는 불리하거나 곤란한 말에는 언제나 ‘그러게?’ 따위의 말로 회피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글쎄는 ‘멋대로 생각하던가’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츠카사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아는 사람인지 물었다. 세나는 여전히 ‘글세’ 라는 말로 답변했다. 치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니 ‘어른은 원래 그렇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라도 얼른 자라야겠다고 투덜거렸다. 세나는 그릇을 개수대로 옮겨 놓고서, 어른은 후식 안 먹는데? 라고 물었다.
“오늘 dessert는 뭔가요?”
“캬라멜 맛 과자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어쩔 수 없군요. 오늘만 어린애 하겠습니다.”
“내일도 어린애면서. 말은 잘해요.”
츠카사는 세나가 그릇을 옮기는 것을 도왔다. 하스미의 라디오에서는 두 번째 사연을 길게 이야기 하느라 세 번째 사연 전에 잠시 광고와 신청곡을 듣고 오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하스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정확하시던 분께서도 돌발 상황에는 어쩔 수 없군요, 라고 말하자 세나는 라디오에 어떤 사연이 들어올지 잘 모르니까, 하고 말하면서 식탁을 닦았다.
―이번 노래는 소인이 소개하겠습니다.
―칸자키에게 맡겨도 괜찮을 진 모르겠지만…
그들은 이 말 후에 작게 웃었다. 어서 광고를 틀라는 막내 작가 누님의 콜이 있었음으로 어서 소개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칸자키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웃음이 묻어 있었다. 홍월의 노래는 아직 발매 전이라 틀 수 없다는 농담이 오갔다. 츠카사는 원래 이 라디오가 이런 분위기인지 물었고, 세나는 칸자키가 왔기 때문에 하스미가 부드러워 진 거라고 대답했다.
―이번 주에 새로 차트인 한 노래입니다. 이 작곡가 곡, 요즘 꽤나 인기 있는 것 같지 않소이까?
―확실히 그렇군.
―「그대를 사랑해도 괜찮을까?」와 「계속」이라는 곡이오.
―신청곡 이후에 광고 듣고 다시 뵙겠습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져 「일요일 저녁, 그리고 하스밍입니다.」라는 라디오 이름을 말했다. 서정적인 제목과 달리 빠른 비트의 락 음악이었다. 제목과 가사는 서정적으로, 음은 박력 있게 가져간 부분이 좋았다. 입에 자꾸만 맴도는 멜로디였다. 세나는 식탁을 다 닦고, 개수대 쪽으로 돌아가면서 하품을 했다.
“이것도 왕님 노래네.”
츠카사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세나는 오히려 그런 반응이 의아하다는 듯 츠카사를 바라보았다. 들으면 티가 나냐는 질문에 세나는 음, 하고 물을 틀었다. 직감적인 것을 이해하도록 서술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 했다. 물소리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와 섞여 들렸다. 세나는 세제를 부드러운 스펀지에 묻혔다.
“글세.”
그릇이 물에 담겨 달그락거렸다. 저렇게 대답한 다음의 세나 이즈미는 아무런 부연 설명을 해 주지 않는다. 꼬치꼬치 캐 묻는 것도 취미가 아니라, 츠카사는 한숨을 내 쉬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자던 고양이가 캣타워에서 뛰어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고양이는 엉망인 털을 그루밍하다가, 츠카사에게 달려와 야옹, 야옹, 거리며 노래했다.
밥 달래, 세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어느새 식모가 된 기분입니다, 츠카사는 그렇게 말하며 플라스틱 밥그릇을 꺼냈다. 고양이 사료를 그릇에 붓자, 고양이는 달려들어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세나는 설거지를 다 하고 나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주겠다고 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저녁풍경은 느리고, 또 느리게 흘러갔다.
세나가 출근을 위해 밖으로 나갈 때 쯤 츠카사는 오뎅꼬치를 흔들고 있었다. 만족할 만큼 식사를 한 고양이가 놀아주길 졸랐기 때문이었다. 아이스크림과 캬라멜 콘을 과하게 먹어서 팔 운동을 할 필요도 있었다. 오랜만에 고양이와 이해관가 합치한 날이었다. 그는 펄떡펄떡 뛰는 사자 씨를 위해 매너리즘 넘치는 손길로 오뎅꼬치를 흔들다가, 현관 쪽으로 나가는 세나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세나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오늘 좀 빨리 나가네요? 보이는 라디오라서 그래. 게스트 올 때 마다 보이는 라디오 하거든. 세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는 앞당겨진 출근 시간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츠카사는 느리게 흔들던 손을 고양이가 때려 오뎅꼬치가 저 멀리 날아갔다. 그는 그것을 줍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세나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물었다.
“담배 좋아해요?”
세나는 왜 묻냐는 얼굴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완전 싫어해.”
그는 그 말을 남기고 현관을 나섰다. 혼자 있는 집에 흐르는 적막에는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츠카사는 얼른 오뎅꼬치를 주워 고양이에게 흔들었다. 사자 씨가 있는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곳의 소리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소름끼치게 어색한 밤이었다. 츠카사는 오늘 세나의 라디오가 시작되면, 그걸 틀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 꼬리가 다시 좌우로 흔들렸다.
***
세나는 기지개를 폈다. 심야 라디오 DJ를 하는 것도 익숙해졌지만, 일요일 밤에 나오는 건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는 제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하스미를 바라보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린애 같은 습성의 그가 어째서 심야 라디오의 게스트로 나오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점심 라디오에 나왔던 키류가 심야로 오는 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세나는 대본을 체크했다.
홍월의 신곡은 사랑노래인 듯 했다. 오프닝 멘트를 말한 다음, 게스트인 하스미를 소개하고, 그와 함께 ‘첫사랑’에 대해서 이야길 하라는 소리가 있었다. 점심의 키류가 일상적인 사랑을, 저녁의 칸자키가 첫눈에 반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길 했다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자신이 이야기하기에는 ‘기다리는 사랑’이 가장 편한데, 세나는 혀를 끌끌 차면서 제 첫사랑에 대해서 회상했다.
방송이었다. 모든 걸 여과 없이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는 말해야 할 부분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설레는 부분이 어디었을까. 그는 저가 사랑에 빠진 순간을 회상했다. 예전에 둘이 같이 나눠 들었던 이어폰에서 흘렀던 곡이 떠올랐다. 1/3의 순수한 감정. 언제나 라디오 오프닝과 클로징에서 함께 하는 노래였다. 그는 입술을 입 안으로 숨겼다. 세나 씨 안돼요, 립 지워져요! 라고 말하는 코디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미안합니다, 라고 사과하자마자 그녀가 달려왔다. 아직 카메라가 돌기 까지 5분 정도가 남았다. 보이는 라디오는 이래서 귀찮다. 게스트가 나올 때 마다 보이는 라디오를 하는 건 좋지만, 갑자기 준비하라고 하면 당황스럽다. 그는 앞당겨진 출근 시간을 생각하며 푹푹 한숨을 쉬었다. 홍월 측 매니저가 하스미에게 커피를 가져다주며 그를 깨웠다. 조금만 참고 힘내 봅시다! 라는 목소리를 들으며 하스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신을 힘들게 차리고 있는 게스트를 바라보며 세나는 혀를 끌끌 찼다. 하스미는 원래대로라면 4시간 후에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세나는 그에게 첫사랑에 대해서 질문했다. 하스미는 대답하기 싫다는 듯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차피 있다가 말하게 될 거라면서 완전 짜증난다는 어투로 말하자, 하스미는 말하더라도 조금 있다가 말할 거라면서 대꾸해왔다.
하스미가 정신을 차리게 두고, 세나는 제 첫사랑의 ‘공개 범위’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 츠카사에게 말했던 건 말할 수 없다. 괜히 이상한 소문이나 루머가 퍼지는 건 사양이었다. 그는 ‘반절 식빵’에 대해 떠올렸다. 사랑에 빠졌던 순간은 그 때였다. 블루베리 식빵과 치즈 식빵. 1/2개씩 팔던 걸 동시에 먹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그 때 제 연인은 반절의 반절씩을 가져가면 오케이지? 하고 말했다.
세나는 참 손이 많이 간다니까! 라고 말하면서 웃던 싱그러운 미소. 여전히 그 조각을 사랑하고 있었다. 한 여름의 햇살처럼 쨍하게 내리던 그 모든 모습을 천천히 반추하다가, 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 할 시간이었다. 삼! 이! 일! 들어갑니다! 라고 외치는 막내 작가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샴셰이드의 ‘삼분의 일의 순수한 감정’ 반주가 흘렀다. 첫머리의 베이스 소리만 들어도 설렐 때가 있었다. ‘그 애’와 주구장창 들었던 곡이었다. 반절 식빵을 사러가기 전, 여름의 빈 교실에서도 이 노래와 함께 했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이런 사랑의 울림에 대해서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부담스럽다고 느끼기 전에, 한 걸음 다가와 주면 좋겠다는 기원을 담으면서 세나는 질리도록 말해왔던 오프닝 멘트를 입에 담았다. 앞에 있던 하스미는 마이크가 켜지기 전, 제 볼을 두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부스 안에 들어있는 카메라가 그의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안녕, 밤입니다. 새로운 날의 시작,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날이 바뀌는 이 순간에도 마음에 담은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분이 계시겠죠, 세나의 목소리는 잔잔하게 부스를 울렸다. 그는 대본을 천천히 읽었다. 처음이기에 더 지독하고 순수한 사랑에 대해 제 입으로 말하며, 세나는 그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늘 따라 더 사랑이 깊게 울렸다. 맛없는 밀푀유 나베를 앞에 두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목소리에 다카포를 하염없이 그려대고 싶었다.
오르골 소리가 냄비에서 타닥이는 채소처럼 번졌다. 제 사랑은 이미 다시 차오를 시간이 지나, 냄비 바닥에 눌어붙고 있는 우동 면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익숙함이란 무섭다. 잠시 딴 생각을 해도 버릇처럼 멘트를 내뱉게 된다. 그는 하스미를 소개하라는 문구가 적힌 스케치북을 흔들고 있는 막내 작가를 힐끔 바라 보았다. 홍월의 리더 하스미 케이토님을 모셨습니다, 라고 말하며 박수를 치자 맞은편에 있던 하스미가 네, 하스미 케이토입니다, 하고 대답 해 왔다.
자정 그리고 세나이즈입니다-라는 상투적인 오프닝 멘트에, 하스미는 덧붙여, 하스미 케이토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간만에 만난 막역한 사이의 친구처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세나는 그의 안부를 물었고, 하스미가 그의 말에 대답하자, 갑자기 게스트가 편성된 것에 자신도 놀랐다며 말문을 텄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흐르고 이어져, ‘첫사랑’이라는 주제에 닿았다.
하스미 씨의 첫사랑이 궁금하네, 라고 가볍게 묻자 하스미는 첫사랑이라, 하고 고민하는 듯 말했다. 저쪽도 생각하고 생각해서, 공개할 부분에 대해 정해왔을 것이다. 세나는 저에게 ‘첫사랑’이라는 질문이 돌아온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잠시 고민했다. 확실한 것은 첫사랑에서 이어진 지금의 사랑은 그리움이 불맛처럼 진하게 스며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적절한 대답은 아니었다. 세나는 반절 식빵을 말해야 하나를 고민하면서, 하스미를 바라보았다.
‘사랑’에 대한 고민들이 냄비에 서툴게 쏟아버린 육수처럼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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