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설탕 뿌린 토마토와 준 벅의 반짝반짝 이중주

 


 

 

 

3.

설탕 뿌린 토마토와 준 벅의 반짝반짝 이중주

 

 

 

***

 

사람이 타인에게 적응하는 데는 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습관과 생활방식을 관찰하고, 그것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것을 마치는 시간은 14일 정도가 필요하다. 그와 함께 산지도 벌써 이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스오우 츠카사는 세나 이즈미와의 동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는 세나가 해주는 일본식 가정식에 익숙해졌으며, 이제 좋은 미나리와 좋은 시금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사자 씨가 좋아하는 간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 건방진 고양이가 생각하는 집 안의 서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 고양이는 세나를 가장 위로, 자신을 중간으로, 스오우를 가장 아래로 두고 있었다. 더불어 스오우는 왜 그 고양이가 아침에 밥을 달라고 조를 때 마다 명치에 꾹꾹이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자 씨는 그를 완전히 물로 알고 있었다.

둘이서 하는 저녁식사에도 익숙해졌다. 다섯 시에 귀가하면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으며, 여섯 시에 귀가하면 세나는 견과류를 먹고 츠카사만 식사를 했다. 일곱시나 여덟시 이후에 들어오면 세나는 식사를 하는 그의 앞에서 녹차만 홀짝였다. 츠카사가 열 시에 집에 들어온다면 그는 물만 마시곤 했다. 또한 스오우는 세나가 귀찮을 때는 파스타를, 신경을 쓰고 싶을 때에는 여러 반찬을 내놓아야 하는 일본식 정식을 내놓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가출 후 이주 정도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오우 츠카사의 세계에는 그렇다할 변화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부모님과 싸우고 있었으며, 나이츠의 이었다. 드림패스들을 순조롭게 치루며 여러 유닛들을 격파하고 있었다. 연속되는 라이브에도 이제는 지치지 않았다. 라이브 한 번으로 무찌를 수 있는 유닛들과는 달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꽤나 끈질겨서, 그의 투쟁은 장기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따듯한 밥이 나오는 집에서 기거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나가 아니었더라면 가출한 지 삼일 만에 뜻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츠카사는 세나에게 연결 해 준 츠키나가에게 감사의 뜻을 가득 담아, 얼마 남지 않은 용돈으로 과자를 선물했다. 봉지 과자들을 한아름 안겨줬을 때 봤던 츠키나가의 작업실은 여전히 복잡하고, 또 난잡했다. 그는 언제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듯 했다. 작업실에 딸린 방 밖에는 도시락을 포장했던 플라스틱 통들이 널려 있었다.

세나 선배네 집이랑 가까운데, 왜 거기서 얻어먹질 않느냐 물었더니, 츠키나가는 요즘 일이 쌓여서 한 발자국도 나가기 힘들다고 대답했다. 그는 요즘 여동생과 만날 때도 차 안에서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여 말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 이야기를 할 때의 그는, 언제나 쾌활한 츠키나가 레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에, 츠카사는 그에게 건강을 생각하면서 움직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달의 뒷면을 엿본 기분이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그의 집에서 나오기 전, 츠카사는 문득 물었다.


어른은 원래 이렇게 바쁜가요?

아니, 인기 있는 어른이 바쁜 거지.

세나 선배도 쉬고 있다면서 정기적으로 촬영 나가시는 것 같은데, 연예인의 쉬다는 학생의 쉬다와 다른 것 같습니다.

세나 많이 바빠?

라디오 하러 나갈 때 마다 피곤해보이십니다. 애초에 healing할 시간이 적어 보이구요.


제 속단일수도 있지만요, 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니 츠키나가는 세나에게 잘 해주라고 말하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안 그래도 잘 하고 있다는 말에 츠키나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세나가 귀찮지 않게 작업실에도 자주 놀러오라고 권유했다. 집을 좀 치우시면 생각 해 보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도시락의 잔해들을 바라보자, 츠키나가는 그렇다면 평생 놀러 올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하며 쾌활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뒤로 하고 뒤를 돌자, 츠키나가는 간간히 외식을 하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말했다. 츠카사는 집밥은 세나에게, 외식은 츠키나가에게 하면 꼭 이혼가정의 아들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별로 좋은 말은 아니었는지, 그 말을 들은 츠키나가의 표정은 매우 어두워졌다. 츠카사는 그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역시 예술가와 교제하는 건 불편한 일일 것이라 확신했다.

츠키나가 레오나 세나 이즈미나, 감정 변화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가끔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은 별 거 아닌 농담이나 말 한마디에도 쉽게 우울해하곤 했다. 어른이 된 사쿠마나 나루카미도 이런 느낌일까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츠카사는 자신 만은 정상적이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츠키나가의 집을 떠나갔다. 이것이 지난 수요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토요일인 지금, 스오우 츠카사는 배가 고팠다.

점심에 먹었던 편의점 도시락이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에 밥상을 차려주면서 세나는 자신이 오후 두 시 쯤 약속이 있다고 선언했다. 자신은 미리 샵에 들렀다가 가고 싶으며, 그런고로 점심은 혼자 먹어야 한다는 말에 스오우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레는 만들어서 냄비에 담아 두었으니 점심에 데워 먹어도 되며, 간단한 밑반찬들은 냉장고에 있으니 꺼내 먹으라는 말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세나가 나가고 끼니때가 되니 손 하나 까닥하기 싫었다. 카레를 데우자니 냄비 바닥이 신경이 쓰였고, 찬을 꺼내자니 뭘 어떻게 꺼내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오백엔짜리 동전 하나를 들고 편의점으로 갔다. 연어가 올려져 있는 덮밥 도시락 하나를 계산했다. ‘적당히’ ‘키치한 맛이었다.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연어 덮밥은 조금 비렸다.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다 해치웠다. 평소 먹던 것과 양은 비슷하지만 어째 포만감이 적었다. 배를 꺼트리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팠다.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었지만 허기는 가시질 않았다.

사자 씨를 품에 안고 텔레비전을 봤다. 그는 채널을 유랑하다, 세나 이즈미가 나오는 프로그램에 멈추었다. ‘수요일에 찍는다던 맛집 기행 프로그램이었다. 재방송이었다. 츠카사는 세나가 말해주던 본방 시간을 생각하면서 사자 씨의 귀 뒤를 긁었다. 세나의 파트너는 전 유성 레드 모리사와 치아키였다. 그들은 양꼬치에 얽힌 추억을 말하더니, 느긋하게 고즈넉한 분위기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숯불 위에 설치된 그릴에서 양꼬치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는 칭타오를 들고 건배했다. 세나 씨도 저도 술 세니까, 이 정도는 마셔도 괜찮습니다! 하고 치아키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은 양꼬치 스무 개씩을 먹어야 본전이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츠카사는 빼지 않고 먹는 세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어쩐지 수요일마다 거실에 있는 런닝머신을 지치지 않고 뛰며, 먹은 걸 모두 게워내고 싶어 하더라. 그는 사자 씨의 발을 조물거리며 화면에 집중했다.

한참 그릴 위에서 돌아가는 양꼬치와, 꿔바로우에 집중하고 있자니,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비밀번호를 신경질적으로 입력하는 것을 보니, 이는 세나였다.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세나의 연인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츠카사는 사자 씨를 품에 안고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이놈의 뚱고양이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라고 묻자 세나는 어, 라고 대답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오늘 약속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츠카사는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물었다.


기분 완-- 별로야. 짜증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그는 아무 일 없다고 대답하면서도 샵에서 세팅한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완벽했던 세나 이즈미는 서서히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는 츠카사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카사 군한테 화풀이하기 싫으니까 조금만 조용히 있자? 세나는 조용히 권유했다. 츠카사가 거실 텔레비전의 전원을 끄고 오자, 그는 겨우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도담거리며 착한 아이네, 하고 칭찬했다.

세나는 그 이후로 한 시간 내내 머랭을 손으로 치더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빵 반죽을 치댔다. 그러면서도 우울한지, 머랭 쿠키를 두 판을 굽고, 빵 반죽 여러 개를 휴지시켰다. 스테인레스 볼에 금속 거품기가 부딪히는 소리는 차갑고 아찔했다. 스오우는 그 어색한 소리를 들으며 그저 속도 모른 채 배를 발라당 까뒤집고 놀아 달라고 조르는 사자 씨에게 낚싯대를 흔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만들어 둔 머랭 쿠키를 츠카사 앞에 내려두고, 믹서기로 갈아 만든 딸기 주스를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사자 씨를 안고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나올 때 까지 부르지 말라는 목소리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조금만 건들면 부서지는 페스츄리 같았다. 그가 집 안에 떨어트린 부정적인 감정 조각들을 차마 주울 수도 없어, 츠카사는 그저 안방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건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구석처럼 있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간 세나에게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차라리 저녁을 나가서 먹고 올까 싶었지만, 리츠는 여전히 드라마 촬영 현장에 대기 중이었고, 나루카미는 그리스를 거쳐 프랑스에 있었다. 언제나 끼니를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운다던 츠키나가는 별일로 점심부터 약속이 있다고 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인 듯, 오늘은 츠키나가와 세나 모두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게다가 츠키나가 또한 꽤나, 곤란한 식사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츠카사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츠키나가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츠카사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있었다. 정신이 온통 다른 곳으로 쏠려있는 듯 했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인스피레이션이 끓어 넘친다더니, 우주가 저를 부르고 있다더니, 빈 부분을 망상으로 채우게 해달라는 부탁 또한 하지 않았다. 그는 츠키나가 루카 앞의 츠키나가 레오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 갭이 어색해 소름이 끼친다고 중얼거리자, 츠키나가는 문득


살았다, 고마워 스오. 니 이야길 하면 되겠네! 고마워, 정말 좋아해!’


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츠카사는 맥락도, 상황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오늘 츠키나가가 곤란한상황에 있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제 전화를 핑계로 어색한 자리를 잠시 빠져나와 숨통을 틔었던 걸까 싶어서 안쓰럽기만 했다. 전화는 곧 끊어졌다. 망상으로 채워가는 빈 공간은 나름대로 타당하게 보였다.

세나는 여전히 방 안에 있었다. 저녁 식사에 대해 고민하면서 츠카사는 핸드폰에 쌓인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그는 컵라면을 먹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세나의 집 찬장에 쌓여있는 걸 몇 개 정도 봤던 것 같았다. 세나의 집에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지만, 그게 연인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긴 했다. 츠카사는 혼자 밥 먹는 법을 스마트폰에 쳐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서걱서걱한 기분이었다. 그는 하릴없이 핸드폰을 뒤적였다. 그는 못 보고 지나친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열어보기 시작했다. 츠키나가로부터 라인이 와 있었다. 열어서 확인하니,


세나 잘 있어?


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와 있었다. 지금 장난 아니에요, 라고 대답할까 아니면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츠카사는 핸드폰 화면을 잠갔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나의 상태는 정말로 심각해 보였다. 언제나 이성적인 세나 이즈미는 조각난 지 오래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방에 박혀 있는 건 처음이었다. 때문에, 스오우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한 말을 해서 츠키나가의 마음을 흐트러트리고 싶지 않기도 했다.

친한 친구와 자신이 동시에 깨진느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답답할 것이다. 츠키나가는 위로가 필요할 것이고, 세나는 그 위로에 적당한 상대가 아닐 것 같았다. 그렇기에 츠카사는 그 메시지에 답장하는 것을 잊은 척 하기로 했다. 그는 핸드폰을 잠갔다. 여전히 세나는 방 안에 들어가 있었다. 모든 물건이 어질러진, 혼란스러운 우주 안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간간히 울리는 고양이 소리와 망상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세나는 츠카사에게 말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에 비해서 츠카사가 알고 싶어 하는 게 많을 지도 모른다. 이런 밤에는 홀로 답답해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무력하지만 별 수 없었다. 세나 이즈미의 사이클에 스오우 츠카사가 모두 들어오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다리를 쭉 펴고, 소파에 누웠다. 멀지만 가까웠고, 가깝지만 멀었다. 배가 고팠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린 문 틈에서 사자 씨가 가장 먼저 튀어 나왔다. 그 고양이는 매우 뚱한 표정을 짓더니, 꼬리로 바닥을 팡팡 내리쳤다. 그는 츠카사의 무릎 위로 올라가, 또아리를 말고 몸을 웅크렸다. 저 돼지 고양이는 자기 밥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 줄 알고? 라고 투덜거리는 세나의 목소리는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는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를 음음, 하고 가다듬었다.


배고파?”


세나는 눈가를 비비며 물었다. 츠카사는 그의 벌개진 눈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해다. 대신 그는 연어 구이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세나는 그 대답이 꽤나 흡족한 듯, 천천히 부엌 쪽으로 다가갔다. 아직 그를 울린 일에 대해서는 물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 건 그 타이밍을 잘 잴 수 있다는 뜻이다. 츠카사는 천천히 기다렸다. 사자 씨는 츠카사의 허벅지 위에서 기지개를 폈다.

고양이 밥 좀 줘, 라는 말에 츠카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나는 쌀을 씻었다. 그는 쌀 씻는 소리를 들으면서 고양이 밥을 꺼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밥그릇에 사료를 쏟으니, 도도하게 소파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한 달음에 달려와 사료 그릇에 입을 댔다. 까드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츠카사는 세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앞치마도 하지 않은 채 쌀을 벅벅 씻고 있는 그는, 한 뼘 만큼 외로워 보였다. 세나는 밥솥에 밥을 앉히고,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살피기 시작했다. 밑반찬부터 다 만들 거라서 시간 걸릴 거야, 세나는 그렇게 통보했고, 츠카사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세나의 등은 말랐고, 도마 위에서 들리는 칼소리는 규칙적이었다. 그는 당근을 썰었고, 미리 채 썰어져 있는 곤약을 찬물에 두어 번 씻었다. 그는 냉장고 안에서 불린 콩과 톳을 꺼냈다. 츠카사는 식탁에 앉아, 그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세나는 요리할 때 꼭 회색처럼 된다. 무언가를 갈구하듯 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엔 명도 밖에 가지질 못한다. 오늘 점심 약속 괜찮았어요? 츠카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톳을 물에 씻던 세나는 천천히 수도를 잠갔다. 물소리가 쪼르르 들리다가 이내 그쳤고, 그는 뒤를 돌아서 츠카사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가 내뱉는 그냥, 괜찮았어- 라는 말은 완전 짜증나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톳을 다 씻을 때 까지 세나는 말 한마디 하질 않았다. 그는 팬을 꺼내 참기름을 두르고, 당근을 넣었다. 당근을 달달달 볶다가, 톳과 곤약을 넣고 다시 볶기 시작했다.

물에 불려 삶은 콩을 넣을 때 쯤, 세나는 입을 열었다. 오늘 그 사람을 만나고 왔어, 라고. 츠카사는 그가 말하는 그 사람이 애인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라고 묻고 싶었으나 입을 꼭 다물었다. 시야 끝에 걸리는 곳에서 사자 씨는 기지개를 폈다. 세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달궈진 팬에 물이 닿아 치지직 거리는 소리를 냈다.


고등어랑 연어 중에 뭐가 좋아?”

연어요.”

그래.”


세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는 한동안 조리대를 두 손으로 잡고, 조리대를 보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카레를 할 걸 그랬나 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는 목소리가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게 힘이 들어, 츠카사는 그의 부엌을 살폈다. 이주 동안 계속 살펴왔던 풍경이었고, 눈에 익어가는 모습이었다. 밖에 나와 있는 그릇들은 모두 두 벌이었다. 그는 파란색으로 무늬가 들어간 접시들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찬장 너머로 보이는 찻잔도 두 개, 물컵도 두 개였다. 그의 집은 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우주였다. 츠카사는 세나의 취향이 진하게 들어가 있는 부엌 또한 회색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연어가 구워졌다. 연어를 먹은 다음에는 차갑게 식힌 토마토를 먹는 게 세나 이즈미의 관습이었음으로, 오늘 후식은 설탕을 자작하게 뿌린 토마토일 것이었다. 츠카사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사람이 말하지 않는 빈 공간을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채웠다. 사자 씨는 집 안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녔다. 꼬리가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렸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 하듯 조잘거렸다. 주황빛에 가까운 노란 털들은 위풍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조용히 해, 라고 말하는 세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행동하는 고양이는 얄밉기만 했다.


 

그릇들은 어색하게 달그락거렸다. 세나는 두 명 분의 식사를 두 개의 그릇에 담았다. 그릇들은 짝을 이루고 있었다. 완벽하게 같은 그릇은 아니었다. 색이 같고 무늬가 다르거나, 무늬가 같고 색이 다르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두 그릇은 세트라는 이름으로 묶이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을 위해 준비 된 세계, 츠카사는 저가 그 공간에 버릇없이 발을 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하여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인생의 문제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해결하고 싶으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는 일단 미뤄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츠카사는 젓가락을 들었다. 잘먹겠습니다, 라고 인사하니 세나 대신 사자 씨가 야옹하고 대답했다. 세나는 턱짓을 하더니 젓가락을 들었다. 알맞게 구워진 연어에 먼저 손을 대고, 밥을 먹었다. 간이 삼삼하게 들어 있었다. 곤약에서는 간장 맛이 났다. 야채들을 담뿍 넣어 끓인 왜된장국이 조금 짜서 밸런스를 맞추고 있었다.

그는 연근조림을 입에 넣었다. 아직 따듯했다. 세나는 오늘 모든 반찬을 새로 만들었다. 도마에 칼이 닿는 소리를 들으면서, 각자의 맛을 가지고 있던 야채들이 미소 된장 아래에서 하나로 묶이는 것을 보면서, 연근에 올리고당과 간장이 꾸덕꾸덕하게 엮이는 걸 바라보면서, 톳과 당근, 삶은 콩 따위의 재료들을 볶아내면서 무얼 털어내고 싶었는지 츠카사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와 그녀 사이에 쌓인 서사들을 알고 싶었으나 알고 싶지 않았다.

배고픈 위에 밥이 쌓여 속이 풀리기 시작했다. 밥 다 먹은 다음에는 차갑게 해서 설탕을 뿌린 토마토인가요? 라고 질문하니, 세나는 놀란 얼굴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젓가락은 약간의 어색함을 담고 움직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편한 관계였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침전할 것만 같았다. 부식될 것 같은 부엌 속은 스노우볼 안의 세계 같았다. 한 번 흔들리면 모든 감정들이 피어올라, 깨진 유리처럼 반짝일지도 모른다. 츠카사는 젓가락으로 밥알을 부쉈다.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타박이 돌아왔다.


왜 다 두 벌이에요?”

다시 넣어두기 귀찮아서.”


혼자면 외롭잖아. 세나는 그렇게 말하며 톳과 곤약을 한 번에 집어 입에 넣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곤약들은 더 하고 싶은 말과 함께 잘게 부서지고 있을 것이었다. 츠카사는 여분의 그릇이 더 있는 것처럼 굴고 있는 세나 이즈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츠카사는 괜히 큰 연근에 가려져 있는 작은 연근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혼자면 외로워.”

세나는 의연하게 말했다. 그는 그릇도 외로움을 느낄 거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가 처졌다. 아까까지 잘 맞던 연근조림의 간이 쓰게 느껴졌다. 그는 한참, 밥을 깨작였다. 오늘 걔를 만났는데, 나 없이도 잘 지내는 것 같긴 하고, 지 이야기나 우리 이야길 좀 하고 싶었는데, 공통으로 알고 있는 애 이야기만 하더라. 꼭 이혼 조정기간 양육권 상담하는 부부 같았어. 세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저녁식사 시간에 어울리는 간이었다. 담담하기에 계속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짜거나 맵지 않았다. 세나는 울지 않았다. 설탕을 뿌리지 않은 미적지근한 토마토 같은 이야기였다. 츠카사는 무조건 상대가 잘못 한 거라고 첨언했다. 그 말이 설탕이라도 됐는지, 세나는 물론이지, 하고 대답하며 웃었다. 웃는 모습이 가장 슬퍼 보인다는 것은 언제나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런데도 좋아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세나는 그렇게 말하며 왜된장국에 들어 있는 양배추를 건져 먹었다.

근데 이제 너무 지쳤어.”

지쳤습니까?”

다음에는 이제 헤어지자고 할 거야.”


미련은 남았지만 어떡하겠어. 그쪽이 더 이상 못 믿겠다는데. 세나는 그렇게 말하며 젓가락을 세게 쥐었다가, 이내 가볍게 쥐었다. 이렇게 져주는 연애 하는 건 처음인데, 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농담마저 묻어 있었다. 그의 말은 싸구려 고기 맛을 조미료로 감춰두는 조잡한 치킨텐더 같이 들렸다.

이렇게 져 주는 연애 하는 건 흔치 않은데. 세나는 미련이 남은 듯,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듯 밥을 집어 입에 넣었다. 말과 함께 흰 쌀알이 뭉쳐져, 그의 위 속으로 흐르고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힘내십시오, 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식탁 위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주제넘게 하고 싶은 말들에 목이 메여, 츠카사는 그저 왜된장국을 후루룩, 후루룩 마실 뿐이었다.


카사 군.”

.”

우리 바에 갈래?”


세나는 그렇게 말하며 물로 목을 축였다. 저 미성년자인데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그는 그런 것은 신경 쓸 게 아니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냉동실에 넣어둔 토마토를 다 먹은 다음에 가자는 말에,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끝내주는 칵테일 바를 알고 있다며 웃었다. 식사는 어물쩡거리게 늘어졌고, 그들이 모두 젓가락을 내려놓는 것은 열 시의 일이었다.

주말은 좋네, 세나는 설거지거리를 개수대에 가져다놓으며 말했다. 그는 라디오가 없는 날은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간다면서 웃었다. 간만에 바이크를 태워주겠다고 말하는 그의 어깨는 여전히 내려간 채였다. 독설을 내뱉을 기운도 없어 보여, 츠카사는 그가 한없이 안타깝기만 했다.

두 사람 몫의 그릇을 씻는 소리를 들으며, 츠카사는 냉동실에 넣어 차갑게 만든 토마토에 설탕 시럽을 뿌려 먹었다. 여러 알갱이들이 폭싹 졸아서 만들어졌을 시럽에는, 설탕 알알들이 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이 중에는 쓴 맛이나 신 맛을 노래하고 싶었던 설탕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연들을 모두 뒤로 감추고 담담한 말만을 하는 세나 이즈미 같은 설탕시럽이었다.

단 것을 극도로 자제하는 세나의 집에는 의외로 달달한 것들이 많았다. 츠카사는 그 점에 대해서 질문했고, 세나는 단 게 두뇌회전에 좋아, 라고 대답했다. 설거지를 마친 그는 쇼파에 앉아 제 몫의 토마토를 먹었다. 그는 설탕 시럽을 토마토 위에 세 번이나 뿌렸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단 토마토를 입에 밀어 넣으면서, 세나 이즈미는 제 발 끝만을 바라보았다. 짧게 깎은 발톱이 둥글었다.

츠카사는 그의 사랑이 설탕시럽을 뿌린 토마토처럼 물렁하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기다리고 기다리고 녹아가고, 짓물러져 가는 사랑. 사랑이 달면 달수록 쉽게 미어지는 마음. 세나 이즈미 답다면 세나 이즈미 다운 사랑이었지만, 그는 그가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어려운 말이었고, 그는 그 기원을 제 속에 담아 토마토와 함께 녹였다.

달았다. 대책 없이 달달한 밤이었다.

 


 

 

***

 

바에 갈까? 라고 물었던 말이 사실이었는지 토마토를 먹고 배가 꺼질 즈음에 세나는 오토바이 키를 들었다. 세나는 헬멧을 츠카사에게 건넸다. 기묘하게도, 헬맷 또한 두 개였다. 하얀색과 남색이었다. 그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고 앉자, 세나는 별 무리 없이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학생 때 타던 것보다 배기량이 늘었는지,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삼십 분 가량을 달려, 그들은 골목길에 있는 바에 도착했다. 세나는 가게 주차장 한가운데에 오토바이를 주차했다. 언제나 인성이 한결같다는 칭찬에 세나는 완전 짜증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평소의 세나 이즈미였다. 그가 헬멧을 정리하는 동안, 츠카사는 가게 밖에서 보이는 수조들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수면 아래에서 열대어들이 색색의 꼬리를 자랑하며 유영하고 있었다.

세나는 바 안으로 들어갔다. 츠카사는 그를 놓칠새라 뛰어 들어갔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네? 라는 넉살좋은 목소리가 번져왔다. 츠카사는 세나에게 말을 건 목소리 쪽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두 학년 위의 선배였다. 햇볕을 받은 밀 같은 머리색이 바의 주황색 백열등 아래에서 은은하게 반짝였다. 연예계에 진출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라고 묻자, 카오루는 취향이 아니었다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술도 안 마셨는데 독한 이야길 막 하네.”

우리 애가 좀 그래.”

세나 군네 애야?”

친구네 아들에게 관심도 없고, 인성이 별로네?”

세나 군에게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


실없는 농담이 이어졌다. 그들의 대화는 탁구공이 튀기는 것처럼 가벼웠다. 세나는 바의 구석자리에 앉았다. 츠카사가 세나의 옆에 앉자, 카오루는 그들에게 파티션을 설치 해 주었다. 파티션의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 하는 츠카사에게, 카오루는 연예인이 술 먹는 거 별로 안 좋은 그림이라서, 라고 대답했다. 세나는 답답해도 참으라고 말하며 느리게 하품했다.

우리집 꼬맹이한테는 무알콜 적당한 거 주고, 나는 준벅으로 시작해서 항상 마시던 거. 세나는 간단하게 주문을 마쳤다. 카오루는 익숙하다는 듯 고블렛 글라스를 들었다. 그가 칵테일을 제조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는 츠카사에게 세나는 술은 마셔봤냐고 물었다. 츠카사는 신년에 몇 잔, 식사 때의 와인 정도가 전부라고 대답했다. 아직 애기네, 라고 말하면서 카오루는 푸스스 웃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모던 바에서는 양파의 마지막 1mm가 흘러 나왔다. 이거 세나 군이 쓴 가사랬던가? 라고 묻는 카오루의 목소리는 상냥했다. 세나는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고 말하면서 하품했다. 이 영화 나도 카나타 군이랑 보러 다녀왔어-부터 시작한 시시껄렁한 대화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잔잔하게 이어졌다.

신데렐라준 벅이 자리에 놓이고도, 그들의 대화는 가볍게, 가볍게만 이어졌다. 세나는 녹색으로 영롱하게 반짝이는 칵테일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입술을 축이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연애 할 때도 이거 주구장창 마시더니, 라고 말하면서 카오루가 안타까움이 섞인 말을 내뱉을 때 까지, 그들의 대화는 민들레 홀씨 같은 느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안 헤어졌어.”

그게 무슨 안 헤어진거냐?”

아니야, 아직도 좋아하는데.”

내가 자기소모적인 연애는 하면 안 된댔지?”

그래서 너는 그렇게 여자만 만나고?”

카나타 군 없어서 안 때린 줄 알아.”


한 마디 한 마디가 심각한 세나와 달리 카오루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가벼웠다. 츠카사는 기본 안주로 나온 프레즐 과자를 집어 먹으며, 그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할 뿐이었다. 바짝 쫄아 있는 그를 보다가 카오루가 웃음을 터뜨렸다. 친하니까 안 싸워, 걱정 마, 라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지금 상황에서라면 콩으로 메주를 만든다고 해도 믿지 못할 것 같았다.

재미 있는 이야기나 하자면서, 카오루는 기지개를 폈다. 이 노래 뭐야? 라고 세나가 질문했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카오루는 노트북을 확인하더니 사랑해, 라고 말할 수 없는 밤 새벽 2라는 노래라고 대답했다. 찌질하네, 라고 말하면서 세나는 칵테일 한 잔을 소주처럼 비웠다. 과격하다니까, 라고 말하면서 카오루는 다음 잔을 준비했다.


연애 초기에는 여기가 완전 얘내 커플 아지트였는데.”

---.”

서로의 눈 색이 담긴 칵테일을 마신다던가.”


나 그래서 준 벅이랑 블루마가리타랑 엄청 만들었잖아. 카오루는 가벼운 농담을 하듯, 츠카사에게 작게 속삭였다. 화를 낼 것 같은 세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뚱한 표정을 하고, 빈 잔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석양을 잔에 양 껏 담은 칵테일이 세나의 앞에 놓여졌다. 알콜 냄새가 옆에서도 진동했다. 세나는 그것 또한 빠르게 비웠다. 주도도, 예의도 없이 술술 넘어가는 술에 츠카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세나는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마시는 술이 칵테일이 아니어도 괜찮았을 만큼, 알콜 냄새가 진동하는 잔들이 비워졌다. 가성비가 나쁜 타입이라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카오루는 심해어 수조의 공기 펌프를 바꿀 수 있게 됐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릴 때 쯤이 되자, 그의 얼굴에는 사과 같은 붉은 빛이 들어 있었다.


, 온 적 있어?”

간간히? 올 때 마다 카나타 군에게 전화를 하는 모양이더라고..”

?”

너 있냐고 물어보려고.”

병신 아냐?”


세나는 잔을 던질 듯 들었다가, 사적 재산이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래서 뭐 마시는 데, 라고 말하자 카오루는 항상 마시던 거, 라고 대답했다. 짜증나, 라고 말하면서 세나는 바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츠카사는 크래커 위에 치즈와 물기를 뺀 캔참치를 올린 카나페를 집어먹었다.

카오루는 세나의 앞에 다시 칵테일을 내려놓았다. 노을 진 듯한 주황색이 예뻤다. 잔 가장자리에 묻어있는 설탕들이 조명을 받아 별처럼 반짝였다. Kiss of fire였던가요? 라고 츠카사가 묻자 카오루는 정답! 하고 대답했다. 그는 상을 주듯, 빈 그릇에 프레즐 과자를 쏟아 주었다. 츠카사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처음 고백했을 때 이거 마셨었는데.”

또 시작이네. 흘려 들어, 세나의 애기 군.”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그래그래 애기쨩 군.”


내가 원래 남자 이름은 잘 기억 못해. 카오루는 작게 웃었다. 세나는 천천히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취한 듯, 표정이 평소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사운드트랙이 한 바퀴를 돌았는지, 스피커에서는 다시 세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벼운 어쿠스틱 기타가 반주하는 음악 소리가 멀기만 했다. 손 안에 움켜쥐었던 사랑에서는 알싸한 향만이 풍기고 있다는 가사를 들으면서, 세나는 설탕이 묻은 잔을 기운 없이 핥았다.

세나는 그 애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서 저에게 고백했다고 말했다. 이름 모를 축제날이었고, 노을이 칵테일처럼 진 강에서는 불꽃놀이를 하는지, 불꽃이 팡팡 터졌다는 말이 이어졌다. 반짝반짝하는 하늘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리와, 하늘의 남색 부분에 닿는 반짝임뿐이었다고 말하면서 세나는 잔을 손 안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그는 그 애가 자신에게 우주를 가져다주겠다고 말했다면서, 그 다음에 곧장 사랑한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그래서 처음 이 칵테일을 봤을 때 그 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면서 말하는 세나의 목소리는 침전할 듯, 아련했다. 마음이 아파, 라고 속삭이는 세나에게 카오루는 그럴 거면 사랑하지 말라고 말했다. 간단명료한 결론이었지만 그것보다 확실한 건 없었다. 츠카사 또한 카오루의 말에 동의하고 싶었다.

세나 이즈미의 사랑은 주는 것을 기반으로 한 사랑이다. 그는 끊잆 없이 기다린다. 사랑을 주면서 받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데 왜 지들이 난리라고 말하면서 다 짜증나니 꺼져버리라고 말했다. 잔에 조명이 들었고, 밤하늘의 별빛처럼 반짝였다. 세나는 그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지, 턱턱 마시던 것을 멈추었다.


우주를 가져다주기로 했어.”

취하셨습니다.”

“‘우주는 세나니까, 별도 따다줄 수 있다고 했지?”


세나는 묻듯 말했다. 그 말에 확인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츠카사는 취한 그의 어깨를 토닥이다가, 돌아가자고 말을 걸었다. 이미 취한 사람에게 말을 걸어봤자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하는 카오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는 이미 이런 모습을 충분히 봐 온 듯 했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을 거라고 말하면서 츠카사에게 물을 건넸다. 그 말을 하는 카오루 또한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술주정은 들어주다 보면 가라앉기 마련이라는 말을 남기고 카오루는 다른 손님에게 건너갔다. 그들이 하는 대화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세나는 여전히 그들의 추억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츠카사가 듣기에는 로맨틱했지만, 말하는 그에게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억들이었다. 세나는 그들은 취하기에는 가성비가 좋지 않은 타입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눈 색으로 시작해서, 눈 색으로 끝나는 오더를 만들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느린 템포의 음악이 퍼졌다. 세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었다. 굳게 닫힌 입술은 노래가 끝나갈 즈음에 열렸다. 이 노래 뭐야! 라고 말하는 세나에게, 카오루는 제목을 확인 해 주었다. 세나는 잘 듣지 못한 듯 뭐? 하고 두어 번을 더 질문했다.


세나 선배가 지금 마시고 있는 칵테일 이름이래요.”

아 그래?”

.”

착하다 착하다, 대답도 다 해주고.”


흐흥, 오늘의 카사 군은 착한 아이네. 세나는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그는 졸음이 몰려오는 지, 바에 기대고 상체를 숙였다. 머리 위에 우주가 필 것 같아, 라고 의미불명의 말을 중얼거리다가, 세나는 문득 옆을을 바라보았다. 그는 전화를 꺼냈다. 그는 어디론가 전활 걸었다. 수신음이 들릴 때의 그는 매우 초조하고 불안해보였다. 츠카사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전화의 뚜- 하는 소리가 끊길 때 마다 그는 화색이 되었다가, 다음 뚜-가 들리면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받지 않는 전화에 실망을 하고 다시 전화를 걸고를 세 번쯤 반복했을 때, 여보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세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이어진 전화가 무슨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있지, 여보세요? 있잖아, 그러니까 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가장 중요한 말을 할 수 없는 듯 했다.

그는 오늘 준 벅을 마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수다스럽고, 급하게 말했다. 요리 순서를 빼먹은 초보 요리사처럼, 그는 저가 하고 싶었고 숨기고 싶었던 말들을 여과 없이 내뱉고, 해야 할 말들을 사이사이에 끼웠다. 잡탕 전골을 요리하는 듯 했다. 그는 여러 가지 말을 쏟아 넣었다. 한 번 쏟아진 말을 주워담을 수 없었기에, 세나의 통화는 자꾸만 길어졌다. 츠카사는 도움을 요청하듯 카오루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놓아두는 게 나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세나의 귀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소리가 없는지, 아니면 상대가 응답하지 않는 지 츠카사는 알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세나 이즈미의 말에는 핵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언갈 말할 수 없다는 듯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소금을 넣지 않아 간이 맞지 않는 맹탕 같았다. 미안해, 전화해서, 그런데, 내가 오늘 준 벅을 마셨어, , 저녁에는 설탕을 뿌린 토마토를 후식으로 먹었어. 세나의 목소리는 낫토처럼 진득하게 얽혔다. 망설임의 맛이었다.

하지만 그 머뭇거림도 잠시, 세나는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이렇게 말했다.


좋아해, 보고 싶어.”


그의 목소리를 마주잡아 오는 대답이 없는 지, 그는 다시 좋아해, 란 말을 속삭였다. 붙잡아 주지 않는 달콤함이 타버린 설탕처럼 검게 물들고 있었다. 전화가 끊겼는지 뚜, , 거리는 소리가 불협화음처럼 울렸다. 세나는 하, 하고 짧게 코웃음을 쳤다. 세나 이즈미인데, 라고 끊어진 전화에 중얼거리다가 그는 몸을 일으키고,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의 삽질에 츠카사가 관여할 수 없었다. 존나 좋아하는데, 라고 말하다가 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칵테일을 비웠고, 세나의 앞에는 준 벅이 다시 놓였다. 머리카락 색을 마셨으니, 눈 색일까, 라고 말하다가, 그는 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츠카사는 이 상황에서 그에게 어떻게 조언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카오루를 바라보았다. 카오루는 세나네 애기쨩 군, 이라고 말하며 손짓했다.

츠카사는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를 가까이 대자 카오루는 네가 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뚱한 얼굴을 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는 정말 아무 것도 없으니 내일 아침에 일어난 세나에게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말해 주라고 조언했다. 그는 그게 가장 쓸모 있을 거라고 말하며 하품했다. 느긋하고, 나른해 보이는 태도였고, 츠카사는 그를 신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일 아침에 세나에 물을 안부에 대해 생각했다.

닿지 않는 멜로디가 공허처럼 울렸다.

 

 

 

***

 

한참의 한탄이 지났다. 흘려보내는 것이 정답인 듯, 그는 꽤나 술에서 깬 듯 보였다. 갈래? 하고 묻는 카오루의 말에, 세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답 대신이었다. 파티션이 치워지고, 그는 선글라스를 꼈다. 콜택시가 도착했다는 카오루의 말이 들리자마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제를 마친 후에 그는 츠카사와 함께 바를 나섰다. 세나의 숨 하나하나에 알코올이 빽빽이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걸음은 휘청이거나 쳐지지 않았다.

그는 택시에 츠카사를 태웠다. 보일러 켜놔,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담담했다. 택시에 주소를 불러주고 나서 세나는 기지개를 폈다. 택시가 출발하기 전 츠카사는 다급하게 선배는요? 하고 물었다. 세나는 기사님과 합의한 가격을 미리 결제했다. 츠카사는 계속 선배는요?’하고 질문했다. 세나는 선글라스를 내렸다. 그는 눈을 마주치더니, 아까까지의 찌질함이 전혀 묻어있지 않은 얼굴로 웃었다.


나 술 마시면 원래 집까지 걸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왜 합니까?”

시끄러워. 카사 군 주제에 말이 많다? 내가 하고 싶다면 하는 거라구.”


그는 발랄하게 말했다. 오늘 약속이 있다고 조잘거리던 때처럼 텐션이 높았다. 그는 손을 흔들었고, 츠카사를 태운 택시는 서서히 출발했다. 아까 그거 세나 이즈미지요? 하고 넉살좋게 말을 붙여오는 택시기사에 츠카사는 닮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그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술 마시면 매번 걸어간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면서 허허 웃었다.

그 웃옴소리를 끝으로 택시 안은 적막으로 물들었다. 간간히 자동차의 깜빡이를 켜고 끄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츠카사는 창을 열어, 이제는 익숙하게 된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까 둘이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올 때에는 짧게만 느껴졌던 거리였다. 하지만 걸어오기에는 꽤나 먼 거리라, 그는 세나가 마냥 걱정됐다.

이 거리를 어떤 생각으로 걸어갈지, 전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고작 두어 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데도, ‘어른인 세나 이즈미의 연애와 세나 이즈미의 생각에 대해서 스오우 츠카사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의 기분이 왜 널을 뛰는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헤어질 것이라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술에 취한 채 사랑한다고 말하는 세나의 목소리를 그의 연인은 어떤 심정으로 듣고 있을 지도 상상이 가질 않았다.

망상으로 채워넣을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망상을 즐겨 하는 타입도 아니었거니와, 그것으로 빈 부분을 메꾸기에는 알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었다. 츠카사는 뒷머리를 긁었다. 택시에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밤공기가 차가웠다. 몸을 움츠리고 집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냉기가 가시지 않았다. 냉랭하고 어두운 방이 그저 무서워, 그는 방 모두에 불과 보일러를 켰다. 방 안에서 가장 따듯한 곳에 들어가고 싶었는지, 세나가 자는 작은 방 앞에 있던 사자 씨가 야옹 거리며 츠카사 쪽으로 다가왔다.

넓은 집일수록 혼자 있을 때의 빈자리가 크다. 츠카사는 안방으로 사자 씨를 몰고 들어갔다. 그는 문을 잠궜다. 방 안에 딸려 있는 샤워부스에서 샤워를 한 후,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을 때도 세나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 한 가운데에서 또아리를 틀 듯 몸을 말고 자고 있는 고양이는 매우 편해 보여서, 츠카사는 제 고민을 사자 씨가 반절 만이라도 덜어가 주기를 바라며 그의 털을 흐트러트렸다.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 소리에 고양이가 놀라, 화들짝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야옹, 그리고 야옹, 하면서 거는 말소리는 꼭 왜 날 놀라게 했느냐는 타박으로 들렸다. 형아 속도 모르고 자꾸 그렇게 울 겁니까? 라고 물으면서 츠카사는 핸드폰을 확인했고, 츠키나가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메시지는 츠카사가 몇 시간 전에 무시했던 문자와 구두점 하나 까지 같았다.

세나 잘 지내? 라는 문자에 츠카사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의 리더는 ?’ 라고 대답했다. 그 왜? 에 대답할 수 있는 건 많았다. 술을 마셔서, 그리고 애인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졌는지 걸어오려나보다는 말을 하려다가 츠카사는 저가 적던 메시지를 다 지웠다. 망상이 점철 된 이야기 보다는 세나가 말한 사실을 알려주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가만가만히 움직였다.


술 마시면 원래 걸어온다고 하십니다.


그 문자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츠키나가도 바쁜가 보다 싶어서 츠카사는 고양이를 안고 침대에 올라왔다. 그 따끈따끈한 것을 무릎에 올리고 한참을 쓰다듬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나가 문을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밤을 물들이는 외로움과 걱정들이 배고픔처럼 간헐적으로 찾아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고, 잠이 온 집안에 내릴 때 까지 문이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빈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