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큰 대접에 담긴 파스타와 마늘빵의 행진곡
2.
큰 대접에 담긴 파스타와 마늘빵의 행진곡
***
그 날, 스오우 츠카사는 악몽을 꿨다.
끊임없이,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 속을 헤매는 꿈이었다. 길을 잡을만한 수단을 모두 잃어버린 채, 그는 어둠 속을 맴돌았다. 중력 또한 제거되었는지 그는 꿈속에서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을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땅인지 몰랐고, 팔을 휘저을수록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쾌한 꿈은 아니었다. 더욱이, 꿈의 ‘중반’부터는 이상하게도 무언가가 배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돌덩이를 먹은 것 마냥 위와 장이 불편했다.
츠카사는 끙끙거리며 뒤척이길 반복하다, 자신의 명치에 가해지는 고통에 눈을 떴다. 악몽에서 깔끔하게 탈출 했으나, 고통에 몸이 웅크려졌다. 콩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암막커튼 사이로 천천히,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그는 낯선 천장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뒤늦게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정신이 멍했다. 그는 천장과, 침대 바닥, 그리고 제 배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솜뭉치를 바라보았다.
“냐아-”
고양이었다. 얼굴과 배는 하앴고, 등과 꼬리는 누르스름했다. 그는 냐냐, 거리면서 무언가 말을 걸더니, 이내 츠카사의 배에 다리를 접고 앉았다. 고양이는 그 자세가 매우 편하다는 듯 굴었다. 꼬리가 살랑살랑, 가볍게 흔들렸다. 츠카사는 모르는 고양이에게 안녕, 하고 인사했다. 고양이는 그를 응시하다가, 이내 늘어지게 하품했다. 튀어나온 송곳니가 귀엽게 느껴졌다. 츠카사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털이 긴 고양이의 귀 뒤를 간질였다. 성격이 온순한지, 아니면 이런 식의 터지가 익숙한지, 그 고양이는 츠카사의 손길을 얌전히 받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방문 밖에서는 오르골 소리가 들렸다. 그 곡조가 「양파의 마지막 1mm」의 곡조가 아니었다면, 그는 그것을 오븐에서 빵이 구워졌다는 신호로 알아들었을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소한 냄새가 고양이가 열어둔 문을 타고 천천히 넘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츠카사는 여전히 고양이의 머리와 턱을 간질이며, 그것이 츠키나가가 말했던 ‘사자 씨’일까 생각했다.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는 무언갈 말하려는 듯, 수다스럽게 야옹거렸다.
어제는 이렇게 수다스럽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애초에 고양이가 있는 줄도 몰랐고, 츠카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양이의 수염을 톡톡 건드렸다. 그건 조금 기분이 나빴는지 고양이는 꼬리를 툭툭 휘둘렀다. 사자 씨가 움직일 때 마다 길고 가느다란 털이 뿜어졌다. 너 굉장히 털이 멋있구나, 츠카사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턱을 다시 간질였다. 사자 씨에게서는 단 과자 향이 났다.
츠카사는 하얀 털 부근에 얼굴을 묻고 킁킁거렸다. 역시 달달한 향이 났다. 그가 알고 있는 세나의 취향과는 먼 향이었다. 세나 선배라면 샴푸도 차가운 향일 줄 알았는데. 츠카사는 늘어지게 하품했다. 조금만 더 늦장을 부리려 눕자, 고양이는 다시 그의 명치를 때렸다. 명백한 고의였다. 할 수 없이 그는 일어나야만 했다. 고양이로 인해 깨는 경험은 처음인지라, 그는 자신이 가출하여 ‘다른 곳’에 와 있다는 것을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어색한 천장을 바라보고, 우주가 그려져 있는 암막커튼을 바라보았다.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고, 두 뺨을 손바닥으로 아프지 않게 두드렸다. 스오우 츠카사는 어제 가출청소년이 되었으며, 세나 이즈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고양이의 어깨를 끌어당겨, 촉촉한 코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고양이는 그게 불만인 듯, 꼬리로 툭툭 그의 다리를 팡팡 두드리다가, 몸을 뒤틀어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츠카사는 자신의 잠옷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후드 티와, 검은색 체육복 바지에 온통 고양이의 희고, 누리끼리한 털이 묻어 있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는 테이프나, 털 제거용 돌돌이가 있기 마련인데, 어째 보이질 않았다. 그는 북극성이 그려진 남색 누비이불을 발 끝으로 밀어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벽 너머에서는 오르골 소리가 들리고, 고양이는 야옹, 야옹, 하고 울었다. 세나는 무언가를 만드는지 도마에 칼이 닿는 소리가 통통통통 번져왔다.
그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고양이털을 떼어내고 싶은데, 털을 뗄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방은 두서없게 어지러웠다. 찬찬히 파악한다면 물건이 놓인 규칙을 파악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안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졌다. 츠카사는 자신이 이 방에서 자게 된다면 꼭, 청소와 정리부터 할 것이라 결심했다. 그는 여기저기 놓여있는 ‘쓸데없이 예쁜 소품’들과, 악보, 오선지, 쇼팽의 소곡집, 비발디의 음반 등을 훑어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자 씨가 다시, ‘야옹’ 하고 울었다.
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7시 04분. 일어나기 적당한 시간이었다. 커튼을 걷으니 방안 가득 햇살이 들어왔다. 채광이 끝내주는 방이었다. 여기에 있는 동안 못 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는 다시 하품을 했다.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꿨던 악몽이 아직도 그의 두 어깨에 묻어 있었다. 츠카사는 제 발에 차이는 음반 하나를 들어올렸다. ‘May-lily’의 첫 앨범이었다. 언더 시절 음반인 듯 했다.
방주인은 음악을 좋아하는 듯 했다. 여기저기 정리하지 못한 앨범이 널려 있었다. 책장은 CD케이스를 꽂아놓는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꽂지 못한 듯 했다. 또한 방 안에는 구식 카세트 라디오가 두 대나 놓여 있었다. 한 놈은 라디오를 듣는 데 사용하고 있는지, 안테나가 정리되지 않은 채 하늘로 뻗어 있었다. 우주로 통하는 주파수를 잡고 있는 모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츠카사는 뒤를 돌았다. 어제 저가 옷을 걸어뒀던 옷장을 열자, 캐주얼한 옷들이 널려 있었다. 남색 맨투맨, 후드 티셔츠들은 ‘난 세나 이즈미의 옷이 아니에요’를 외치고 있었다. 그는 색별로 정리된 스냅백들을 보다 옷장을 닫았다.
세나 이즈미는 그와 완전히 반대 지점에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듯 했다. 여자가 입기에는 큰 옷들, 원피스나 치마 한 장 없는 옷장. 동거를 할 정도로 사랑하면서도 세나 이즈미의 흔적이 없이, 물들지 않은 ‘그녀’. 츠카사는 세나가 ‘그녀’와 성격이 맞지 않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서로 양 극단에 있는 사람은 사랑하기 어렵다. 자신의 사랑을 이유로 양보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 쪽만 양보하다 보면 깨지기 쉽다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츠카사는 지구본 모형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핸드폰 충전기의 케이블을 뺐다. 어쩐지 어제 충전기가 짧은 기분이더니. 그는 뾰로통한 얼굴을 했다.
‘그녀’의 방에서는 무거운 향이 났다. 먼지 냄새는 아니었다. 큼큼한 향도 아니었다. 그냥, 묵직한 향. 츠카사는 세나 이즈미의 ‘연인’은 구심점이 확실한 타입일 것이라 확신했다. 세나가 시간을 들여 바꾸려고 해도 절대로 바뀌지 않고, 오히려 그를 포기하게 만들 정도의 고집 있는 사람. 멋있는 사람이네, 츠카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기지개를 폈다. 이왕 사랑하고 있다면 잘 됐으면 좋겠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니, 뭉친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세나가 ‘나이츠’ 같은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작게 웃었다.
그는 방 안이 츠키나가의 작업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질서가 있는 듯 하면서도 혼재한 물건들, 널린 악보와, 확고한 취향이 엿보이는 물건들. 츠카사는 세나의 연인이 정말로 궁금해졌다. 타이밍을 봐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벽을 넘어 들리던 오르골 소리는 어느샌가 끊겨 있었다. 야옹- 하고 사자 씨가 느리게 울었다. 왜 이제야 나오느냐는 타박을 하는 것 같았다.
세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민트색 앞치마를 매고서 조리대 앞에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세나 선배, 오르골 소리가 좋더라구요, 라고 말하자 세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단지 턱짓을 하며 그에게 식탁에 앉으라고 지시할 뿐이었다. 세나의 미간은 좁혀져 있었다. 츠카사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심기를 거슬렀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무언가를 불에 굽는 소리가 났다. 츠카사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카사 군 학교 가는 길은 알아?”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유 부려도 괜찮아?”
세나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는 계란물을 푹 입혀, 폭신폭신한 느낌이 드는, 바게트로 만든 프렌치토스트와, 갓 구운 스콘을 벚꽃이 그려진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츠카사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세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식탁은 꽤나 높았다. 유사시에 조리대로 사용하려는 목적인 듯 했다. 츠카사는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딱였다. 키 좀 컸나? 세나가 묻자, 그는 2학년 말 보다 5cm 정도가 컸다고 대답했다.
기특하네. 세나는 그렇게 말하고, 샐러드와 함께 구운 베이컨을 내어 놓았다. 버터와 딸기 잼을 예쁜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리고, 세나는 계란물이 담겨 있던 보울과 식기를 씻기 시작했다. 그가 내는 물소리는 꼭 ‘쓸데없는 걸 물어보지 말라’는 말 같이 들렸다. 츠카사는 괜히 바게뜨로 만든 프렌치토스트를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겉면에 설탕이 발려 있었고, 안쪽은 촉촉했다. 제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습니다, 라고 말하니, 세나는 뒤를 잠깐 돌았다가 다시 개수대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당연하지, 세나 이즈미가 만들었으니까.”
하고 대답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세나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밥그릇을 꺼내, 사료를 부었다. 고양이 사료 특유의 냄새가 조금 풍겼고, 사자 씨는 황제의 행군처럼 당당하게 다가와 츠카사의 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사료를 까드득 부수는 소리와, 제가 밥을 먹는 소리가 화음을 가진다는 건 꽤나 이상한 기분이었다.
부엌 뒷정리를 대충 마친 다음, 세나는 도시락 통에 미리 만들어 둔 반찬들을 담기 시작했다. 못 먹는 거 있어? 라고 물어보자, 츠카사는 딱히 없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깔끔한 오일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신선하고 상큼하면서도 야채 특유의 결이 잘 살아 있었다. 계속 손이 가는 맛이었다. 꽤나 요리를 잘하십니다, 라고 말하자, 세나는 그것도 세나 이즈미니까. 라고 대답했다. 그는 꽤나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조리대에는 물기가 묻어있었음으로, 그는 츠카사가 있는 식탁에 도시락 통을 가져왔다. 윤기 나는 흰 쌀밥과, 햇감자가 든 아스파라거스 샐러드를 담았다. 그 다음 우메보시와 가쓰오부시를 넣은 양배추말이를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넣었다. 또한 꿀과 미림을 넣은 죽순조림을 가지런히 담았다. 죽순조림의 맛이 감이 안 온다는 얼굴을 하고 있자, 표정을 살피던 세나는 그의 입에 조림을 넣었다. 꿀과 두반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손이 가는 맛입니다, 라고 하니 세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는 빈 칸에 완두와 참치 레몬무침을 넣었다. 완두의 녹색에 눈이 싱그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봄처럼 상큼한 식단들이었다. 카사 군, 완두는 껍질째로 먹어, 라고 말하는 그에게 츠카사는 네, 하고 대답했다.
“몇 시에 일어나셨습니까?”
“……다섯시?”
세나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츠카사의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었다. 그는 직접 만든 듯, 레몬 모양이 그닥 가지런하지는 않은 레몬청에 탄산수를 넣어 섞은 다음, 츠카사의 쪽으로 밀어 두었다. 못 먹여서 한이 생긴 사람마냥, 그는 계속 무언가를 먹이고 싶어 했다. 밥 먹고 씻은 다음에, 오늘은 차로 대려다 줄게. 내일 부터는 버스 타고 가. 세나는 작게 하품했다. 많이 피곤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졸음 운전은 하지 않겠다면서 세나는 커피 한 잔을 만들었다. 그는 작은 유리병에 들어있는 커피를 유리컵에 담더니, 찬물로 농도를 조절했다. 진한 향이 났다. 너도 줘? 라고 말하자 츠카사는 아침에는 홍차 파라고 대답했다. 세나는 자신이 츠카사의 앞에 밀어두었던 레몬에이드를 보다가, 도련님이 마시는 것 같은 홍차는 없는데, 하고 하품했다. 츠카사는 얹혀 살 처지에 이것저것 따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다면서, 세나 선배가 만들어주는 모든 게 서민적인 맛이라 좋다고 대답했다. 세나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오늘 들어올 생각 하지 마. 쫓아낼 거야.”
“도시락은 돌려주러 들어와야 하지 않습니까.”
“필요 없어. 너 가져. 들어오지 마.”
세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도시락에 뚜껑을 덮어, 두꺼운 밴드로 고정시켰다. 그는 작은 가방에 도시락을 담아 츠카사에게 건넸다. 그는 츠카사가 매고 다니는 가방의 크기를 가늠하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가방 안에 안 들어가려나, 라고 말하자 츠카사는 어차피 가출을 위해서 가방을 학교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 자세한 사연은 저녁밥을 먹으면서 말해 드리겠다고 말하니, 세나는 그의 속이 뻔히 보인다면서 혀를 쯧쯧 찼다.
어느새 밥을 다 먹은 고양이가 부엌 너머로 쫑쫑쫑쫑 걸어가는 게 보였다. 사자 씨, 라고 세나는 엄한 목소리를 냈다. 고양이는 뒤를 돌더니, 저가 져준 다는 듯, 다시 유턴하여 츠카사의 쪽을 거쳐 쇼파 쪽으로 다가가 누웠다. 고양이 주제에 부엌으로 들어가면 안 돼. 세나는 ‘사자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양이는 대답 대신, 꼬리로 소파를 팡팡 때렸다.
츠카사는 그의 부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쓰기에 쌍문형 냉장고 두 대와, 그냥 냉장고 한 대는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의 집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부엌 같았다. 세나는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체중과 식단에 가장 신경 쓰는 타입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이런 집에 산다는 게 의외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고 있는 것 또한 어색했다. 역시 연인을 위해 요리를 배운 걸까. 츠카사는 바게트를 우물거렸다.
“맛있어?”
한참동안 츠카사를 바라보던 세나가 물었다. 츠카사는 입에 있던 것들을 모두 삼키고, 입을 닦은 다음에서야 네, 하고 대답했다. 무언가 구체적으로 더 말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세나는, 그거면 됐어, 라며 말을 끊었다. 한동안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커피를 담은 잔이 식탁에 닿는 소리만이 들렸다. 넓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볕이 따듯했다. ‘봄’이었다. 무언가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츠카사는 의외로 냉장고가 넓네요 라고 말했다.
“혼자 있더라도 퀄리티 있고 예쁘고, 맛있게 먹는 게 좋잖아.”
“혼자라뇨? 동거하시지 않습니까.”
츠카사의 말에 세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한숨을 푹푹 내 쉰 다음에야 시끄러워, 완전 짜증나니까 하고 대답했다. 이런 사람이 미디어에서는 어쩌서 상냥하고 사랑스러우며, 냉랭한 구석이 있지만 웃는 모습이 예쁜- 따위의 수식어를 달고 소비되는지 츠카사는 알 수 없었다. 여유 부릴 시간 없을 거니까 바지런히 먹어. 세나는 그에게 샐러드가 든 그릇을 밀어 주었다. 라코타 치즈가 간간히 섞여 있는 걸 이제야 발견한 츠카사는, 한 입을 먹자마자 반짝이는 눈으로 세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모습마저 유심히 바라보았다. 마치 없었던 것이 찾아왔다는 듯한 태도. 츠카사는 그가 ‘혼자 있는’시간이 의외로 길었던 걸까 생각했다. 그런 것 치고는 그가 어젯밤에 머물렀던 작은 방에는 정리가 안 된 것 뿐, 온기가 묻어 있었다. 츠카사는 레몬에이드가 든 컵을 모두 비웠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쏟아져 왔다.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근황을 묻자 세나는 새벽에 하는 라디오 고정과, 화요일 수요일에 고정 된 프로그램이 두 개 있다고 대답했다.
의례적인 질문인지, 세나는 그에게 요즘 뭐 하며 지내느냐 물었다. 츠카사는 자신이 나이츠의 ‘리더’역을 수행하고 있으며, 내일 무대에 오른다고 대답했다. 오늘 쫓겨나면 내일 질 수도 있다고 말하자, 세나는 속이 뻔히 보인다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간간히, 서로의 근황과 바뀐 취향에 대해서 이야길 나눴다. 45분에 챙기러 가. 세나는 시계를 보다, 문득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사는 기분은 어떻습니까?”
“카사 군은 항상 싫은 질문만 하더라. 완전 짜증나.”
세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잔 안에 들어있는 커피를 마셨다. 명백하게 짜증난 표정이었다. 츠카사는 조금 쫄아,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세나는 그냥, 흘러가듯 입을 열었다. 포기 한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세나 이즈미 답지 않은 목소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에 지쳤다는 말을 꺼내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오래 된 인연이라서 사귀는 거지 뭐…… 특별할 게 있나아?”
“있을 것 같습니다.”
“동거도 사랑도, 특별한 거 하나 없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그거지. 또 익숙해서 사귀는 거야. 걔한테 특별한 의미도 없고.”
세나는 변명을 하려는 듯 말하다가,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걔 말고 다른 걸 사랑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구질구질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같다고 말했다. 츠카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라고 말하면서,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원래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이라고 말하니, 세나는 ‘메이드 인 세나 이즈’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어젯밤의 츠키나가는 그에게, ‘밥을 깨끗이 비우고, 맛있다고 내내 칭찬하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절대로 쫓아내지 않을 거라는 말은 믿기 어려웠으나, 지금 세나의 표정을 보니 사실인 것 같았다. 오래 알아온 만큼 서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하면서, 츠카사는 물이 없을까요, 하고 말했다. 무언가 공상에 빠진 듯, 빈 접시를 들여다보던 세나는, 그것을 개수대에 넣고 나서 냉장고에서 언 딸기를 꺼냈다. 어제 마신 거 괜찮았어? 라고 묻는 소리에 맛있었습니다, 라고 대답하니 그는 다시 얼린 딸기를 갈았다.
믹서기 소리가 유리 파편 같이 들렸다.
시간을 충분히 쓰고 나서, 세나는 곱게 갈린 딸기를 유리컵에 담았다. 색이 고왔다. 세나가 건넨 음료를 천천히 마시다가, 츠카사는 잔에서 입술을 땠다. 그는 세나를 바라보며, 그에게 얼린 딸기를 좋아하느냐 물었다. 여전히 그가 갈아 낸 딸기쉐이크에서는 진하게 달고, 상큼한 맛이 났다.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그거 마시면 머리도 잘 돌아간 댄다, 라고 빈정거리는 말을 먼저 던진 세나는, 츠카사가 유리잔을 비우는 것을 찬찬히 보다가, 제 뒷머리를 긁었다. 그는 매우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 주기를 츠카사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어제의 츠키나가와 닮아 있었다. 어른이 되면 다 그러는 걸까. 츠카사는 다 마신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딸기는… 나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요?”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 사랑이 정말 질긴 인연이라고 말하면서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는 습관 같은 사랑이라, 딸기를 엄청 얼렸다고 자랑했다. 츠카사는 그의 뒷모습이 무른 딸기처럼 짓물러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사랑에, 사적인 일에 무언가 첨언하고 싶지 않아 그는 딸기 쉐이크 아래로 가라앉은 딸기 씨앗처럼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오래 좋아했는데, 라고 세나는 작게 혼잣말을 했다. 츠카사는 그의 오랜 사랑이란 단어에서 유우키 마코토를 떠올렸다가, 생각을 지우려는 듯 도리질을 했다. 시계가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빨리 씻고 나와. 세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빈 잔을 모두 거두어 개수대로 가져갔다. 설거지를 하려는 듯, 울음 같은 물소리가 부엌을 울렸다. 햇살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 있던 사자 씨가 야옹- 하고 길게 울었다.
이상한 아침이었다.
***
세나는 과속을 했다. 츠카사는 그렇게 난폭한 차에 타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유를 부리며 씻었던 것도 아니었고, 교복을 입을 때 늦장을 부린 것도 아니었는데, 출발해야 하는 시간에서 20분가량 늦었다. 세나는 중앙 차선을 넘었으며, 자신의 앞에 끼어들려는 건방진 차량을 클락션 한 방으로 제압했다. 귀를 치면서 울리는 클락션 소리가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지각은 하지 않았지만 스오우 츠카사는 멀미가 나려는 몸을 이끌고, 힘없이 교실로 올라가야만 했다. 넥타이를 본가에 두고 왔기 때문에, 그는 세나가 어쩐 일인지 보관하고 있었던 녹색 넥타이를 하고 등교했다. 아침이 정신 없었기 때문인지, 시간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속절없이 흘렀다. 멍하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같이 도시락을 먹자며 시노와 마시로, 텐마가 다가왔다. 벌써 점심시간 입니까, 라고 묻자, 그들은 책상에 둘러앉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가든 테라스에 봄꽃들이 피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에 대해서 이야길 하는 그들에 맞추어, 츠카사는 도시락 통을 열었다. 전체적인 컬러가 싱그러운 도시락이네요, 라고 말하는 시노의 목소리가 상냥했다. 츠카사는 햇감자가 든 아스라거스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감자 특유의 부드러운 맛과, 아스파라거스의 아삭한 식감, 바삭하게 구워진 베이컨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튀지 않는 맛이었다.
“평소 도시락과 다른 느낌이네요.”
“그러게, 평소에는 조금 더 호화롭다는 느낌이었는데.”
“어제 가출했습니다.”
츠카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반찬을 집었다. 아침에 한 조각 먹었던 죽순조림은 여전히 꿀과 두반장 맛이 적절했고, 입 속에서 발랄하게 아삭거렸다. 세나는 요리를 할 때 식감을 중시하는 타입 같았다. 그는 평온하게 젓가락을 움직였으나, 같은 테이블에 앉은 토끼들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연두부 같은 친절함이었다. 츠카사는 많이 고민하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머무는 곳은 있는 거야? 마시로가 걱정이 된다는 듯, 물었다.
세나 선배의 집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자 그들은 그제야 안심이라는 듯 한숨을 내 쉬었다. 그들은 츠카사의 나사 빠진 –물론 그들은 단어 선택을 매우 유하게 했다.- 금전감각과, 도련님다움 때문에 어디서 사기라도 당한 건 아닐까 하는 수십만 가지의 걱정을 했다면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봄에 알을 깐 참새 같은 목소리들이였다. 츠카사는 그들의 도시락 뚜껑에 자신의 양배추말이를 하나씩 덜어 주었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네요.”
우메보시와 가쓰오부시가 들어간 양배추말이를 먹은 시노가 말했다. 그는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신경 쓴 맛이라고 말하며 기쁜 듯이 얼굴을 붉혔다. 세나 선배 솜씨가 의외로 좋다고 말하면서, 츠카사는 괜히 저가 더 기뻤다. 텐마와 마시로 또한 양배추 말이가 맛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그는 완두와 참치 레몬무침도 먹어보라 권했다. 껍질을 까지 않은 채 통째로 먹는 완두는 식감이 독특했다. 반찬에서 옮은 상큼함이 흰쌀밥까지 옮아오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도시락 통 밑에 있던 작은 통을 열자, 오렌지와 키위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츠카사가 같이 먹기를 권하자, 세나 선배는 의외로 세심한 사람인 것 같다구! 라고 말하며 텐마가 젓가락을 뻗었다. 과일 두 개다 맛이 적절히 들어있었다. 맛있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내일 있을 드림페스에 대해 라비츠의 토끼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츠카사는 핸드폰을 건드렸다. 세나에게 맛있게 먹었다고 말할 요량이었다.
핸드폰에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츠키나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잘 잤?」
「잠자리는 사나웠지만 잘 잤습니다. 도시락도 받았고요.」
「도시락 메뉴 뭐였는데?」
「흰 쌀밥, 아스파라거스 샐러드. 우메보시와 가쓰오부시가 들어간 양배추말이와 죽순조림, 통째로 먹는 완두와 참치 레몬무침, 오렌지와 키위」
「세나 힘썼네. 바쁠 텐데. 맛은 있었어?」
「맛있었습니다. ‘녹색은 맛이 덜하다’는 편견이 덜어질 정도로요.」
츠키나가는 문자에 바로바로 대답했다. 그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애기 입맛에는 고기인데, 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츠카사는 그 문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의 고민을 느끼는 듯,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어때, 계속 재워줄 것 같아? 라고 묻는 문자는 간결했다. 츠카사는 얼굴을 찌푸리다가, 한 자 한 자를 꾹꾹 눌러 대답했다.
「어제만 재워준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 디저트랑 아침에 밥 잘 먹었으면 못 쫓아내. 세나 무르니까.」
그리고 또 외로운 사람이지. 문자 두 개가 연달아서 왔다. 츠카사는 그들이 서로를 매우 잘 알고 있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츠키나가의 말대로 하긴 했으나, 솔직히 말해서 쫓겨 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전화가 왔다. 같은 테이블에 있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입을 가리며 전화를 받자, 츠키나가는 불안하면 빈 도시락 통 사진이라도 보내고, 꼭 쫓겨나지 않도록 해 봐, 라고 조언했다. 그는 꼭 그가 세나의 집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식으로, 강하게 말했다.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게 좋아 감사하다고 했더니, 츠키나가는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듯 와하하, 하고 밝게 웃었다. 아, 재미있어, 스오 진짜 좋아해. 츠키나가는 의미를 모르겠는 말을 이것저것 늘어놓다가, 츠카사의 금전감각과 생활력은 완전 꽝이니, 세나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지라고 말했다. 스오우는 키위를 입에 넣었다. 츠키나가의 말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츠키나가는, 여러 가지 비유를 대가면서 스오우 츠카사가 세나 이즈미의 집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들을 설명했다.
성경 만큼 길었고, 서사시보다 방대한 이유들이었다. 츠카사는 얼굴을 찌푸리고 디저트 과일에 손을 댔다. 그가 키위 네 조각과 오렌지 한 조각을 먹자 츠키나가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앞에 있는 마시로가 입모양으로 ‘진짜 말 많으시다’-라고 말했다.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끊으십시오, 라고 잘라 말하자 츠키나가는 한 마디만 더 하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 정도라면 못 들어줄 것도 아니었다. 츠카사는 깨끗이 빈 도시락 통을 뿌듯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스오, 그래서 그 집에 고양이는 있어?”
“네 도착했을 땐 못 봤지만, 아침에 잠을 깨우더군요.”
꼬리가 아주 귀여웠습니다. 털이 길었는데 완전 많이 빠지더라구요. 츠카사는 그렇게 말하며, 잠옷에 묻은 털을 다 못 땠다고 투덜거렸다. 츠키나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래, 하고 대답했다. 마지막 질문이 ‘고양이’에 대해서 묻는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츠키나가 레오라는 사람이 이상한 것은 하루 이틀일이 아니었음으로 츠카사는 별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깨끗하게 비운 도시락 통을 찍어 세나에게 사진을 보냈다. 핸드폰을 보고 있지 않은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츠카사는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츠카사는 입에 들어 있는 키위를 다 씹은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마시로는 방송국의 이번 시즌 라디오에 유메노사키 출신들이 꽤나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며, 토요일에 방송하는 「토요일 저녁, 그리고 하스밍입니다」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2시부터 새벽 한 시 오십분까지 방송하는「세나이즈의 3분의 1의 순수한 감정」에서는 3학년 선배들이 메인을, 수요일 오후의 「뮤직 스타트」에서는 서브로 이사라 마오와 오오가미 코가가 ‘꽃가루 날리는 봄날’ 이라는 코너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시노는 그 말에 덧붙여, 목요일 아후에 카게히라 미카가, 텐쇼인 에이치가 진행하고 있는「달콤한 오후 두시, 티타임」의 ‘사탕 같이 반짝이는’이란 코너의 서브 디제이를 맡았다고 대답했다. 봄 시즌 개편이 젊은 DJ들을 기용하면서 꽤나 파격적으로 변했다는 마시로의 설명에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라디오 메인 DJ로 스물 한 살의 어린 청년을 기용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츠카사는 세나의 라디오의 시간이 매우 늦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도시락을 싸주느라 몇 시에 일어난 걸까, 그는 잠시 고민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텐마는 그에게 즐겨 듣는 프로그램이 있느냐 물었다. 츠카사는 라디오를 즐겨 듣는 편이 아니라고 말하자, 시노는 라디오에는 의외의 매력이 있다고 들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사연을 보내는 청취자라고 말하면서, 요즘은 핸드폰 앱으로도 사연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대답했다. 마시로는 뭔가 디제이와 내 사적인 공간이 전파를 타고 세계에 남는다는 게 좋아- 라고 말하면서 매우 설레는 표정을 지었기에, 츠카사는 나중에 한 번 기회가 되면 들어 보겠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세나 선배 라디오는 어떤 느낌입니까?”
“시간이 늦어서 자주 듣진 못하지만, 뭔가 설레는 느낌이지?”
“심야라디오만의 매력을 잘 살리고 있다는 평이 많아요. 사실 라디오는 봄시즌 개편에 시작한 게 아니라, 작년 3/4분기부터 시작했고, 구조조정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실력자라고 해야 할까…!”
“오프닝 멘트가 설렌다구!”
텐마의 말에 마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프닝 멘트를 알려줄 수 있냐는 츠카사의 요청에 텐마는 자세한 건 잊어버렸다고 대답했고, 마시로는는 흠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세나이즈의 3분의 1의 순수한 감정’의 오프닝멘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 밤입니다, 하루의 끝이면서 새로운 시작, 지금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마시로는 이 다음 멘트는 매일매일 바뀐다고 말하더니, 그 다음 부분이 생각이 나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시노는 매일 바뀌는 이야기들 다음에 하는 멘트는 ‘쏟아냈던 순수함이 1/3밖에 전해지지 않았을 오늘, 잠시 쉬어가기로 해요. 부서질 정도로 사랑해온 순수를 위한 새벽, 맴도는 감정들의 이야기. 자정, 그리고 세나이즈입니다.’ 라고 끊긴 부분을 이어 말했다. 맞아 맞아, 그거라구! 미츠루는 박수를 치며 쾌활하게 웃었다. 봄날 오후에 먹는 오렌지 같은 상큼함이었다.
그 오프닝 멘트는 평소의 세나 이즈미가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성적인 말이었다. 그걸 읊는 세나를 생각하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으으, 하고 어깨를 움츠리자, 마시로는 막상 들어보면 목소리 톤이랑 잘 어울린다면서 웃었다. 시노는 새벽 라디오이기 때문에 더- 더- 감성적이어야만 한다면서 오프닝 멘트 때문에 듣는 청취자도 많을 거라는 의견을 내세웠다. 츠카사는 어느 정도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세나 이즈미가 저런 감성적인 말을 내뱉는다는 게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어색해하는 것을 보던 마시로는 세나 선배가 그런 멘트를 하는 것 보다는 「토요일 저녁, 그리고 하스밍입니다」에서 연애상담을 하는 코너가 있는 게 더 어색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시노 또한 마시로의 의견에 동의하는 지, 고개를 끄덕였다. 츠카사는 부활동을 할 때 보여주던 하스미의 철두철미한 모습을 생각하다가 그러게요, 세나 선배 보다는 그 쪽이 더 어색하네요, 하고 대답했다. 방금 먹은 오렌지의 끝맛이 혀에 깊게 남았는지, 도시락 통을 정리하고 나서도 떨떠름한 맛이 났다.
라디오에 대한 화제가 들어가고, 내일 있을 S1 등급의 드림패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예비령에 따라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교실 뒷문으로 나가면서, 마시로는 일요일 오후 2시의 「어메이징! 당신의 히비키 와타루입니다」라는 라디오도 듣기 나쁘지는 않다면서, 라디오가 처음이라면 들어보는 것도 괜찮다라고 권했다. 솔직하지 못한 모습에 츠카사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이 작게 울렸다. 타이밍 좋게 선생님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리고 책상 서랍에 넣었다.
봄이었고, 틀어놓은 히터와, 창문 너머로 넘어오는 따듯한 햇살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되는 날이었다. 맛있는 걸 먹어서인지 간간히 잠이 왔다. 필기를 하며 진도를 따라가면서도, 아까 울린 핸드폰에 정신이 쏠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츠카사는 핸드폰을 슬쩍 확인했다. 액정을 들여다보며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방금 도착한 메시지가 보였다. 츠키나가였다.
「잘못 보냈다」
라는 문자 아래에는
「잘 지내는 것 같아?」
라는 질문이 쌓여 있었다. 두 문자 사이에는 30분가량의 간격이 있었다. 그 사이에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츠카사는 별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메시지를 입력했다. 어제와 오늘 아침의 세나 이즈미 밖에 모르는 스오우 츠카사는,「잘 모르겠어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문자에 따라오는 대답은 「고양이는 잘 지내?」라는 말 이외에는 없었다. 츠키나가는 마치, 세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행동했다. 츠카사는 이것이 매우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츠카사는 츠키나가가 연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세나 이즈미를 어지간히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 끼리 사이가 좋은 것도 좋고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도 알겠지만, 간접적으로 전해 듣기보다는 서로 얼굴을 마주대고 말해야 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츠카사는 핸드폰을 들어 새 문자를 썼다. 수신인은 세나였다. 그는 꾹꾹, 메시지를 눌렀다. 한 자를 누를 때 마다 핸드폰이 미미하게 진동했다. 조용한 교실 안에서는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리더가 세나 선배를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냐고 물어보더라구요.」
핸드폰을 잡고 있었는지, 세나에게서 메시지가 바로 도착했다. 사진을 찍어 보냈던, 깨끗한 도시락 통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왕님은 왜 직접 물어보질 않고? 세나가 보낸 메시지에서는 한 자 한 자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전화라도 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츠카사는 그렇게 메시지를 입력했고, 세나에게서는 「완전 짜증나」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텀 없이, 바로 도착한 말이었다.
수업 시간에 핸드폰을 건드리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게 어색했는지, 선생님은 자꾸만 츠카사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져, 츠카사는 핸드폰을 얼른 서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께서 읊는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 한 구절이 졸음을 타고 다가와, 꽃이 피듯 내렸다.. 그리고 느린 템포로 다가온 봄기운에 츠카사는, 츠키나가의 문자에 대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녹아내리는 나른한 햇살 아래, 느긋한 봄이었다.
***
버스 타는 걸 헤맨 것 치고는 빨리 길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오우 츠카사가 세나 이즈미의 집에 도착한 것은 오후 10시 경이었다. 그는 메모 어플에 적어두었던 비밀번호를 입력해 대문을 열었고, 현관 문 앞에서 정중하게 노크했다. 주먹으로 세 번 정도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늘어지는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불투명 유리에 주황색 빛이 들었다. 세나는 문을 열어주자마자, 그의 안부를 묻는 대신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시간 관리는 기본이라구?”
라고 말했다. 그것 또한 세나다웠다. 츠카사는 버스를 잘못 탔다고 말하면서 능청스럽게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내치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츠카사가 들어가자마자 사자 씨는 그의 다리에 머리와 볼을 비볐다. 얘 kitty라기 보다는 puppy 쪽이 아닙니까? 츠카사가 묻자, 세나는 종을 잘못 태어난 애라고 말하면서 하품했다. 꼭 리더 같습니다. 츠카사는 방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방 안에서 고양이털이 잔뜩 묻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가자, 세나는 식탁 앞에 앉아서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 밥 먹었어? 라는 질문에 츠카사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그는 버스를 처음 타보는 바람에 이리저리 헤맸다고 말했고, 세나는 말 했다면 데리러 갔을 거라고 말했다. 잡지가 팔랑, 팔랑, 넘어가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에 자리했다.
“데리러 와 달라고 했으면 안 오셨을 거지 않습니까.”
“어라, 들켰어?”
카사군, 많이 컸는데? 세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뭐라도 간단히 먹을래, 아니면 컨디션 조절 할래? 그는 일부러 두 가지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츠카사는 제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기다렸다는 듯,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너 오늘 늦게 자라, 라는 말을 하며 세나는 읽고 있던 잡지를 뒤로 뒤집어 두고 부엌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가지런히 걸려 있는 민트색 앞치마를 입고, 리본을 맸다. 그의 행동에는 어느 하나 어색한 것이 없었다.
메뉴 선택권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세나는 늦은 주제에 무슨 메뉴를 선택 하냐며 짜증을 냈다. 그는 냉장고에서 닭다리살을 꺼냈다. 마늘과 양파, 표고버섯이 조리대 위에 놓였다. 그는 스파게티 면을 담뿍 꺼내려다가, 반절을 덜었다. 그는 ‘한 사람’분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하는 듯 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잠시 고민했고, 그 결과 조리대 위에 있던 재료의 반절은 다시 냉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츠카사는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늘 어땠어?”
세나가 입을 열었다. 츠카사는 도시락이 맛있었다고 대답했다. 세나는 아부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익숙한 노래였으나, 무슨 곡인지는 생각이 나질 않았다. 츠카사는 세나가 보고 있던 잡지로 손을 뻗었다. 세나는 닭다리살에 파슬리와 후추, 데리야끼소스를 넣어 버무렸다. 비닐장갑과 재료들이 닿는 소리가 두근거리게만 들렸다. 그는 볼을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다.
음악 잡지였다. 츠키나가 레오의 인터뷰 옆에, ‘May-lily’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사진이 실린 츠키나가와는 달리, ‘May-lily’는 사진 한 장 없었다. 츠카사는 자신의 신원을 하고 싶다던 히트 작곡가의 인터뷰를 읽어 내렸다. 신분을 감추고 음악 활동을 하는 이유라도 있을까요. 츠카사는 다음 장에 실린 나루카미의 화장품 광고를 훑어보며 말했다. 파스타용 냄비에 면을 넣은 세나는 파프리카를 썰었다. 도마에 칼이 닿는 소리가 한 템포씩 끊겨서 들어왔다. 큼지막하게 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거 왕님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냐?”
세나는 표고버섯을 잘라 냈다. 그는 팬에 올리브오일을 둘렀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버벅거림도 없었다. 츠카사는 잡지보다는 세나가 요리를 하는 걸 지켜보는 게 더 재미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다른 팬을 꺼내, 오늘 아침 먹고 남은 바게트를 꺼냈다. 버터를 담은 그릇이 전자레인지 안으로 들어갔고, 20초가 지나 녹은 버터에 그는 마늘을 섞었다. 그는 바게트에 마늘빵 소스를 꼼꼼하게 발랐다.
그는 마늘을 달궈진 팬에 넣었다. 마늘이 노릇하게 익는 냄새가 났고, 그는 모든 재료를 팬에 무식하게 투하했다. 그는 냉장고에서 육수를 꺼냈다. 그거 뭐예요, 츠카사가 묻자 세나는 무심하게도 조개, 라고 대답했다. 육수를 팬 안에 넣자마자, 그는 소금과 데리야끼 소스를 넣어 간을 더했다. 그 와중에 오븐에서는 땡, 하는 소리가 났고, 세나는 미리 준비해 둔 빵을 오븐에 가지런히 넣어 굽기 시작했다.
“조금 많을까?”
“많을 것 같습니다.”
“남기지 마.”
“웃으면서 그런 흉악한 말을 하지 마십시오!”
세나는 익은 면을 넣었다. 면수를 부어가며 농도를 조절했다. 세나가 만들어주는 것들은 어딘가 ‘양’이 많았다. 먹기 버거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인분보다는 이인분에 가까웠다. 츠카사는 그가 아직도 ‘그녀’와 살던 시간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버릇이 남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괜히 발을 까딱였다.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사자 씨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야, 고양이 밥 좀 줘라. 세나는 팬을 들여다보며 말했고, 츠카사는 세탁실 근처의 서랍장에 들어있는 고양이 밥을 플라스틱 그릇에 덜어 주었다.
까드득, 소리가 났다. 쟤는 밥 줬는데도 저래, 세나는 한탄 하듯 말했다. 츠카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둘이 살던 집이죠? 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세나는 혼자, 라고 대답했다. 그런 것 치고는 작은 방이 세나 이즈미스럽지 않던데요, 라고 문득 말하자, 세나는 츠카사를 바라보다가 재수 없고, 짜증나. 라고 말했다. 어조는 한없이 산뜻했으나, 그곳에 묻어 있는 감정은 탄 데리야끼 소스 같았다.
“실연 했어요?”
세나는 나무 숟가락으로 팬을 뒤적였다. 파스타 면에 맛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팬의 손잡이를 잡고 두어 번 흔들었다가, 손목을 이용해 위로 움직였다. 집 안에 고소한 파스타 냄새가 짙게 스몄다. 그는 괜히, 팬의 바닥을 나무 숟가락으로 벅벅 긁었다. 마늘빵이 익어가는 냄새가 파스타와 겹쳐졌다. 배가 고팠고,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나는 ‘그녀’와 ‘자신’의 거리감을 정의하려는 듯, 미간을 좁히고 내내 고민했다.
그가 입을 연 것은, 파스타에 소금으로 간을 더하고, 몇 번의 면수를 더 넣었을 때쯤이었다. 그는 시계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오늘이 금요일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혼잣말을 하듯 투덜거리던 그는, 완성된 파스타를 넓은 그릇에 담아 주었다. 츠카사의 앞에 포크와 오목한 숟가락이 놓였다.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파스타에 손을 대자, 그는 오븐 안에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마늘빵을 꺼냈다. 지금 시간에 지나치게 무거운 식단이었지만 일단은 배가 고팠다.
마늘빵들을 접시에 가지런하게 담고, 직접 만든 피클을 작은 그릇에 담아 준 다음에야 세나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는 물 두 잔을 따라, 한 잔을 츠카사 쪽으로 밀었다. 데리야끼소스와 올리브오일이 입 안에서 간간한 맛을 냈다.면에 스며 있는 양념이 적절했다. 방금 불에서 내린 파스타가 따끈따끈했다. 츠카사는 닭다리살을 입에 넣었다. 자칫 잘못하면 흐물흐물해질 식감을 파프리카가 끈질기게 잡아주었다. 그는 마늘빵 하나를 집어, 반으로 갈랐다. 빵 결이 갈라지며 파사삭, 거리는 소리를 냈다.
세나는 늦은 저녁을 먹는 츠카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별거 중이야.”
“결혼 했습니까?”
“엔조이. 그냥, 둘이 어쩌다 보니까 같이 살고 있는 거지.”
세나는 느리게 하품했다. 결혼을 했으면 진작 주간문춘에 잡혔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 손끝을 매만졌다. 츠카사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파스타의 소스에 마늘빵을 적셨다. 바삭바삭한 빵에 촉촉한 소스가 닿았다. 별미였다. 피클도 직접 담근 거냐는 말에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츠카사는 온통 ‘두 개’인 집에서 적어도 ‘부엌’만큼은 세나 이즈미의 세계구나, 하고 짐작했다. 그의 집에 있는 식기들은 모두 짝수다. 집이 둘만의 세계일 것을 상정하고 있는 듯 했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서, 그는 홀로 사랑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언젠가의 세나 이즈미가, 자신은 언제나 손해 보는 사랑만을 하고 있다며 넋두리 하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이걸 따로 말할 수는 없었다. 츠카사는 열심히 숟가락과 포크를 움직였다.
“외롭진 않으십니까?”
“괜찮아. 익숙해졌고.”
“정말요?”
“뭐, 그렇지. 그리고 헤어질 거거든.”
다음에 걔가 왔을 때에는 진짜 헤어질 거라고 말할 거고, 우리 사이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고. 세나는 생각만 해도 속이 후련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순간 잘못 들이킨 면에 목이 칼칼했다. 캘록캘록 기침을 하자, 세나는 얼른 물컵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기침 속에서 왜요, 라고 겨우 물었고, 세나는 방랑벽이 싫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런 질문에 대해 여러 번 답을 생각했던 것 마냥 굴고 있었다.
따로 묻지 않아도 세나는 ‘연인’의 방랑벽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혼자 먹는 밥이 지겨울 정도로 많았고, 그동안 버린 나머지 일인분이 많았다고 늘어 놓았다. 언제 올지, 갈지를 말해주지 않으니까 언제나 두 사람 분을 준비하지만, 캐리어를 들고 나간 다음 날 부터는 연락 두절이더니 결국 작업실에서 숙식하는 듯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도 말했다. 이 부분을 말할 때의 그는 매우 분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바꿔 웃었다. 합의되지 않은 별거는 이제 지겹고, 나는 아직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 쪽이 끝내고 싶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파프리카처럼 아삭거렸다.
그는 걔가 불안해하는 걸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랑을 믿을 수 없어서, 방황 끝에 돌아갔을 때 웃어주지 않는 걸 무서워해서 못 온다는데, 그런 병신 같은 말이 어디 있느냐 물었다. 츠카사는 ‘걔’가 아니라 대답할 수 없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골이 세나와 그의 연인 사이에 머물고 있는 듯 했다. 세나는 자신이 백 보 양보하여, 그가 떠나 있는 것 까지는 터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방황하는 건 용서할 수도, 이해해줄 수도 없다고 늘어놓았다.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울었다. 외로웠어요? 라고 묻자 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츠카사에게 어서 먹으라고 재촉했다. 츠카사가 다시 마늘빵을 잘라, 한 쪽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자 세나는 돌아가고 싶을 때는 말해, 라고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외로움이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는 여전히 ‘걔’를 사랑하고 있는 듯 했다. 츠카사는 그가 이렇게 맹목적인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듣는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님을 알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계속 시계를 확인했다. 츠카사는 「세나이즈의 삼분의 일의 순수한 감정」? 하고 질문했다.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몇 가지 당부할 게 있다고 말했다. 츠카사는 숟가락에 면을 말며, 네, 하고 대답했다. 그릇에 남았던 마지막 면이었다. 착한 아이네, 착한 아이야. 세나는 그가 비운 그릇과 그를 번갈아 보다,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츠카사는 그의 웃는 모습에 괜히 불안해졌다.
“일단, 저녁은 같이 먹어. 못 먹을 것 같으면 연락해.”
“네.”
“못 지키면 쫓아 낼 거야.”
세나는 손을 뻗어 츠카사의 머리를 부드럽게 톡톡 두드렸다. 츠카사는 숟가락과 포크를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세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다가, 그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니가 안방에서 자. 사자 씨를 데리고.”
“집 주인이 있는데 제가 큰 방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츠카사가 반발하자, 세나는 씁, 하는 소리를 냈다. 재워주는 건 나라고? 카사 군, 자기 주제를 생각 해야지? 세나는 그렇게 말하며 힘을 주어 그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장난스러움 투닥임이 오가다가, 세나는 심각한 목소리를 했다. 거기서 자. 안방에 화장실 있으니까 불편하진 않을 거야. 순식간에 진지하게 깔리는 목소리에 츠카사는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네가 걔 방에서 자고 있는데, 걔가 들어오면 이야기 할 시간도 없을 것 같아서 그래. 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에 닿았던 손이 없어지고, 츠카사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짐 옮길 거 없으니까, 네 교복이랑 옷들 다 안방으로 옮겨 놔. 가장 오른쪽에 있는 옷장 비워놨어. 세나는 미리 생각 해 뒀던 말을 하는 것처럼 천천히, 자연스럽게 말했다.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표정을 하고 말하는 말에 ‘예의’라는 말을 하며 거절 할 수 없었다. 츠카사를 바라보던 세나는, 제 허리에 두 손을 얹고 후련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밥 다 먹었으면 그릇 개수대에 가져다 놓고, 짐 옮겨. 나 이제 슬슬 나가야 하니까. 굼뜨게 있지 말고 어서어서 움직이라고?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머지 마늘빵을 입에 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빈 그릇들을 개수대에 놓았다.
버리는 게 없어서 좋네. 라는 세나의 말에, 츠카사는 그의 식탁이 계속 2인분을 담았을까, 생각했다. 빈자리를 앞에 두고 식사를 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것도 그 빈자리가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츠카사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역시, 그가 감당하고 있을 외로움에 대해 감이 잡히질 않았다. 평소의 세나 이즈미 같아 보이는 지금도 속이 곪아가고 있을까, 츠카사는 물을 틀어 흰 그릇에 묻은 양념을 불리면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세나 선배는 옮길 거 없으십니까?”
제가 방에 들어 간 다음에 생각나시면 곤란합니다. 츠카사는 거실로 나아가며 말했다. 세나는 없다는 듯 여유롭게 있다가, 문득 아,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그를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갔다. 급하게 들어간 것 치고 그가 가지고 나온 것은 높이 15cm 정도의 스노우 글로브뿐이었다. 급하게 들고 나오느라 유리공 안의 세상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매우 소중하다는 듯, 품에 안고 움직였다.
그는 츠카사의 ‘이사’를 바라보았다. 그가 들고 온 28인치 캐리어는 창고에 들어갔고, 그가 가지고 온 물건들은 세나가 비워뒀던 수납공간에 차곡차곡 쌓였다. 세나는 츠카사의 나이츠 유니폼을 바라보았다. 옛날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츠카사는 그를 방하해지 않으려고, 최대한 옷장에서 먼 곳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나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는 핸드폰의 액정을 확인하고 작게 하품을 했다. 그는 매니저가 전화를 했다면서 기지개를 폈다.
“나 간다.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괜히 한다고 나대다가 그릇 깨먹지 말아. 다 비싼 거야. 짝 없는 거 맞추느라 힘들었다구.”
“네, 절대로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심심하면 고양이랑 놀고, 자기 전에 고양이 방 안에 가두고, 문 잠그고.”
“네.”
“그럼 간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츠카사는 세나의 뒷모습에 대고 인사했다. 세나는 그 ‘안녕히 다녀오라’는 말을 곱씹는 듯,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다가, 한숨처럼 웃었다. 그는 숨이 죽은 야채마냥 기운이 없었다. 그가 신발을 신는 동안, 현관 등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세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다,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