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에일리언즈 | 2018. 6. 13.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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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면 언제나 눈이 부셨다.
세나 이즈미는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단종 된 담배의 낡은 케이스가 손바닥 안에 감겼다가, 풀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묘하게 습기가 찼다. 그는 갑 안에 들어있는 담배의 개수를 세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콧잔등 아래로 내려간 선글라스를 치켜 올렸다. 카페 안에서는 낡은 LP판으로 긁어가며 재생하는 90년대 팝이 흐르고 있었다.
손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낡은 메뉴판은 누군가의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세나는 질감이 있는 오돌토돌한 오선지에 삐뚤빼뚤하게 적힌 메뉴들을 바라보다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고민이 되는 메뉴였다. 오이와 방울토마토 깨무침 같은 간단한 메뉴부터, 양갈비 로즈메리와 타임 프라이팬 구이까지. 맥주는 라거에서 에일을 거쳐 흑맥주와 윗비어, 바이젠까지. 세나는 작은 감탄사를 흘렸다.
1에서 10까지 수를 세는 것 마냥 성실하게 정렬되어 있는 메뉴 사이에서 무얼 고를지 고민이 되는 건 인간의 근본적인 습성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메뉴판을 계속 뒤로, 앞으로 넘기기를 반복했다. 낮 시간 때부터 마시는 체코 맥주와 가라아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타타키 오이 같은 간단한 안주와 짙은 흑맥주도 괜찮은 선택일 것 같았다. 애초에 한 낮에 마시는 술 만큼 배덕하고 좋은 건 없으니, 뭘 고르던간에 최악은 아닐 것이었다.
잘 관리 된 둥근 손톱이 페인트를 묽게 칠해 나무결이 그대로 보이는 테이블을 건드렸다. 고민이 많아질 때의 버릇이었다. 그의 손톱은 배경음악과 엇박자로 빗겨가며 톡, 톡,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앓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갸르르르, 하고 목에서 울리는 소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세나는 테이블에서 손을 땠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의 끄트머리에 대충 묶어 뾰쪽뾰쪽한 꽁지머리가 걸렸다. 그 남자였다. 시선을 한껏 빼앗을 정도로 밝은, 주황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흐트러트리는 모습은 일상적일 정도로 익숙했다. 인스피레이션이 날아가 버리잖아! 우주의 손실! 이 세계의 종말! 그의 암담한 목소리는 그가 가지고 있는 ‘주황’과는 달리 이질적으로 들려왔다.
세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마일드 세븐」이었다.
오늘도 그 남자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름의 지정석인 듯 했다. 세나는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한가했다. 한량이라는 말에 퍽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세나는 그가 꾸기듯 던져놓은 ‘마일드 세븐’의 담배곽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바뀐지 꽤 된 담배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담배에는 언제나 ‘마일드 세븐’이 적혀 있었다. 묘한 일이었다. 세나는 선글라스를 다시 추켜올렸다. 그 남자를 바라보는 건 드물게 재미있는 일이었다.
「마일드 세븐」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다가 멈춘다. 한없이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무언가를 적어 내린다. 펜은 언제나 볼펜을 사용한다. 샤프가 부러지는 사이에 날아가는 ‘인스피레이션’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드물게도 수정액이나 수정테이프는 쓰지 않는다. 만약 「마일드 세븐」이 작가라면 타자를 두드리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세나는 그의 작업 방식에 태클을 걸 생각이 없었다.
둘은 완벽한 타인이었다. 가끔 「달의 뒷면」에서 마주치고,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의 한 단면만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이름도 모르고 그의 정확한 나이나 뭘 하는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그를 관찰하고 있는 것도 그는 모를 것이다. 세나는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일드 세븐」은 한동안 제 작업에 몰두할 것이었다. 조용해 졌다는 건 그가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계속 반복되기만 하는 장면은 재미가 없다. 세나는 진저 레몬 맥주를 노려보았다. 칼로리를 계산하다가 한숨을 내쉰다.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건 나름의 취미였지만 슬슬 자제해야 할 때였다. 다시 시선은 보리소주 미즈와리나, 하이볼이나 단 칵테일에 머물다가 차 종류로 넘어간다. 아메리카노와 샐러드를 먹는 건 어쩐지 건강을 마이너스했다가 플러스하는 눈가리고 아웅하기 식의 조합 같았다.
안녕 하이네켄. 안녕, 세인트 아처. 바이바이, 레페 브라운. 세나는 제가 눈길을 주었던 맥주에게 짧게 사과했다. 체중 관리를 시작 한 다음에는 고를 수 있는 메뉴의 폭이 좁아졌다. 프로 모델이라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숨을 내쉬면서 메뉴판의 같은 곳을 또 보고, 또 보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고른 메뉴는 아보카도와 훈제연어오픈샌드위치였다. 우유를 곁드리기에는 위장이 무거울 것 같아 물을 부탁했다.
주문과 계산을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배 안에는 묘한 허기가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체중을 조절할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할 감각이었다. 하지만 계속 입이 심심했다. 부쩍 흡연량이 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세나는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며 창가 자리를 곁눈질했다. 긴 바에 올려둔 물건들의 배치를 바꾸면서 인스피레이션의 고갈을 외치던 남자는 이미 다 쓴 종이를 벅벅 찢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종이공은 익숙한 듯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다시 펜을 돌렸다. 볼펜이 그의 손 위에서 빙그르르 돌아 안착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오후 두 시의 햇살이 느리게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는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았다. 도로 너머를 들여다보다 그는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볼펜에 종이가 긁히며 나는 소리가 느리지만 성실하게 들려왔다.
세나는 마일드세븐의 지정석을 흘겨보았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무언갈 써 댔다. 도로와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볕이 잘 드는 자리였다. 남자의 발치와 그다지 멀지 않는 곳에서는 폭신한 고양이용 침대가 있었다. ‘리틀 존’의 자리였다. 오늘도 그 회색 고양이는 고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분주해 하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는 남자와 한없이 느긋한 고양이의 조합. 언밸런스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접시를 든 주인이 세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세나는 샌드위치를 받았다. 함께 나온 나이프와 포크로 샌드위치 조각을 잘게 자른다. 나이프의 날에 문질러 으깨진 아보카도를 호밀 빵의 빈 면에 바르며 고개를 들었다. 카페의 배경 음악은 90년대 팝에서 어느 순간 세련된 ‘요즘 노래’로 바뀌어 있었다. LP판을 돌리는 걸 포기하고 디지털 음원을 재생한 모양이었다.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카페의 선곡센스는 믿을 만 했다. 적당히 듣기 좋으면서도 사색에 방해되지 않는 것만을 고른다. 광고 촬영장에서 몇 번쯤 들어본 노래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샌드위치 조각을 입에 넣었다. 음이 가지고 있는 리듬 자체는 경쾌하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멜로디에서는 물 냄새가 났다. 짙고 암울한 우울. 세나는 이 노래를 '천재'가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민하지 않고 쓴 원 터치에서는 가끔 이렇게 작곡가가 묻어나올 때가 있는 법이었다.
세나는 샌드위치를 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배경음악과 종이, 그리고 펜의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카페는 고요하며, 또한 적막하다. 「달의 뒷면」에는 도통 사람이 오질 않는다. 위치 자체가 후미진 곳에 있는데다가, 정문에는 「츠키나가 레이블」이라는 회사의 간판이 붙어 있다. 사무실로 오해하기에 딱 좋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딱히, 사내 카페도 아닌 모양인지 오후 두 시경 이 곳에 들어오는 손님은 「마일드 세븐」과 세나가 전부였다.
「달의 뒷면」의 간판은 뒷골목 쪽에 있는 낡은 문에 붙어 있다. 육중한 철제문에는 적당한 오선지에 괴발개발한 악필로 ‘영업중’이라고 적혀 있다. 손으로 쓴 메뉴판 마냥 적당한 느낌이다. 카페 이름은 영업 중 종이가 붙은 위쪽에 거친 페인트로 쓰여 있다. 물론, 「달의 뒷면」이라는 한자 또한 영업 중 종이만큼이나 더러운 글씨였다.
후미진 곳에 위치한 동네 카페치고는 와일드한 간판이었다. 대충 필요해서 대충 적은 것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세나는 턱을 괴었다. 마일드 세븐은 ‘이게 아니야’라고 큰 소리로 중얼거리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대로 익숙해진 풍경이었다. 세나는 다시 작게 잘라놓은 훈제연어샌드위치를 씹었다. 차가운 연어와 샤워크림이 호밀빵과 어울리는 게 퍽 좋았다.
사람이 없는 게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생각했다. 뭔가 둘만의 아지트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담배를 챙겨 흡연실로 들어가는 「마일드 세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걸음걸이는 작은 키에 비해서 의외로 묵직하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 끄트머리에 불이 붙는다. 한숨만큼 깊은 연기가 흡연실 안을 깊게 메운다.
어쩐지 눈이 가는 사람이었다. 시선이 저절로 끌린다는 말이 맞았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가 무대에 오르는 사림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세나는 리듬을 타는 듯, 흡연실의 바닥을 톡톡톡 두드리는 그의 운동화 앞코를 바라보았다. 늘어난 남색 후드티와 엉망으로 묶은 머리카락의 어떤 부분에서 ‘끌림’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제 취향의 남자는 아니었다. 다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시선이 그에게로 흘러 고였다. 그가 도로와 가까운 곳에 앉아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햇살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의 뒷모습에서는 어떤, 강렬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중세시대였다면 분명 왕이나 영주쯤은 됐을 거라고 생각하며 세나는 물을 마셨다. 마시지 못했던 진저 레몬 맥주가 아른거렸다. 그는 등을 기댔다. 저 남자를 보느라 대본을 하나도 읽지 못했다.
어쩐지, 단 둘만 남으면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낯설지만 익숙한 남자를 관찰하는 취미가 생긴 것 같았다. 미완의 대본은 벌써 며칠이나 읽지 못했다. 흡연실 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세나는 다시 선글라스를 위로 올렸다. 제가 그를 관찰하는 것만큼 그 또한 저를 관찰하는 듯 했다. 오후 두 시의 햇살을 받은 ‘리틀 존’은 길게 야-옹 하고 울었다.
대본의 글씨는 여전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프린트의 흑백과 다른 선명한 유채색이 가까이 있는 까닭이었다. 집중해야지, 라고 괜히 중얼거리며 그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이럴 거면 집에 있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애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곳에 오래 있는 것도 별로였다.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흡연실 안에 있었다. 그가 있는 공간 안에 들어 갈 수 없었다. 세나는 턱을 괴었다. 그와 말을 섞고 싶다가도 섞고 싶지 않았다. 벌써 며칠이나 반복 된 풍경을 깨고 싶지 않았다. 아는 듯 모르는 사이. 오후 두 시 라는 애매한 시간 같은 관계. 세나는 자신들의 모습이 르누아르의 ‘선상파티의 점심’과 별다를 거 없는 구성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모두 모르는 사이였으나, 같은 프레임 안에 ‘수백 년’ 동안 함께 있었던 애매한 관계. 세나는 대본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가 저를 바라보면서 하는 생각이 궁금했다. 굳게 닫혀 있는 흡연실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세나는 미완으로 처리된 악보와 확정되었는지 되지 않았는지 모를 대본을 팔랑팔랑 넘겼다.
오후 두 시의 햇살은 애매하게 따듯하다. 아직 완연한 봄이 되지 않은 계절 사이의 계절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었다. 창가 자리의 남자가 블라인드를 치지 않아 세나에게 햇살이 더욱 깊게 내려오고 있었다. 인테리어 소품인 것 같은 시간이 맞지 않는 괘종시계가 똑딱이는 소리를 내며 시간의 흐름만을 알렸다. 카페의 배경음악은 어느새 인기 아이돌 노래로 바뀌어 있었다.
이 카페는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카페 주인의 취향을 얼기설기 메꿔 만든 이상한 편집숍 같기도 했다. 세나는 흡연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운동화가 나무 바닥을 박차는 소리와, 끼긱거리는 왁스칠 된 바닥의 소리를 듣는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부유한 먼지들이 햇살에 닿아 마치 별처럼 반짝였다. 먼지의 우주를 바라보다가 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컵에 손을 댔다. 유리잔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손 안을 가득 축축하게 채웠다. 창가 쪽을 보지 않아도 시선이 느껴졌다. 「마일드 세븐」이 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관찰이지, 관심은 아니었다. 적어도, 세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나와 같이 그와 저는 다만. 같은 공간 안에 고이듯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는 묘하게 편안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숨이 찼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저를 응시하고 있는 저 남자가 궁금했지만 궁금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모순 같은 오후 2시였다. 세나는 다시 샌드위치를 씹었다. 호밀 빵의 거친 식감이 입 안을 가득 긁었다. 연어의 차가움과 아보카도의 부드러움이 이어 다가왔다. 누군가가 제가 하는 식사를 지켜보는 건 오랜만의 일이라 묘하게 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시 카페에 흐르는 노래는 체인스모커스의 closer로 바뀌어 있었다.
이상한 나라에 온 것 마냥 맥락 없는 일이었다.
세나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환한 햇살에 눈이 부셨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빛이 닿은 곳에서는 여전히 먼지 우주가 일렁이고 있었다. 작은 은하를 바라보다가 세나는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타인’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고개를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일드 세븐」이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카페 안에 내리쬐는 빛처럼 강렬한 빛이었다.
“꼭 우주에 있는 것 같지 않아?”
「마일드 세븐」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랑카랑하면서도 경쾌한 울림이 듣기 좋았다. 세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햇살을 받은 그의 머리카락은 언제나 바라봐 왔던 것처럼 화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세나가 입을 열지 않자 그는 다시 한 번 말을 꺼냈다. 지금 우주에 있는 것 같지 않아? 그의 질문은 의문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말하고 있는 본인이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성질이 있었다.
그는 대답할 때 까지 질문할 모양이었다. 그와 생각이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쉽게 대답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말을 섞는 순간 귀찮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세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담배 케이스를 손에 쥐었다. 이 주 정도를 함께 하면서 생긴 무언의 룰이 형편 없이 깨지고 있었다. 그는 ‘카멜’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카멜」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담배를 한 개비 들고 흡연실 앞으로 가자, 그는 소리치듯 외쳤다. 그것은 꼭 소리가 닿지 않는 우주에서의 의사소통법 같았다. 그는 두 팔을 흔들었다. 그의 손끝과 손끝 사이의 벌려진 간격은 생각보다 넓어 보였다. 세나는 그를 응시했다.
“대답해줘, 「카멜!」 우리는 꼭 우주에 있는 것 같지 않아?”
이 허무맹랑하고 맥락 없는 말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까.
“조용히 해, 「마일드 세븐」”
세나는 대답 대신 입에 담배를 물었다. 일부러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녹색 눈동자가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제 지정석에 앉아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무대에 어울릴 것 같은 반짝임이 「마일드 세븐」에게는 유채색으로 고여 있었다. 세나는 담배 끝을 씹었다. 그는 주머니에 지포라이터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제게 말을 건 그 남자는 굉장히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시 「카멜」 하고 불렀다. 제 것인데도 제 것이 아닌 이름이 암호처럼 어색하게만 들려왔다. 비취색 눈동자는 저를 피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담고 있었다. 내가 세나 이즈미라는 걸 모르나? 싶었다. 할 말이 없어 망설이자 「마일드 세븐」은 다시 「카멜」의 이름을 불렀다.
부유하듯 날리는 먼지 우주. 투명하게 들어오는 햇살, 화려한 괴짜,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마일드 세븐의 빈 곽. 오후 두 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서야 두 시 종을 울리는 카페 안의 괘종시계. 「마일드 세븐」의 뒤쪽 유리창 너머로 지나가는 지금 이 순간과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세나는 모든 비현실들을 목도하며 중얼거렸다.
모두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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